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호'에서 성유빈은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최민식 분)의 아들 석이 역을 맡았다. 자연의 섭리대로 사는 아버지에 대한 치기어린 반감으로 직접 호랑이 사냥에 나선다. 대호를 맞닥뜨렸을 때의 두려움은 그의 표정과 떨림만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영화 '대호'에서 성유빈은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최민식 분)의 아들 석이 역을 맡았다. 자연의 섭리대로 사는 아버지에 대한 치기어린 반감으로 직접 호랑이 사냥에 나선다. 대호를 맞닥뜨렸을 때의 두려움은 그의 표정과 떨림만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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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자신의 세계를 지키려 하고, 아들은 거기서 벗어나려 한다. 이건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운명이 그렇다.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 이후 얼마나 많은 문학 작품에 이런 구도가 등장하는가. 아버지의 세계는 언제나 다음 세대에 의해 깨지는 법이고, 그렇게 조각난 세계를 그들이 새롭게 구축하며 또 다른 가능성을 품게 한다.

이 '아름다운 비극'이 영화 <대호>에도 재현돼 있었다. 두 주인공은 명포수 천만덕(최민식 분)과 그의 아들 천석(성유빈 분)이다. 일제강점기를 버텨온 아버지는 산군(山君)으로 추앙받는 대호를 지키고자 했고, 석이는 그 대호를 잡아 결혼도 하고 잘 살아보고자 했다. 아버지의 말이라면 끔뻑 죽던 석이가 처음으로 반기를 드는 순간, 관객들은 직감하게 된다. 이 두 남자의 운명 역시 순탄치 않을 것임을.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분노의 눈빛을 16세 배우 성유빈이 재현해냈다. 아버지도 보통 아버지인가. '존재 자체가 연기'라는 연기파 배우 최민식 앞에서 그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연기 같지 않은 연기

 영화<대호>의 한장면.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의 16세 아들 석이는 아버지와 대척점에 서게 된다.
영화<대호>의 한장면.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의 16세 아들 석이는 아버지와 대척점에 서게 된다.NEW

소변을 보다가 "제가 좀 실해유~"라며 천연덕스럽게 만덕에게 대꾸하던 영화 속 석이의 모습은 아니었다. 지난달 23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을 찾은 성유빈은 "안녕하세요" 이 한 마디도 조심스럽게 내뱉는 수줍은 소년이었다. 다만 "여러 기자님들이 같은 질문을 반복하시네요"라며 느리지만 할 말은 다하는 모습에서 특유의 재치를 엿볼 수 있었다. 석이와 유빈의 접점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성유빈을 <대호>의 박훈정 감독은 "또래에 비했을 때 월등한 배우"로 기억했다. 평소엔 조용하고 힘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성격이지만 "절대 현장서 주눅 들지 않는 스타일"이었으며, "느긋하고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배우"였다. 오죽했으면 촬영 현장에서 최민식이 그에게 붙였던 별명이 '영감님'이었을까. 맞춤형 석이를 찾기 위해 100여명의 배우 오디션을 진행했던 박 감독은 "분명 연기를 잘하는 아역 배우들도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연기를 잘 하는 것이고, 유빈이는 연기 같지 않은 연기를 보였다"고 오디션 당시 첫 느낌을 전했다.

불온했던 1920년대를 빈궁함 속에서도 당차게 보냈던 가상의 소년을 두고 성유빈은 "평소 내가 아버지를 대하는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고 해석했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 안으로 끌어들였다. 영화에서 아기자기하게 부자가 주고받던 농담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올 수 있었던 이유다.

"일단 석이랑 제가 같은 나이(16세)니까 그 감정은 공감이 됐어요. 비슷해요. 제가 집에서 아버지에게 하는 모습이랑요. 평소에 장난도 많이 치고. 프리스타일이라고나 할까. 근데 (석이처럼) 아버지에게 대드는 건 아니고(웃음). 아버지가 평소 썰렁한 개그를 많이 치시거든요. 흔히 말하는 아재개그? 예를 들면 음... '스시를 먹다가 이에 끼면 뭐게?' 모른다고 하면 '정답은 이에스시(ESC, escape의 약자로 '빠져나간다', '작업을 취소한다'는 뜻의 컴퓨터 용어)!' 어이  없죠? 그래도 가끔 정말 재밌는 게 나와요(웃음).

제가 <대호> 속 상황이었다면 아버지랑 딜(deal. 거래)을 했을 거예요. 선이(석이가 흠모했던 소녀로 다른 약혼자가 있다-기자 주) 어머니를 잘 설득하면, 나도 호랑이 잡으러 안 가고 가게를 차려보든 어떻게 해보겠다고요. 근데 그렇게 했으면 아마 이 영화는 안 나왔겠죠?(웃음)"

참고로 IT업에 종사하는 성유빈의 부친은 영화를 보고 한 바탕 울었다고 한다. 성유빈은 "평소에 한 번도 우는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는데"라며 갸우뚱거렸지만, 이게 바로 연기와 실제 모습을 절묘하게 오가는 배우로서 성유빈이 지닌 잠재력이자 아버지의 마음이 아닐까.

