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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년 만에 다시 그리스 아테네에서 치러진 올림픽. 그 올림픽의 성화도 이제 저물었습니다. 많은 선수들이 선사한 감동과 환희는 아마도 우리 가슴 속에 간직되고 나중에 가끔 꺼내 보실 텐데요.
저는 이번 올림픽을 통해 시상대 가장 윗자리보다 빛나는 선수들을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우리들은 세상은 최고만을 기억하고 꼭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랍니다. 공포 영화에 자주 출연하는 학교 귀신은 꼭 만년 2등이라 서러워 학교를 배회하는 경우가 많지요. 아마 2등 콤플렉스가 투영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라고 보여집니다. 꼭 1등이 아니더라도 내 인생의 역할 모델이 될 사람들은 참 많더라구요.
우선 여자 역도의 장미란 선수. 저도 방송에서 관심 가지는 축구에만 신경쓰고 있었습니다. 방송 3사에서 가수들 퍼레이드 응원전까지 해서 제 눈과 귀를 쏙 빼앗아 갔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갑자기 메달권 안에 들지도 모른다며 여자 역도 방송을 해주더라구요.
순간 "아, 왜 재미없는 역도를 중계하고 그래"하면서 투덜거렸습니다. 그런데 장미란 선수를 보고 그 투덜대던 입을 멈추었습니다. 21살. 해 보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은 나이. 멋도 부리고 예뻐 보이고 싶은 나이지요. 그런데 올림픽을 위해서 30kg나 몸을 불리고 자기 몸무게보다 훨씬 무거운 걸 들어올리는 그녀.
장미란 선수는 단순히 역기를 들어 올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담아 세상을 들어 올린 것입니다. 그녀의 손을 보았습니다. 물집이 터지다 못해 피가 나는 손, 붕대로 칭칭 감고 있는 손. 축구 중계 때문에 은메달을 수상한 그녀의 시상식도 제대로 보여 주지 않는 방송국을 원망했습니다. 그 경기를 보면서 장미란 선수에 대한 경외감이 들었습니다. 장미란 선수의 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입니다.
다음으로는 역시 은메달을 목에 건 여자 핸드볼팀.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면 최고가 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일도 있다는 걸 깨닫게 했습니다. 국민적인 응원을 등에 업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덴마크와는 달리 비인기 종목의 서러움을 받고 있는 한국의 여자 핸드볼팀.
솔직히 사람들이 그들에게 메달을 기대한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승에 올라간 것도 너무나 대단하지요. 하지만 사력을 다해 뛰는 결승전 모습을 보고,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꼭 이겨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행복할 수 있게요.
하지만 그녀들은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온갖 복잡한 감정이 들면서 월드컵 때도 울지 않았던 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시상대에서 환하게 웃는 그녀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이 우리 나라 태극 마크를 달고 뛴다는 게 자랑스러웠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타국 선수인데요. 바로 마라톤에 출전한 브라질의 리마 선수입니다. 리마 선수는 처음부터 선두로 나와 뒤처지지 않고 지구력과 인내력으로 대단한 레이스를 펼쳤습니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리마에게 불행이 닥쳐 왔습니다.
그리스 전통 의상인 치마 입은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 리마 선수를 인도 방향으로 5초 정도 끌고 간 것이지요. 5초라는 시간이 짧을 수도 있지만 자기 페이스 유지가 중요한 마라톤에서 이 해프닝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국 리마 선수의 페이스는 순간에 무너졌고 결국 그 시간 동안 이탈리아 선수와 미국 선수에게 연달아 역전을 당해 결국 3위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35살의 노장 마라토너에게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자리에서 거의 손에 들어온 금메달이 타인의 방해로 멀어져 버린 겁니다. 저라면 마구마구 화를 내면서 욕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리마 선수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뛰었고 결승점에 골인했을 때는 활짝 웃어 보이며 손을 흔들기까지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1위를 하지 못해 마음이 상했을 것 같다는 제 예상이 무척 짧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마라톤의 금메달은 이탈리아의 발디니에게 돌아갔지만 저에게 아테네 마라톤 챔피언은 리마 선수로 기억될 겁니다. 아직도 동메달을 목에 걸고 웃던 그의 미소가 마음 속에 따뜻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제 아테네의 성화는 꺼지고 4년 뒤의 베이징 올림픽을 기약해야 합니다. 4년 뒤 베이징에서는 어떤 나만의 챔피언이 탄생할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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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30 10: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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