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눈물겨운 투혼은 손에 땀을 쥐고 응원했던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우리 시간으로 29일 낮 헬리니코 인도어 아레나에서 벌어진 아테네 올림픽 여자핸드볼 결승전은 핸드볼 역사상 다시 보기 힘든 멋진 승부였다. 두 번의 연장전에서도 결판이 나지 않아 페널티드로로 승부를 가렸지만 금메달을 딴 덴마크 선수들이나 은메달을 딴 대한민국 선수들 모두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세계 여자 핸드볼 역사 속에 길이 남을 이 명승부에서 심판의 경기 운영만은 관중들이 야유를 터뜨릴 정도로 모자랐다. 폴란드 출신의 두 심판(바움, 고랄치크)은 승부의 갈림길마다 대한민국 선수들에게 불리한 판정을 쏟아냈다. 여러 모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신-구 멤버들의 조화를 이끌어내며 팀을 세계 정상급으로 끌어올린 임영철 감독은 29:29로 1차 연장전이 끝나고 본부석으로 들어오는 심판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두 눈을 부릅뜨고 대들고 싶었겠지만 임영철 감독의 표정은 조금도 일그러지지 않고 오히려 웃음이 가득했다. 얼마나 어이없는 일을 당했으면 그랬을까? 그 순간 '염화미소(拈華微笑)'라는 말처럼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두 번의 연장전까지 포함하여 100분간의 공방전이 벌어지는 동안 덴마크는 톰센이 단 한 번 2분 퇴장을 당했을 뿐, 덴마크 선수들의 거친 수비는 노란 딱지 이상의 징계를 당하지 않았다. 반면에 대한민국 선수들에게는 모두 네 차례의 2분 퇴장 판정이 내려졌다. 특히, 1차 연장전 후반 주장 이상은의 왼쪽 45도 슈팅이 터지며 29:27로 앞선 상황에서 피벗 플레이를 훌륭하게 펼치던 허순영이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2분 퇴장을 당했다. 이후 우리 선수들은 덴마크의 프루엘룬트에게 페널티드로를, 1분 남기고 키에르스쿠에게 바운드 슛을 연거푸 허용하며 29:29 무승부로 1차 연장전을 끝내야만 했다. 심판의 눈에 띄는 덴마크 봐주기는 2차 연장전 8분이 지날 무렵 한 차례 더 나와,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심판은 덴마크 선수의 슈팅이 우리 문지기 오영란의 손에 맞고 왼쪽 끝줄로 나가자 덴마크의 왼쪽 코너 드로를 선언했다. 임영철 감독은 이 판정에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큰 소리로 항의했지만 명백한 심판의 잘못은 그냥 넘어갔다. 오히려 임영철 감독에게 선명한 노란 딱지가 제시되었을 뿐이었다. 신예 문필희의 연속 득점에 두 점을 앞서고 있던 우리팀은 이 오심에 또 한 번 흔들리며 동점골을 허용해 끝내 34:34 무승부로 100분간의 혈투를 끝냈다. 이어진 페널티드로에서 4:2로 이긴 덴마크는 경기장 바닥에 드러누우며 금메달의 기쁨을 만끽했다. 아쉬운 마음에 눈물을 쏟아내던 대한민국 여자핸드볼팀은 그동안 힘겨운 훈련을 함께 이겨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손과 손을 이어잡고 관중들에게 고개 숙여 답례했다. 지난 18일 있었던 B그룹 예선에서 덴마크와 만났을 때(29:29)는 부상으로 더 많은 활약을 펼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던 주장 이상은은 혼자서 아홉 골을 넣으며 가장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피벗 플레이를 펼친 허순영은 다섯 차례의 슈팅을 모두 성공시키는 높은 결정력을 보였다. 왼쪽 날개공격수로 나온 장소희도 팀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재치있는 공격을 성공시키며 다섯 골을 넣었고 문필희는 연장전에서 여러 골을 던져 넣으며 짜릿한 승부를 이어나갔다. 무엇보다도 보기 드문 명승부가 만들어지기까지는 문지기 오영란의 눈부신 선방이 돋보였다. 상대 문지기 모르텐센도 우리 선수들의 페널티드로를 세 개씩이나 막아내는 활약을 펼쳤지만 오영란은 100분이 넘어가는 경기 시간 동안 단 한 차례의 페널티드로 수비를 빼 놓고 모두 59개의 슈팅을 받아내면서 22개나 막아내는 신들린 선방을 보여 주었다. 2차 연장전 후반 자신의 선방이 덴마크의 공격권으로 판정되자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허탈해 하는 모습은 너무나 안타깝게 보였다. 금메달보다 몇 배나 값진 여자핸드볼의 은메달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숙제를 남겨 주었다. 당장 실현하기는 어렵겠지만 끈끈한 지역 연고를 기반으로 한 시민 구단들이 연중 리그를 벌이는 시스템이 만들어질 때까지 함께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하여야 한다. 현재 여자핸드볼의 경우 대학 넷, 실업 다섯 팀 정도가 고작이다. 이렇게 척박한 땅에서 세계 최정상급의 성적이 꾸준하게 나온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제 TV 앞에서만 흥분하고 협회나 언론을 성토했던 사람들이 텅 빈 핸드볼 경기장 관중석을 채워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준 그 멋진 투혼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씩 손을 이어잡고 핸드볼 경기장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은메달을 목에 건 그녀들은 정말 최선을 다했다. 뭘 더 바라겠는가?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 남은 일은 우리 몫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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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