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호>의 한장면.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의 16세 아들 석이는 아버지와 대척점에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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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변을 보다가 "제가 좀 실해유~"라며 천연덕스럽게 만덕에게 대꾸하던 영화 속 석이의 모습은 아니었다. 지난달 23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을 찾은 성유빈은 "안녕하세요" 이 한 마디도 조심스럽게 내뱉는 수줍은 소년이었다. 다만 "여러 기자님들이 같은 질문을 반복하시네요"라며 느리지만 할 말은 다하는 모습에서 특유의 재치를 엿볼 수 있었다. 석이와 유빈의 접점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성유빈을 <대호>의 박훈정 감독은 "또래에 비했을 때 월등한 배우"로 기억했다. 평소엔 조용하고 힘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성격이지만 "절대 현장서 주눅 들지 않는 스타일"이었으며, "느긋하고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배우"였다. 오죽했으면 촬영 현장에서 최민식이 그에게 붙였던 별명이 '영감님'이었을까. 맞춤형 석이를 찾기 위해 100여명의 배우 오디션을 진행했던 박 감독은 "분명 연기를 잘하는 아역 배우들도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연기를 잘 하는 것이고, 유빈이는 연기 같지 않은 연기를 보였다"고 오디션 당시 첫 느낌을 전했다.
불온했던 1920년대를 빈궁함 속에서도 당차게 보냈던 가상의 소년을 두고 성유빈은 "평소 내가 아버지를 대하는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고 해석했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 안으로 끌어들였다. 영화에서 아기자기하게 부자가 주고받던 농담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올 수 있었던 이유다.
"일단 석이랑 제가 같은 나이(16세)니까 그 감정은 공감이 됐어요. 비슷해요. 제가 집에서 아버지에게 하는 모습이랑요. 평소에 장난도 많이 치고. 프리스타일이라고나 할까. 근데 (석이처럼) 아버지에게 대드는 건 아니고(웃음). 아버지가 평소 썰렁한 개그를 많이 치시거든요. 흔히 말하는 아재개그? 예를 들면 음... '스시를 먹다가 이에 끼면 뭐게?' 모른다고 하면 '정답은 이에스시(ESC, escape의 약자로 '빠져나간다', '작업을 취소한다'는 뜻의 컴퓨터 용어)!' 어이 없죠? 그래도 가끔 정말 재밌는 게 나와요(웃음).제가 <대호> 속 상황이었다면 아버지랑 딜(deal. 거래)을 했을 거예요. 선이(석이가 흠모했던 소녀로 다른 약혼자가 있다-기자 주) 어머니를 잘 설득하면, 나도 호랑이 잡으러 안 가고 가게를 차려보든 어떻게 해보겠다고요. 근데 그렇게 했으면 아마 이 영화는 안 나왔겠죠?(웃음)"참고로 IT업에 종사하는 성유빈의 부친은 영화를 보고 한 바탕 울었다고 한다. 성유빈은 "평소에 한 번도 우는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는데"라며 갸우뚱거렸지만, 이게 바로 연기와 실제 모습을 절묘하게 오가는 배우로서 성유빈이 지닌 잠재력이자 아버지의 마음이 아닐까.
개미와 나비가 되고 싶었던 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