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홈런을 친뒤 손을 들어 관중들에게 답례하는 이승엽.
ⓒ 오마이뉴스 이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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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라이온즈의 이승엽 선수가 시즌 56호 홈런을 쳐내며 아시아 신기록을 달성했다. 이날 4번 타자로 롯데 자이언츠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 나선 이승엽 선수는 2회초 공격에 나와 자이언츠 선발 이정민 선수의 공을 통타, 56호 홈런을 기록한 것이다.

이승엽 선수 이전 아시아 기록은 55개. 1964년 당시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였던 왕정치 현 다이에 호크스 감독이 이후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깨지지 않는 전무후무한 아시아 기록을 세운 것이었다.

40년의 세월동안 이 기록에 많은 선수들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2001년 긴데스 세이부스의 터피 로즈 선수와 작년 세이부 라이온즈의 알렉스 카브레라 선수가 타이기록을 세웠을 뿐 아무도 55개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이승엽 선수도 지난 1999년 이 기록에 도전했으나 54개에서 아쉽게 멈춘 적이 있다.

이렇게 40년 동안 내려오던 55개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 26세의 '국민타자' 이승엽 선수에 의해 깨진 것이다. 내년 미 메이저리그 진출을 호언하고 있는 이승엽 선수는 국내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될 수 있는 2003년에 최연소 300호 홈런(26세 10개월 4일), 최단기간 40호 홈런(78일), 국내 시즌 최다 타점(142점, 1일 현재) 등과 함께 시즌 56호 홈런이라는 아시아 최고의 기록을 세웠다.

필자는 오늘 국내외 다른 선수들과의 비교와 상관관계를 통해 이승엽 선수의 기록의 가치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왕정치와 이승엽

사실 왕정치 다이에 호크스 감독과 이승엽을 비교하기란 정말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시대가 달랐고, 투수의 능력과 타자의 능력 또한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 수 위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나온 기록과 국내 프로야구에서 나온 기록을 단순 비교한다는 것 자체도 충분히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당시 나카시마 선수와 함께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O-N타선을 이끌었던 왕정치 선수는 실로 대단한 선수였고, 일본 리그에 있어서 홈런 기록 말고도 많은 기록들을 남겼다. 우선 행크 아론이 세운 755개의 홈런을 넘어서는 세계 기록인 886개의 통산 홈런(이승엽의 최연소 300홈런이 지난 6월에 나왔으니 900개에 가까운 통산 홈런은 실로 대단한 기록일 수밖에 없다), 1964년에 세운 55개의 시즌 홈런, 1973~1974년 시즌 연속 타격 3관왕을 비롯하여 시즌 홈런 1위 15번, 타율 1위 5회, 타점 1위, 13번, 출루율 1위 12번 등 일본 야구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이승엽 선수의 56호 홈런. 물론, 왕정치 선수처럼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고, 이승엽 선수의 나이나 전적으로 보았을 때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승엽 선수는 이미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역사에 남을 만한 기록을 세웠다. 시즌 홈런을 두 번이나 갈아 치웠고, 타점(139점, 9월 23일 현재), 득점(128점, 1999년) 등에서 국내 최고의 기록을 자랑하고 있다. 이밖에도 최다안타, 장타율 등에서도 상위권에 속해 있다. 다시 말해 이승엽 선수 또한 국내 프로야구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한 획을 그을 만한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타자' 이승엽에게는 이제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 프로야구의 위상을 떨칠 수 있도록 세계적인 활동을 기대한다.

이승엽, 심정수에게 고마워하라

 심정수 선수
ⓒ 이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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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50 단위의 시즌 홈런은 상상도 못하는 숫자였다. 이글스의 장종훈 선수가 1992년에 41개의 홈런을 쳐냈을 때만 해도 40개의 벽을 깨지리라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1998년 외국인 선수들이 들어오면서 바뀌었다.

