▲뮤지컬 <하데스타운>의 '헤르메스'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최정원
에스앤코(주)
최근 뮤지컬 <하데스타운>의 출연진이 공개됐다. 멜로망스의 김민석이 주인공 '오르페우스' 역으로 뮤지컬에 데뷔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화제가 되었는데, 이에 못지 않게 화제가 된 것은 뮤지컬 디바 최정원이 '헤르메스' 역에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작품의 시작과 끝을 알리며 오르페우스를 지하세계로 안내하는 헤르메스는 <하데스타운> 초연 당시 최재림, 강홍석 등 남자 배우들의 몫이었다. 그런데 재연을 맞이하여 최재림, 강홍석과 함께 여자 배우인 최정원이 캐스팅된 것이다. 공연계에 불고 있는 '젠더프리(gender-free)'의 바람이 이어진 것이다.
젠더프리 캐스팅이란 배우의 성별에 관계없이 배역을 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관객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젠더프리는 '젠더크로스(gender-cross)'에 의미상 더 가까울 수도 있다. 젠더크로스는 남성 배역을 여성 배우가 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처럼 배우의 성별을 교차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데스타운>에서 최정원이 헤르메스를 연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엄격히 구분할 필요는 없다. 정의하는 사람에 따라 젠더프리와 젠더크로스를 같은 개념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젠더프리의 핵심은 배역을 맡는 배우의 성별이 젠더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과거에는 남자 배우만이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에는 여성 배역도 남자 배우가 맡았다. 이를 두고 누가 젠더프리라 부를 수 있을까. 따라서 젠더프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우에게 성별을 뛰어넘어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는지, 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작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20세기 초반부터 계속된 무대 위 '젠더프리'
젠더프리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프랑스 배우 사라 베르나르는 20세기 초반 '햄릿'을 연기하며 유명세를 떨쳤다(화가 알폰스 무하의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현대적인 시도처럼 보이는 젠더프리가 사실상 100년도 넘은 역사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국내에서는 2001년 배우 박정자가 연극 <에쿠우스>에서 '유진 다이사트 박사'를 연기한 것이 첫 젠더프리 사례다. 박정자는 2023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도 남성 배우들이 연기하던 '럭키' 역을 맡았다. 당시 캐스팅은 박정자의 자발적인 요청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4월 26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개막한 <고도를 기다리며> 앙코르 공연에 박정자는 참여하지 못했다. 저작권을 소유한 '사무엘 베케트 에스테이트'에서 여성 배우 출연을 반대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뮤지컬에서는 처음으로 2015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헤롯왕' 역에 김영주가 캐스팅되었다. 이후 <광화문연가>에서 배우 차지연이 초월적 존재 '월화' 역을 맡은 것과 <록키호러쇼>의 '콜롬비아' 역에 남녀 배우를 더블 캐스팅한 사례도 있다.
특히 차지연은 연극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살리에리' 역을 연기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코미디언 박미선, 배우 김호영이 진행하는 유튜브 프로그램 <칭찬지옥>에 출연해, 앞으로 연기하고 싶은 역할에 대해 '지킬 앤 하이드'라고 답하며 '젠더프리'에 대한 뜻을 밝혔다. 진행자들은 큰 호응을 보냈고, 차지연은 <지킬 앤 하이드>의 제작사 대표를 향해 영상편지를 보내며 웃음을 자아냈다.
젠더프리를 둘러싼 엇갈린 반응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