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라데>는 사실 예매하는 것이 주저되는 영화였다. 동행한 사람이 제의하지 않았더라면 주저하다가 예매를 포기했을 터였다. 너무나 잔혹한 현실을 소재로 다룬 영화이기에 본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유희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과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감상은 예상과 달랐다. 마음이 아팠음에도 동시에 어이없게도 너무나 재미있었다. 슬픈 것은 그 현실에 대해 사전지식이 없는 대다수 관객들은 제대로 주제를 느끼지 못하고 그저 재미있게만 보고 돌아섰을 것이라는 점이다.

아프리카에서 주로 시행되는 여성 할례는 남성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남성의 경우 할례, 즉 포경수술은 원래 종교적인 의미에서 시작되었으나 현재는 위생을 위한 것이고 매우 간단한 수술이지만 여성 할례는 여성의 성욕을 완전히 제거하고 처녀성을 유지하는 두 가지 목적을 지닌, 매우 위험하고 야만적인 폭력이다.

지역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개 여성의 성감대인 음핵과 성기를 절제하고 질을 꿰매버리는 여성 할례는 마취도 없이 비의료인이 시행하며 절제부위가 광범위하고 민감해 사망률도 매우 높다. 최근에는 중앙정부에서 불법으로 규제하기도 하지만 아프리카 부족들의 불법 시행을 막지는 못하고 있다.

남성들은 첫날밤, 개업식 테이프 커팅하듯이 부인의 질을 꿰맨 실을 자르면서 '새 물건의 포장을 뜯는' 기쁨을 포기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54개 아프리카국가연합 중 38개 나라에서는 여성 할례의식이 치러진다고 한다.

 영화 <물라데>의 한 장면
ⓒ P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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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의 의식인 할례에서 도망나온 여섯 소녀. 열 살도 채 안되어 보이는 어린 아이들 중 넷은 콜레라는 아줌마의 집으로 도망온다. 콜레는 그 딸에게 할례를 시키지 않은 유일한 부족민이기에 도움을 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부족의 전통에 도전하는 일임에도 그녀는 아이들을 받아주고 집 앞에 금줄을 치는 '물라데(보호)'를 한다.

금줄이 쳐진 집에 함부로 들어가 그들을 해하거나 데려나오려 하면 지독한 저주를 받는다는 전설 때문에 할례를 주관하는 여제들은 들어가지 못하지만 콜레의 반항은 부족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부족의 남성들은 대응과 처벌을 고민한다.

예상치도 못한 사건에 당황한 남성들은 라디오를 듣고 세상 물정을 알게 된 여자들이 반항적으로 된 것이라며 우선 마을 여자들의 라디오를 모두 몰수해버린다.

이슬람의 전통인 할례를 왜 감히 거부하느냐고 거짓말하는 남성들에게 '그것은 이슬람의 전통이 아니다. 라디오에서 들었다'라고 또박또박하게 반박하는 콜레의 모습은 남성들이 라디오를 몰수해 버리는 이유를 잘 말해준다.

일부다처제이자 지독한 가부장제인 이 마을에서 여자들은 남자를 만나면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하고, 남자는 의자에 앉지만 여자는 남자 앞에서는 바닥에 앉아야 한다. 일부다처제인 부부의 관계는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 마치 지도자와 그 부하들의 관계를 연상케 한다.

남편의 두번째 부인인 콜레는 어렸을 때 받은 할례가 잘못되어 목숨만은 건졌으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간다. 남편과의 성관계 때마다 피를 흘리며 고통에 신음하고, 아이를 정상분만할 수 없어 두 아이를 사산하고 배를 갈라 낳은 세번째이자 유일한 자식인 딸 암사떼만은 할례를 시키지 않는다. 마을 최초의 할례 거부, 그것이 7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이제 딸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네 아이를 감싸주는 콜레는 마을의 적이 되어 버린다. 할례를 피해 달아났던 여섯 아이 중 두 아이는 우물에 자살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는데도 오히려 콜레가 아이들을 부추겼다는 누명을 쓰고 비난받을 뿐 마을의 전통은 굳건하다. 남성들은 콜레의 딸을 할례 받지 않은 부정한 몸이라 하여 파혼시키고 남편을 부추겨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콜레를 채찍으로 때리게 한다.

