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 <세자가 사라졌다>의 한 장면.
MBN
<세자가 사라졌다>의 최명윤은 승마술과 무예를 이용해 세자 이건(수호 분)을 돕는다. 독립운동가이자 한국학 학자인 안확(1886~1946)의 <조선무사영웅전>에 나오는 부낭은 무예 실력을 바탕으로 세자가 아니라 임금을 도왔다.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가 그의 조력에 힘입어 정권을 지켰다.
지금의 자강도인 평안도 자성(慈城) 출신인 부낭은 승마와 활쏘기에 능했다. 그는 아버지에게 나온 군대 소집영장을 가로챈 뒤 남장 차림으로 말을 타고 평안도 군영에 들어갔다. 그 직후, 그는 이 부대가 반란군이 되려 한다는 징후를 포착한다. 광해군 실각 이듬해인 1624년에 인조 정권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는 이괄의 군대에 들어갔던 것이다.
이괄은 남장 차림의 부낭이 무예가 뛰어난 것을 확인하고 100명 정도를 지휘하는 초장(哨長)에 임명했다. 하지만 이상한 낌새를 확인한 부낭은 밤중에 말을 타고 탈영해 평안도 안주목사 정충신에게 이괄을 고발한 뒤 구체적인 진압 방책을 건의했다. 이괄이 필시 한양으로 진격할 것이니 그를 치려면 한양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건의였다.
이 책략을 따른 결과로 정충신이 이괄 부대를 격파하고 일등공신이 됐다는 게 안확의 설명이다. 난이 진압된 뒤 정충신이 부낭을 중용하려 하자 그제서야 부낭은 자신이 여자임 고백한 뒤 군영을 떠났다고 한다.
여성이 무예를 하거나 말을 타는 모습이 아주 드물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런 모습이 조선시대 소설에도 등장한다. <장화홍련전>에도 장화가 통곡하며 말을 타고 가는 장면이 나온다.
조선 후기 학자이자 문인인 안석경(安錫儆, 1718~1774)의 <삽교만록>에 담긴 소설도 무예하는 여성을 등장시킨다. 안석경은 <삽교만록> 속의 이 소설에 제목을 달지 않았다. 그래서 한문학자 임형택·이우성 두 교수가 1978년에 <이조 한문단편집> 중권을 펴낼 때 편의상 '검녀'라는 제목을 붙였다.
<검녀>의 주인공은 본래 노비였다. 그는 주인집이 권세가의 공격을 받아 멸문지화를 당하자, 주인집 아가씨와 함께 도주해 목숨을 부지했다. 그런 뒤 남장을 하고 다니며, 복수를 도와줄 검객을 물색했다. 이때 그와 아가씨는 10대였다.
2년 만에 검객을 만난 그는 그 밑에서 5년간 무공을 익힌다. 그렇게 해서 검녀가 된 뒤 도회지를 다니며 검술 시범을 해서 돈을 벌어들인다. 그렇게 다니다가 원수의 집에서 공연을 할 기회를 얻게 되고 결국 복수에 성공한다.
가슴의 한을 푼 아가씨는 여자의 옷으로 갈아입고 검녀에게 유언을 남긴다. 평범한 남자를 만나 순종하며 살지 말고 뛰어난 남자를 만나라는 유언을 남긴 뒤, 검을 입에 문 채 세상을 떠난다.
검녀는 그 유언에 따라 소응천이라는 저명한 학자를 찾아가 첩이 되겠다고 자청한다. 그러고 나서 몇 년 뒤 술과 안주를 차려놓고 소응천에게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다. 검녀는 '알고 보니 당신은 작은 재주는 많지만 세상을 이끌 큰 경륜은 없다'며 따끔한 충고를 해준 뒤 소응천 곁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