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공식 포스터.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공식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지구가 멸망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남았다. 이것은 행운인가 불행인가. 

지난 9일 개봉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인해 한순간에 멸망한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원작은 웹툰 <유쾌한 왕따>의 일부 에피소드를 각색했다. 러닝타임은 130분으로 배우 엄태구 감독의 형으로 잘 알려진 엄태화 감독이 맡았다. 이병헌과 박서준, 박보영이 출연했으며,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생존자가 만든 유토피아 <황궁 아파트>

평범한 어느 날. 대한민국 서울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하루아침에 모든 건물과 일상이 붕괴되었지만 단 한 곳, 황궁아파트 만은 우뚝 서있다. 황궁 아파트의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주민 수칙을 만들며 공동체를 형성한다. 주민 수칙의 제1규칙은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다. 황궁 아파트의 주민들은 자신들이 "선택받은 존재"라고 믿고, 외부인을 "바퀴벌레"라고 부르며 주민과 외분인을 철저하게 분류한다.

생존자들에게 있어 황궁 아파트는 상징적인 존재다. 아파트의 소유 유무로 생존자들은 "주민"과 "외부인"이라는 보이지 않는 계급을 만들어냈다. 아파트를 소유한 주민의 입장에서 외부인들은 말 그대로 외부인일 뿐이며, 자신들은 아파트를 구매하기 위한 정당한 대가를 치렀으니 외부인들은 아파트에 살 권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외부인들 역시 그러한 주민들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지옥으로 변한 현실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그들에게 저항한다. 아파트로 인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상식이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자연재해가 만들어 낸 또 다른 재해. 인간재해

생존에 관련된 물품들이 하나둘 씩 떨어지며 유토피아라고만 생각했던 황궁 아파트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방범대를 비롯한 주민단체의 간부들은 자신들의 노력에 대한 대가로 식량을 많이 배급받는데, 나머지 주민들이 이에 불만을 표한 것이다. 또, 외부인들과의 잦은 마찰과 외부인의 처리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이 하나로 좁혀지지 않았다. 대지진이 아닌 또 다른 재해가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의 신념을 하나씩 형성해 나갔다. 주민단체의 대표를 맡은 김영탁(이병헌)은 오직 주민들의 안위에 모든 사활을 걸며 자신의 입지를 굳혀 나갔고, 간호사인 주명화(박보영)는 주민들의 목숨뿐 아니라 외부인의 목숨 역시 소중하다며 평등한 생존을 주장했다. 이해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두 인물 간의 충돌로 황궁 아파트 주민들의 갈등은 점차 심화된다. 대지진으로 인해 시작된 재해였지만, 생존자들은 인간재해라는 또 다른 재해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아뇨.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

영화에 등장한 인물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이었다. 아파트의 주민, 외부인, 자가 소유자, 세입자 할 것 없이 모두 지옥 같은 현실에서 살아남길 바랐다. 그러나 우리가 영화를 보며 특정 인물을 평범하다고 생각할 수 없었던 이유는 외부 상황으로 인해 각 인물들이 극단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지옥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현실주의자인 김영탁(이병헌)과 이상주의자인 주명화(박보영) 중 나는 어느 한 명의 편을 들 수 없었다. 영화가 끝난 뒤 왠지 모르게 느낀 찝찝함 역시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직관적으로 보이는 자연재해와 달리 인간재해는 쉽게 알아차리기 힘들다. 그래서 더욱 무섭고, 잔인하다. 나였다면 과연 한 순간에 지옥으로 변한 그 상황에서 누구의 편을 들었을까? 또, 평범한 사람인 내가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면 어떠한 사람으로 변했을까? 따뜻한 침대와 맛있는 식사가 당연한 지금이야 영화에 등장한 누군가를 비난할 수 있겠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이 파괴된 디스토피아에선 그 누구도 비난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나의 선량함은 누군가에겐 피해를 줄 수 있고, 나의 희생은 누군가에게 이기적인 행동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재해와 함께하지 않을까? 진정한 유토피아는 황궁 아파트가 아닌 성숙하게 재해를 대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최현준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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