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장기자랑> 스틸컷

다큐멘터리 <장기자랑>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침몰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단원고등학교 학생 250명을 포함하여 총 304명이 사망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경,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병풍도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되어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청해진해운 소속으로 인천 – 제주 항로를 운항하던 연안 여객선. 이 배에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의 교사와 학생 339명을 포함한 승객 476명이 탑승해 있었다. 사고의 결과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 그대로다. 구조자가 172명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참혹하고 또 참담했던 비극적인 사고. 그 배경에는 안전불감증에 빠져 있던 우리나라의 안전 관리 실태와 사실을 은폐하고 회피하기 바빴던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가 있었다.

무엇보다 이 사고가 큰 충격을 줬던 것은 불특정한 대상이 피해자로 남았던 이전의 대형 재난 사고와 달리,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및 교직원들이 희생자의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사고 당시 객실에서 대기하라는 방송이 반복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어른들의 말을 믿고 지시를 따랐던 학생들 대부분이 피해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이 날의 기억은 진전이 없는 진상규명과 함께 여전히 현재에까지 닿아있다.

02.
이소현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장기자랑>의 첫 장면은 무대 위 연극의 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조금 이상한 점이 있다면 잘 짜인 대본과 배우들의 본능적인 끼보다 오랜 연습과 노력으로 완성된 것만 같은 힘이 잔뜩 들어간 무대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노래를 부르는 배우의 목소리에서도 앳된 떨림이 느껴지고, 무대 위에 마련된 소품도 조금 조잡해 보인다. 그 모습이 어색해서 더 이상 보고 싶어지지 않는다거나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 작품의 퍼스트 신이 주는 첫인상은 흥겨운 외면 아래에서 요동치는 짙은 그리움이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7명의 엄마와 한 명의 연출가가 있다. 세월호 사고로 신체의 일부와도 같은 아이들을 잃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던 엄마들은 재밌겠다며 지나가듯 했던 한 마디에 연극을 시작하게 되었다. 연극인 김태현이 연출자로 있는 4.16 가족 극단 '노란 리본'의 시작점이다. 당시 코미디 연극을 많이 연출했던 김 감독은 참사의 무거움으로 인해 어두운 일상을 보내고 있던 엄마들에게 웃음과 활력을 되찾고 남은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선사하고 싶다는 생각에 설득을 시작했다고 한다. 생전 살림만 하던 엄마들은 에너지 넘치게 까불며 리드하던 김 감독의 모습 앞에 홀리듯 끌려 어느 순간 단원 노인 복지관의 무대 위에 서게 된다. 이듬해인 2015년의 일이다.

그렇게 두 편의 작품을 완성한 이들은 2019년 <장기자랑>이라는 이름으로, 안산단원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아무런 사고도 없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게 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완성해 낸다.

 다큐멘터리 <장기자랑> 스틸컷

다큐멘터리 <장기자랑>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3.
이 다큐멘터리는 연극 <장기자랑>이 완성되던 해인 2019년부터 3년간, 무대의 중심이 되는 엄마들의 모습을 촬영한 내용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소현 감독이 작품을 연출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기존의 세월호 작품과 결이 다른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이었다고 한다. 타임라인을 따라 사고를 재구성하거나 정치적 견해가 담긴 작품이 아닌 이야기. 다큐멘터리의 대상이 되는 인물 역시 피해자가 아닌 가까운 이웃으로 관객들이 만날 수 있는 작품이 된다면 조금 더 쉽고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에 다가갈 수 있게 되리라 생각했다고 한다. 아이들을 떠나보낸 피해자이자, 그들의 이야기를 연극 '장기자랑' 속에 담아 무대 위에 직접 오르는 엄마들의 양면을 함께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극을 구성하는 큰 줄기는 두 가지다. 무대를 완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배우 엄마들의 모습을 담은 내러티브 하나와 먼저 세상을 떠난 아이들을 여전히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피해자 가족 엄마들의 모습이 담긴 내러티브 하나다.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두 지점의 이야기는 카메라가 조명하는 7명의 엄마들의 모습을 다면화하며 어느 한쪽의 감정에만 매몰되는 것을 지양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이 지점은 온전히 현실에 발을 붙이기도, 오롯이 과거의 그 시점에만 묶이지도 못하는 모두의 마음과 감정을 스크린 위로 선명하게 투영해 낸다.