1998년 용병 첫해 장종훈 선수의 이전 기록인 41개를 베어스의 외국인 선수 타이론 우즈가 깬 것이다. 당시 이승엽 선수가 쳐낸 홈런 숫자는 38개. 우즈 선수는 42개를 쳐내며 시즌 MVP까지 거머쥐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승엽 선수는 우즈 선수의 좋은 활약이 자극이 된 듯 이듬해인 1999년에 54개 홈런을 쳐내며 국내 최고의 홈런 타자로 군림하게 된다. 1999년에도 45개의 홈런을 쳐내며 뒤를 쫓았던 로마이어(전 이글스 소속)라는 외국인 선수가 있었기에 도움이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이승엽 선수. 99년에 54개를 쳐내기는 했지만, 2000년과 2001년에는 36개와 39개밖에 기록하지 못하며 다시 한번 50개 숫자를 넘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만들었다.

2002년 드디어 이승엽 선수는 라이벌을 만나게 된다. 그의 이름은 유니콘스의 심정수 선수. 베어스에서 유니콘스로 팀을 옮기게 된 심정수 선수는 2001년 이렇다할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2002년 시즌에는 무려 46개의 홈런을 쳐내며 47개로 홈런 1위를 차지한 이승엽 선수와 시즌 내내 홈런 경쟁을 펼쳐 올해의 대기록을 예고하였다.

그리고, 2003년. 시즌 초반이었던 5월만 하더라도 심정수 선수는 2~3개 정도의 차이로 이승엽 선수를 추격한다. 하지만, 6월에 들어 이승엽 선수가 30개까지 몰아치며 무려 8개 차로 간격을 벌리며 멀리 도망가는 듯 보였다. 6월 22일 최연소 300홈런의 기록까지 세우며 전반기 막판까지도 이승엽 선수의 독주가 예상됐으나 심정수 선수가 조용히 쫓아오며 전반기를 5개 차이로 마치게 된다.

시즌 중반을 5개 차 정도로 추격하던 심정수 선수는 이승엽 선수가 폭행사건에 휘말려 2경기 출장정지를 당한 기간을 틈 타 41개를 기록중이던 이승엽 선수를 2개 차(39개)까지 따라 붙는다.

8월 중순(17일 기록) 무려 1개 차로 따라잡은 심정수 선수는 본격적인 홈런 레이스를 시작하게 된다. 이런 홈런 레이스는 9월 초까지 계속 되지만, 9월 4일부터 7일까지 무려 4개를 치는 등 특유의 몰아치기를 선보인 이승엽 선수는 50개 고지를 가뿐하게 넘어섰고, 53호 홈런을 쳐낼 때까지 심정수 선수를 5개 차로 따돌리며 완승을 거두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후 이승엽 선수는 8게임동안 단 한 개의 홈런도 쳐내지 못하는 슬럼프에 들어서며 다시 한번 심정수 선수에게 기회가 찾아오고, 심 선수는 20일 51호 홈런을 쳐내며 다시 이승엽 선수를 2개 차로 바짝 추격하기 시작한다.

바로 다음날 이승엽의 54호 홈런이 나오자 심 선수는 23일 52호 홈런을 쳐내며 다시 따라 붙고 시즌 막판 53호 홈런까지 쳐낸다. 아시아 신기록이 나올 때까지 심정수 선수는 국내 최초의 두 선수 50홈런 기록을 세우며 이승엽 선수의 라이벌로서의 확실한 활약을 보여준다.

물론, 심정수 선수의 뛰어난 활약이 이승엽 선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는지 안주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맥과이어와 본즈가 미 메이저리그 기록을 갱신할 때 세미 소사라는 라이벌이 있었듯 이승엽 선수의 활약에는 분명 심정수 선수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싶다. 아직 이승엽 선수와 심정수 선수의 홈런 대결은 끝나지 않았다. 대한민국 야구선수들로서 야구 생명이 끝날 때까지 선의의 경쟁을 펼쳐주길 기대한다.

팀 동료의 수훈은?

이승엽의 기록에 있어서 심정수 선수가 리그 라이벌로서 견인차 역할을 해주었다면, 팀 동료 중에서는 양준혁 선수와 마해영 선수의 역할을 인정해야 할 듯 하다. 이들이 이승엽 선수 홈런에 무슨 도움이 되었는가 반문을 하는 독자들이 있을 수 있지만, 야구를 좀더 깊이 들여다 보면 그 해답을 알 수 있다.

