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 선수가 그렇게 말을 잘 해요?"

어느 잡지에 쓴 인터뷰 기사를 보고 그 잡지사의 기자가 내게 물어왔다. 내가 쓴 기사에 의하면 그 선수는 운동에 대한 철학도 분명하고, 말도 조리 있게 잘 하는 아주 똑똑한 운동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는 그런 선수가 아니었다.

"예" "아니요" "잘 몰라요"만 읊어 대던 유명 축구 선수

2002년 여름, 나는 어느 잡지사로부터 한 유명 선수와의 인터뷰 기사를 요청받았다. 망설이지 않고 나는 즉석에서 오케이를 했다. 왜냐하면 온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월드컵의 감동이 채 식지 않았던 때였고 그는 바로 그 분야의 잘 알려진 스타 플레이어였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도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 신문의 스포츠면을 열심히 읽는 나였지만 나는 특별히 그와의 만남을 앞두고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가 속한 팀의 홈페이지도 들어가 보고, 인터넷의 기사 검색을 통해 그에 관한 기사와 정보를 얻어 두툼한 질문지도 작성했다. 그리고 다소 흥분된 심정으로 사진 기자를 동반하여 그의 숙소를 방문하게 되었다.

아, 실망! 그 스타 선수는 내가 준비했던 여러 진지한 질문에 대해 "예" "아니요" "잘 몰라요" 식의 맥빠진 답변만 들려 주고 그만 침묵했다. 그저 몇 마디의 단어와 구, 그리고 불완전한 문장만을 어색하게 쏟아낼 뿐이었다. 그래서 그와의 인터뷰는 아주 고역이었고 전혀 즐겁지 않았다.

물론 그 선수 개인의 문제이긴 했지만 그는 참 말을 못했다. 단순히 말을 잘 하고 못하고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게 내 진단이지만 말이다.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종종 흐를 때 곁에 있던 사진 기자가 몇 마디 말을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알맹이 있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스타를 만나서 궁금했던 질문을 던지고 좋은 기사를 쓰려고 했던 내 계획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그와의 대화에서 드문드문 나온 몇 마디 말을 기초로 어려운 '작문'을 해서 가식적인(?) 세 페이지짜리 기사를 완성하긴 했다.

그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나는 문득 우리 나라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의 일과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오래 전, 대학을 졸업한 뒤에 고교 교사로 일했던 내 경험도 떠올랐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의 모교이기도 한 스포츠 명문이었다.

보통 학급 당 한두 명씩의 운동 선수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수업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나마 교복 대신 트레이닝복을 입고 들어온 수업에서도 이들은 아주 늘어진 모습으로 책상에 엎드려 있거나 졸기 일쑤였다.

시험을 볼 때면 맨 뒤에 앉아 시험지도 보지 않은 채 그저 답안지에 이름과 'OO부'라는 자신의 운동 선수 신분만을 밝히고 곧장 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개중에는 자기가 몇 반인지, 또 담임 선생은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들도 많았다.

몇 해 전, 어느 모임에서 나는 좀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내가 가르쳤던 유명 스타 제자를 오랜만에 만나게 된 것이었다. 나는 남편과 딸들에게 그 스타를 내가 3년 동안이나 가르친 스승이었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민망하게도 그 제자는 코앞에 선 나를 몰라보는 것이었다(내가 그 학교 선생이었노라고 말을 했는데도 말이다).

바로 이런 현실이 우리 나라 엘리트 스포츠의 현 주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부는 내팽개친 채 그저 몸의 기량만을 위해 기계 같은 '스포츠 기술자'만을 만들어내는 교육 말이다.

공부와 운동, 둘 다 잘 할 순 없을까?

몇 달 전에 방영되었던 KBS 1TV의 <스포츠는 평생 필수과목이다>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우리의 학원스포츠와 엘리트 스포츠가 얼마나 획일적이고 '성적 지상주의'에 빠져 있는지를 잘 꼬집어 주었다.

공부와는 완전히 담을 쌓은 특기생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 나라 체육계의 슬픈 자화상인 것이다.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수업을 빼 먹으면서 훈련이나 경기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은 주말이나 휴일, 방학을 이용해서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더구나 운동 때문에 공부를 게을리하면 미국에서는 운동 포기까지 종용받는다고 한다. 또한 스포츠는 체육 활동의 차원이 아니라 국가 교육의 제도적인 틀로 생각한다는 것도 아주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공부와 수영 둘 다를 잘하고 싶다"며 선수촌 입촌을 거부하여 올림픽 출전권을 박탈 당했던 수영 샛별 '장희진 파동' 역시 우리 나라의 왜곡된 스포츠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번 아테네 올림픽에서 해설을 맡았던 유명 스타 출신의 전혀 '전문적이지 못한 허무한' 해설에 대해서도 나는 이와 궤를 같이하여 이해한다. 각 방송사에서는 현역 시절 화려한 경력의 스타들을 경쟁적으로 영입하여 해설을 맡겼다. 그러나 우리가 밤잠을 설쳐가면서 보았던 경기에서 이들 전문가들은 그 경력에 걸맞은 출중한 이론의 '감동적인 해설'을 해 주었던가.

많은 경우에 그렇지 못했다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굳이 그 스타가 아니더라도 그런 정도의 감상적이고 감정적인 해설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거라는 게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인 것 같다.

이런 현상은 이론을 겸비하여 일반 대중들에게 스포츠 과학을 쉽게 설명하지 못한 해설자들의 부실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라고 나는 조심스럽게 진단한다.

<권성아, 공부가 쉽니, 스키가 쉽니?>를 쓴 스키 선수 출신의 김권성씨 책에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돌머리, 단순 무식, 할 줄 아는 거라곤 운동밖에 없는 힘만 센 깡통. 사람들이 운동 선수를 보는 시각은 하나같이 이렇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사람들의 그런 시각에 반기를 든 김권성씨는 자신의 표현대로 '고시에 목을 매' 결국 행정고시에 합격하는 개가를 올린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람들의 편견이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자업자득인 측면도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기량만 좋은 '운동기계'는 이제 그만

 이용수 해설위원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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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에서 본 내용이다.

"해박하고 지적이라는 평을 듣는 이용수 KBS 축구 해설위원은 축구 선수 출신일까요, 아닐까요?"

많은 사람들은 그가 선수 출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왜일까? 오레건 주립대에서 학위까지 한 교수가 선수였을 리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그는 한때 '안양 LG' 소속으로 뛴 적이 있는 선수다.

앞으로 우리 나라 엘리트 스포츠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몸의 기량만이 탁월한 기계적인 선수를 배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못지 않게 이론적이고 과학적인 스포츠의 정립을 위해선 이들 스포츠 엘리트들에 대한 초기 교육부터 그 기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 스포츠 엘리트들의 교육이 중요한 까닭은 이들이 앞으로 지도자가 되었을 때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훌륭한 지도자로서 자기와 같이 균형 잡힌 탁월한 선수들을 배출해 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포츠 지도자들은 뛰어난 이들 선수들의 능력을 그저 몸의 기량만을 강요하는 '운동 기계'로 만들지 마시길 올림픽이 끝난 마당에 진지하게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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