콜레가 모진 채찍질에도 불구하고 물라데를 거두지 않고 콜레의 보호 아래 있던 네 아이 중 한 아이도 콜레가 매를 맞는 동안 빼돌려져 할례를 받다가 결국 죽는다. 죽은 세 아이의 어머니와 마을 여성들은 모두 모여 소녀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콜레의 용기를 칭찬한다.

 영화 <물라데>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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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이제는 더 이상 할례를 받지 않겠다며 일어서고 콜레를 때린 것에 죄책감을 느낀 남편과, 프랑스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귀향한 암사떼(콜레의 딸)의 약혼자도 가세하여 여자들의 반란은 힘을 얻는다. 여자들은 그들의 라디오가 불타는 자리에 그간 마을 여성의 성기를 절단했던 칼들을 모아 던진다.

마지막 장면은 마을의 전통을 상징하는 상징물 자리에 텔레비전 안테나가 서 있는 모습으로 끝난다. 이제 여자들은 라디오를 듣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세상을 알아가고 부당함에 맞설 것이다.

아직도 아프리카에서는 수많은 소녀들이 할례를 강요당하고 죽거나 후유증에 시달린다. 또한 살아남은 자들도 영원히 성적 쾌감을 느낄 수 없다. 여성에 대한 학대와 규제. 그것을 전통이라고 포장하고 여자들끼리의 문제로 치부하는 방식은 세계 공통이다.

여성의 발을 어려서부터 꽁꽁 묶어 자라지 못하게 하여 자기 의지대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한 중국의 '전족' 풍습. 제대로 걷거나 뛰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발이 썩어 들어가 발목까지 절단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지만 남성들은 여성의 두 발이 남성의 한 손바닥 위에 올려지는 모양을 찬양했고 이를 이용해 남성의 성감을 높이는 방법을 구상했다.

전족을 하지 않은 여성은 제대로 결혼할 수 없었고 개화기 전족 풍습이 사라져가자 거꾸로 전족을 한 여성들이 미개하다 하여 버림받고 자살하는 일도 많았다.

전족 또한 여성 할례와 마찬가지로 어머니가 눈물을 머금고 딸에게 해주는, 겉으로는 여성에 의한 여성 박해다. 남성들은 눈에 보이는 직접적 관여는 하지 않았으나 손가락 두 개 크기만큼 작은 발을 찬양하고 전족 하지 않은 여성을 사회에서 배제시키며 사회적으로 무자비하게 강요했다.

서양의 코르셋 또한 여성들이 숨이 막혀 제대로 활동하거나 뛸 수 없게 한 것은 물론이요, 너무 졸라매 각종 부작용에 시달리고 호흡곤란으로 죽거나 갈비뼈가 부러져 배를 찔러 내장을 다쳐 숨지는 등 사건도 빈번했다.

우리 사회라고 예외는 아니다. 고통을 못 이겨 자기 손가락을 물어뜯으면서도 남편의 성관계 요구를 감히 거절하지 못하는 콜레. 욕구가 없거나 몸이 아프거나 심지어 폭행을 당하고도 부인은 남편의 성관계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 것이 한국의 법이었다.

몇 년 전까지 한국의 법은 부부 강간을 인정하지 않았고 부부간의 성행위는 강제에 의한 것도 합법적이고 당연했다.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죽게 만드는 다이어트 열풍 또한 여성의 육체에 대한 규제이자 박해다.

잔혹한 현실을 소재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시종일관 깔끔하고 유머러스하게 진행된다. 아프리카의 마을 풍경과 원색의 옷들이 눈을 즐겁게 하고 독특한 감정 표현과 발언의 방법들이 실제 아프리카의 모습과 일치하는지 궁금증을 자극한다.

시종 흥미진진하고 유머러스한 전개로 낯선 아프리카 영화임에도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낸 이 영화를 국내 개봉관에서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1. 암사떼의 약혼자 부모는 파혼시키고 약혼자를 사촌인 11살짜리 소녀와 결혼시키려 한다. 이에 바른 말 잘하는 뜨내기 장사꾼인 일명 '용병'은 변태들이라며 감옥에 가야한다고 비난한다. 조혼의 풍습또한 흔한 일인가 보다.

2. 암사떼의 약혼자가 귀향하면서 가져온 짐들 중에는 삼성 로고가 선명한 텔레비전이 있다. 여러 차례 화면에 크게 비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3. 세네갈의 거장 우스만 셈벤의 <물라데>는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될 만큼 뛰어난 형식미와 아프리카 국가에서의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풍자적으로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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