야구는 개인의 능력과 팀의 능력이 복합적으로 필요한 단체 운동이다. 투수는 투수대로, 야수는 야수대로, 타자는 타자대로 최대의 능력을 보여줘야 하면서도 희생번트, 희생플라이 등 팀 플레이가 요구되기도 한다. 1번 타자가 보여줘야 할 능력이 있고, 4번 타자가 보여줘야 할 능력이 있듯 야구에서는 각자 능력을 보여줘야 하지만, 반면 팀 동료들과 융합된 플레이를 보여줘야 한다.

이승엽, 양준혁, 마해영은 라이온즈를 대표하는 클린업 트리오다. 지금 현 시점에서 본다면, 국내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중심타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일 현재 마해영의 기록은 타율 0.289 145 안타, 123 타점, 홈런 38개이고, 양준혁 선수는 타율 0.329, 160안타 91타점, 32 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이승엽을 포함하여 세 선수의 기록은 무려 446안타, 356타점, 홈런 125개이다.

우·동·수 트리오로 2000년 이름을 날렸던 우즈, 김동주, 심정수 선수의 베어스 중심타선(국내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클린업 트리오라는 말도 있다)의 기록이 448 안타, 311 타점, 99 홈런이었다. 우동수 트리오의 기록과 비교해 봐도 이승엽, 양준혁, 마해영 선수가 세운 기록은 대단할 수밖에 없다.

한 번 생각해보자. 팀이 2대1로 박빙의 우위를 지키고 있는 상황. 주자 2루의 2아웃. 3번 타자 이승엽 선수가 타석에 들어선다. 이런 경우 상대팀 감독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고의사구? 뒤에는 마해영 선수와 양준혁 선수가 버티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필자라면, 어쩔 수 없이 이승엽 선수와 승부를 해야 할 것으로 본다. 만약, 뒤에 뛰어난 선수들이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면, 당연히 고의사구로 이승엽 선수를 걸러내고, 다음 타자와 승부를 걸면 되는 것이지만, 마해영과 양준혁이 버티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그와 승부를 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승엽 선수가 홈런을 쳐낸 것. 물론, 이승엽 선수의 능력일 것이다. 하지만, 마해영이나 양준혁 선수와 같은 뛰어난 선수들이 뒤를 받쳐주지 못했다면, 이런 세계적인 기록은 나오기 힘들지 않았나 싶다. 그렇기에 이승엽 선수의 아시아 신기록의 최고의 도우미는 팀 동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말 가치를 인정받는 기록이 되길

이승엽 선수의 홈런은 100년이 넘는 아시아 야구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큰 기록이다. 하지만, 이 기록을 먼저 인정해 줘야 하는 사람들은 분명 국내 프로야구단들과 팬들이다. 이들이 그 가치를 인정해줘야 그 가치가 살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56호 홈런은 분명 이승엽 선수 개인의 가치뿐 아니라 국내 프로야구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해줄만한 큰 사건이다. 어떤 언론에서는 이승엽 홈런볼의 가치가 3억원이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그러나, 국내 프로야구에 있어서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그 의미 이상이 있다고 본다.

27일 부산에서 있었던 관중난동사건, 그리고, 전후 일어났던 이승엽 홈런에 대한 열풍. 이것이 그것이 한국야구의 현실을 보여주는 모습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것으로 인해 프로야구에서 거품이 작용할 수도 있다.

관중 감소와 팬들의 관심 감소 등 국내 프로야구의 현실을 가리는 거품 말이다. 그리고 분명 기록 가치에 대한 논란은 있을 것이다. '한국 야구 수준이 낮다' '국내 투수들의 기량이 뛰어나지 못하다' 등 이승엽 선수의 기록에 대하여 평가절하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 분명히 인정받아야 한다고 본다. 이승엽 선수의 기록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당연히 국내 프로야구의 수준도 올라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승엽 선수 기록이 인정받도록 노력해야할 사람들은 분명 라이온즈 구단을 비롯하여 국내 프로야구일 것이다. 그리고 팬들도 이 기록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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