04.
작품 속에서 중심이 되는 연극 <장기자랑>에는 무대 곳곳에 아이들의 흔적이 묻어있다. 아이들은 제주도에 도착하지 못했지만 이 이야기 속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함께 꿈을 꿀 수 있도록 온 마음을 모아 노력했기에 가능했다. 실제로 무대를 완성하기까지 엄마들이 직접 감내해야 했던 문제는 적지 않았다. 영만의 엄마 미경씨는 아들이 좋아했던 랩을 무대 위에서 구현하기 위해 용기를 내야 했고, 동수의 엄마 도현 씨도 역시 아들이 좋아했던 만화 속 주인공이 되기 위해 노란색 모자와 빨간 망토를 입고 해적이 된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야 했다. 또 다른 엄마는 교복을 예쁘게 입고 무대 위에 서기 위해 힘들 때마다 가까이했던 술까지 끊고 운동을 시작하며 15kg이나 감량을 했으니 연극을 대하는 엄마들의 마음이 진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자신의 마음을 쏟는 일은 되려 쉬운 편에 속했다. 모두가 자신의 아이들이 가진 이야기를 안고 무대에 서게 되다 보니, 주어진 배역이나 비중에 따라 욕심이 나기도 하고 질투나 시기를 하게 되는 때도 있었다. 실망하며 연습에 나오지 않거나 그 서운함을 김 감독에게 있는 그대로 쏟아냈던 일들. 현실의 아픔이 모두 지워지지 못한 상태에서 더해진 상처와 아쉬움은 위기를 가져오기도 했다. 결국 엄마들이 연극을 하는 이유 자체는 무대 위에서 자신이 펼치는 몸짓과 연기를 통해 '우리 아이들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기에 이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아픔에 속한다. 모든 엄마가 돌아오지는 못했다. 일곱 엄마는 그렇게 서로의 손을 붙잡고 무대를 완성해갔다.

 다큐멘터리 <장기자랑> 스틸컷

다큐멘터리 <장기자랑>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5.
애진 엄마 순덕씨의 존재는 그래서 더 특별하게 여겨진다. 유가족 엄마들 사이에서 함께 숨 쉬고 있는 유일한 생존자 엄마다. 딸 애진은 사고로부터 살아 돌아온 생존 학생이다. 생존자에게도 현실의 어려움은 무겁게 남는다.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는 없지만 돌아오는 매일이 과거의 그 시간인 것처럼 살아가는 아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생존자들을 사고를 경험하고 여전히 그 기억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희생자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다.

하지만 순덕씨는 다른 엄마들과 함께 연극을 할 수 있을 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자신의 존재가 어떤 감정을 일으키게 될지, 환영을 바라지는 않지만 모두의 이해를 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곁에서 단역이나 스태프의 일이라도 해서 힘이 되고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엄마들 역시 순덕씨의 존재가 고맙다고 말한다. 그 존재로 인해 세상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다.

이 지점의 미묘한 감정에 대해 이소현 감독이 흘려보내지 않고 정확히 바라봐 준 대목에서 이 작품이 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지점을 명확히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참사나 유가족, 연극 등의 단순화된 상위 그룹의 단어로는 결코 표현될 수 없는 조금 더 내밀한 곳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무대 위에서 완성되는 연극 '장기자랑'의 의도와 그런 무대를 중심으로 희생자 엄마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장기자랑>의 목적과도 분명히 결을 같이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큐멘터리 <장기자랑> 스틸컷

다큐멘터리 <장기자랑>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6.
극의 말미에서는 세월호 사고의 기일에 단원고에서 '장기자랑' 무대를 선보이게 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실제로 엄마들은 2021년 12월 30일 단원고에서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된다. 여러 차례의 일정 취소와 설득 끝에 이뤄낸 결과였다. 다른 희생자 아이들의 가족이 분명히 존재하고, '세월호 참사 가족 협의회'라는 구성이 또 별도로 있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학교에서 일어난 참사를 극을 통해서 다시 한번 떠올려야 할 재학생들에 대한 걱정이 현실적인 어려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 공간이 연극 '장기자랑'을 위해 중요했던 것은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학부모들이 학교로 왔을 때 처음 모였던 공간이기도 했고, 희생자 학생들의 명예졸업식이 이루어졌던 공간이기도 해서였다.

4.16 연대의 발표(2024년 4월)에 따르면, 정부는 여전히 명확한 진상규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관련 활동에 대한 의지도 내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로부터 지적받은 12개 분야 80여 건의 권고 사항 역시 1개 분야를 제외한 나머지 12개 분야를 거의 이행하지 않음 혹은 전혀 이행하지 않음 수준의 상태로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작품 <장기자랑>과 엄마들의 모습이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켰던 아이들이라고 전할 수 있도록 전국을 돌아다니며 직접 대중과 마주하는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엄마들의 모습을 어떻게 응원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덧붙이는 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하고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운영 중인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는 2024년 2월 15일(목)부터 총 18개의 큐레이션을 통해 ‘2023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선정작 92편(장편 22편, 단편 70편)을 소개/상영할 예정입니다. 열네 번째 큐레이션인 '영화는 공간이다'는 9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 보름간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 가입 후 무료로 시청 가능합니다.
영화 다큐멘터리 세월호참사 장기자랑 인디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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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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