개미와 나비가 되고 싶었던 소년

남소연

그가 영화계에 처음 등장했을 때로 가보자. 2011년 10월에 개봉한 영화 <완득이>에서 유아인의 아역으로 등장한 앳된 소년이 바로 성유빈이다. 그 작품을 연출했던 이한 감독에게 물었다. 감독은 "눈이 선하면서도 총명했던 아이"로 기억하고 있었다. "유빈이가 당시 촬영 때를 기억하고 있던가"라며 웃던 이한 감독은 "다른 아역 배우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며 "평소엔 조용하고 숫기 없어 보이지만 일단 카메라가 돌아가면 확 달라지던 친구"라고 전했다.

성유빈이 배우의 길에 들어선 건 우연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당시 가족과 함께 한 놀이공원을 찾았다가 우연히 연기학원 관계자 눈에 띈 게 시작이었다. 원생들을 데리고 소풍을 나왔던 그 관계자가 성유빈 어머니의 번호를 받아갔고, 몇 번을 전화했다.

"처음 연락 왔을 땐 싫다고 했다고 해요. 다음에 또 전화가 오더라고요. 엄마가 '혹시 연기할 생각 없니?'라고 물었을 때 제가 다시 물었어요. '연기를 하면 내 소심한 성격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라고요. 그리고 재밌을 거 같았어요. 실제로 해보니까 재밌었어요. 현장에 오는 자체가 신기하기도 했고, 찍고 나면 뭔가 뿌듯한 기분도 있고요.

끼요? 그게 원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원래 전 과학자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 데니스 홍 아저씨 있잖아요. 로봇박사 아저씨... 그 분 참 좋아했어요. 근데 지금 생각하면 좀 터무니없는 거 같아요(웃음). 저 문과거든요. 국어랑 국사를 좋아하는. 아무튼 과학자도 되고 싶었고, 경찰관, 소방관, 개미, 나비 등등 뭐든 다양한 게 되고 싶었어요."

개미? 나비? 혹시 상징적인 의미인지 물었다. 아니었다. 말 그대로 곤충이었다. "만화 뽀로로를 보면 왠지 뽀로로가 되고 싶은 그런 마음과 같아요"라고 그가 설명했다. 갸웃거리니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어요!"라고 한 번 더 힘줘 강조했다. 이 엉뚱함이란!

어쩌면 이런 엉뚱함이 그가 아직 보여준 것보다 보일 게 많은 미지의 섬이라는 걸 의미할지도 모른다. 혹시 아는가. 그가 진짜 개미나 나비가 될지! 몇 명의 감독과 관계자들이 발견한 이후 이제 막 탐험이 시작된 배우가 성유빈이다.

"연기와 음악을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남소연

남소연

성유빈은 시간이 날 때면 집 근처 연습실을 찾아가 드럼을 친다고 한다. 맥북 기반의 미디 프로그램으로 직접 작곡도 한다고 말했다. 감탄사를 내뱉는 기자에게 "그냥 자기계발 중이에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예체능 쪽 특히 창작하는 건 다 좋아요. 자작곡요? 아직 없어요. 사실 만들어 보긴 했는데 똥 같은 게 나왔네요(웃음). 이상하게 자기가 만든 창작물은 부끄럽게 느껴지더라고요. 전자음악, 특히 하우스를 좋아해요. 유명한 뮤지션을 굳이 꼽자면 다프트 펑크나 데이비드 게타 같은 느낌. 예전에 서태지님의 '소격동' 뮤직 비디오에 출연했는데, 드럼을 배울 때 '하여가'를 들으며 쳤거든요. 진짜 시대별로 음악을 잘 맞춰서 하는 분 같아요. 제게도 영향을 준 면이 있고요."

그의 말이 진지했다. 음악이 취미 이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라는 기자의 말에 성유빈은 "연기는 누군가 돼서 표현하는 거라면 음악은 자기 속 안의 것을 내 보일 수 있어서 좋다, 좀 더 본연의 느낌이다"라며 "커서도 연기와 음악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자기계발을 계속 하고 싶어요. 독학을 좋아하거든요. 드럼도 그렇고 평소에 뭔가를 배울 때 안 되는 건 될 때까지 하는 편이에요. 그걸 넘어서면 다음부턴 그 이상의 걸 할 수 있더라고요. 연기도 그런 거 같아요. 할 땐 버겁고 힘들 때가 있는데, 그걸 이겨내면 왠지 그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대호>에서 보인 석이 연기에 대한 자평을 부탁해봤다. 곰곰히 생각하더니 "아쉬운 것도 있고 만족하는 건 없는..."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조금 더 겁먹어서 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는 설명과 함께.

참, <대호> 촬영 직전과 직후 약 9개월 동안 성유빈의 키가 10cm나 컸다고 한다. 몸이 자라는 속도만큼 그의 연기를 주목하는 사람들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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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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