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발견한 어느 중학생의 고민이다.

저희 학교 체육시험 문제인데요. 어느 게 정답인가요?

문제: 우리 나라 최초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우리 민족의 애국심을 고취시킨 선수는 누구인가?

손기정 선수는 우리 나라 사람으로 처음 금메달을 땄지만 일장기를 달고 뛰었고, 양정모 선수는 우리 나라 대표로 나가서 금메달을 땄는데 누구라고 써야 하나요? 손기정 선수예요? 양정모 선수예요? 저는 양정모라고 썼는데 문제가 좀 아리송해요. 애들끼리도 의견이 분분해요. 공부 잘하는 애들은 다 양정모라고 썼던데…. 제발 알려주세요.


참 얄궂은 문제다. 이런 시험 문제를 낸 체육 선생님도 정말 얄궂다. 헷갈리는 중학생의 질문에 대한 네티즌들의 답변 역시 제각각이어서 아리송하기만 하다.

"단연 손기정입니다. 일제 시대에 일장기를 달고 뛰긴 했지만 억눌려 있던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애국심을 북돋아 주신 분이죠."

"아닙니다. 양정모가 맞습니다. 저도 중1 때 손기정이라고 써서 틀렸습니다." (아니, 이런 얄궂은 문제가 전에도 출제되었단 말인가?)

"정답은 제11회 베를린 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옹입니다. 식민 지배 하에서 일장기를 달고 뛰었지만 우리 신문이 일장기를 말소한 것에서 보듯이 민족의식과 대한민국의 국가 의식은 면면히 흐르고 있었으므로 손기정옹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네티즌들의 의견이 맞서는 가운데 이 검색 사이트는 친절한 답변을 주고 있다.

"우리 나라 최초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은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맞습니다. 물론 위 글을 쓰신 분 말대로 일제 치하에서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킨 손기정옹은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어느 나라 대표로 참가했는가입니다.

안타깝게도 손기정옹께서는 일본 대표로 참가하셨고 메달 수여식에서도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계셨습니다. 동아일보에서 바로 이 일장기를 지우는 바람에 난리가 나기도 했었죠. 하지만 손기정옹은 분명 우리 나라 분이셨지만 국적은 일본이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내 딸들의 반응도 서로 다르다. 큰 딸은 양정모 선수가 맞다고 한다. '우리 나라'가 딴 메달로서는 양정모 선수가 처음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큰 딸 역시 토를 달긴 했다. 우리 나라 '사람'이 딴 첫 금메달은 당연히 손기정 선수라고 해야 하지만 객관적으로는 어쨌건 양정모 선수라는 것이다.

하지만 작은 딸은 의견을 달리 했다. 분명히 손기정 선수가 딴 금메달이 첫 금메달이란다. 비록 가슴에 일장기를 달긴 했지만 그건 손기정 선수의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억압 받는 식민지 국민으로서 불가피하게 일장기를 단 것이었으니 손 선수의 금메달을 우리 나라 첫 금메달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열변을 토한다. 작은 딸의 애국심이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IOC(국제올림픽위원회)나 다른 나라에서는 손 선수가 일본 국적으로 나가서 금메달을 땄기 때문에 당연히 일본 메달로 인정하겠지."

양정모 선수 쪽으로 기우는 발언을 하니까 그래도 작은 딸은 손기정 선수의 금메달이 첫 금메달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면서 체육시험에 이런 문제가 나오면 분명히 손기정 선수라고 쓰겠다고 한다.

하긴 국내 유력한 어느 신문사 홈페이지에도 우리 나라의 '역대 메달 수'는 제11회(1936) 베를린올림픽- 금메달(손기정), 동메달(남승용)-에서부터 집계가 되고 있었다. 그러니 작은 딸의 주장도 틀린 건 아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의 홈페이지(http://www.olympic.org)를 들어가 보면 가슴 아픈 우리 나라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히틀러가 개회선언을 한 베를린올림픽에서 일본은 금 6, 은 4, 동 8개로 8위를 했다. 그런데 일본이 딴 금메달을 다시 클릭해보면 6개의 금메달 내역이 상세히 나와 있는데 맨 위에 나온 것이 바로 남자 마라톤이다.

마라톤의 금메달리스트 명단에는 우리 나라의 손기정 선수가 '손 기테이(SON, Kitei)'로, 동메달리스트인 남승용 선수는 '난 쇼류(NAN, Shoryu)'라고 적혀 있다.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우리 선인들의 울분이 떠오른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금메달을 딴 우리 손기정 선수에 대한 '사연 있는' 슬픈 스토리가 IOC 홈페이지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손 선수의 메달이 그냥 일본이 딴 메달만은 분명히 아니라는 점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손기정 선수는 대한민국이 일본의 강점 하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 이름 '손 기테이'로 출전해야 했던 모욕을 참아야 했다. 하지만 열렬한 민족주의자였던 손기정 선수는 베를린에서 늘 한국 이름으로 서명을 했다. 그리고 어디에서 왔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 마다 손 선수는 대한민국이라고 말하고 대한민국은 독립 국가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손 선수는 초반에 선두를 달렸던 전(前) 대회 챔피언인 아르헨티나의 후안 칼로스 자발라를 28km 지점부터 따라 잡은 뒤 함께 달리던 하퍼를 2분 이상 따돌리고 금메달을 땄다. 남승용 선수는 하퍼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시상식장에서 손 선수는 태극기와 애국가 대신 일장기와 일본국가를 들어야 하는 굴욕을 참아야 했다. 시상대에 선 손기정 선수와 남승용 선수는 고개를 숙임으로써 무언의 저항을 했다.


손기정 선수가 우승을 하고 그 감동의 순간에 했다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이기고 나니 기쁨보다는 알지 못하는 설움이 북받쳐 오르며 울음이 나옵디다."


이번 아테네 올림픽을 보면서 우리의 올림픽 영웅인 손기정 선수가 떠올랐던 것은 바로 대만의 첫 금메달리스트인 천스신과 주무옌 선수의 눈물겨운 시상식 장면을 볼 때였다.

태권도에서 금메달을 딴 천스신 선수. 그녀는 애써 기자들에게 자신은 중국이 아닌 '대만에서 왔다(I'm from Taiwan)'고 강조했다고 한다. 자신의 국기와 국가(國歌)가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양되지 못하고 연주되지 못하는 서러움을 그녀는 통한의 눈물로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나 역시 시상대에 선 천 선수의 뜨거운 눈물과 기자회견 장에서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말문을 잇지 못했다는 기사를 읽고 목젖이 울컥했다.

아마 다른 나라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 나라 국민들은 천 선수의 아픔이 남의 일 같지 않았을 것이다. 동병상련의 아픔이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한 때 나라를 잃고, 언어를 잃은 슬픈 과거가 있었으니 말이다. 새삼 내 나라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이다.

올림픽과 관련하여 우리 나라에 대해 뿌듯함을 느꼈던 순간이 내게도 있었다. 1996년, 미국 북동부의 버몬트주에 있을 때였다.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캐나다의 토론토와 몬트리올, 그리고 퀘백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아름다운 유럽풍 도시 퀘백을 둘러보고 '캐나다의 뉴욕'이라고 불리는 몬트리올의 올림픽 경기장을 찾게 되었을 때 나는 경기장 입구에서 휘날리고 있는 태극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 뒤로 보이는 계단 모양의 건물이 몬트리올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이고, 오른쪽 국기 게양대에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 한나영
국기 게양대에는 많은 나라의 국기들이 펄럭이고 있었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1976년에 개최된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나라들의 국기가 게양되어 있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아래에는 영광스러운 금메달리스트들의 이름과 국적이 새겨져 있었다. 자랑스러운 이름 '양정모, 대한민국'! 정말 뿌듯했다.

그 때의 기억이 새롭다. 건국 이후 처음 딴 올림픽에서의 금메달 소식에 온 나라가 들썩거리고 신문사에서 '호외'까지 발행했던 그 때가.

지금 생각하면 좀 우습게 여겨지지만 어쨌거나 금메달 소식은 역사적인 일대 '사건'이었다.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양정모 선수의 첫 올림픽 금메달!

이제 우리는 나라를 잃은 설움을 딛고 올림픽 세계 10위가 목표인 엄청난 스포츠 강국으로 발전했다. 올림픽도 개최하고 스포츠에서도 당당하게 자리매김을 한 주목 받는 나라가 된 것이다. 하지만 허리가 동강 난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로서 할 일이 많은 미완의 나라이기도 하다. 아직 갈 길이 멀다.
2004-08-30 10:20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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