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즌 48호와 49호 홈런을 쳐낸 라이온즈의 이승엽 선수
ⓒ 이성환
지난 9월 4일 대구시민운동장에서 벌어진 기아타이거즈와 삼성라이온즈간의 시즌 14차전. 같은 공동 2위의 싸움이었지만 두 팀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 팀은 11연승 중이었고, 다른 한 팀은 4연패 중이었으니 어쩌면 두 팀의 분위기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번 시즌 상반기가 끝났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라이온즈는 현대유니콘스, SK와이번스와 함께 3강 체제를 구축하는 듯 보였고, 타이거즈는 LG트윈스에게 덜미를 잡혀 5위까지 떨어지는 수모를 당하며 포스트시즌 진출마저 불투명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타이거즈는 라이온즈와의 시즌 12, 13차전 더블헤더를 모두 독식하며 11연승과 함께 64승으로 높게만 보였던 라이온즈와 공동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시즌 초반 폭력사건에 휘말려 부진을 면치 못했던 김진우 선수의 부활과 새 용병 존슨의 활약, 중간 계투진의 완벽한 역할 분담 그리고 타력의 집중력이 합쳐지며 타이거즈 앞에는 거칠 것이 없어 보이는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이에 반해 라이온즈는 후반기 들어 팀 내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나며 1위 유니콘스에게 밀리는 것(6경기 뒤져있다)은 둘째 치고 3위까지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 12승을 거두며 에이스 역할을 해주던 임창용 선수가 부진으로 인해 2군에 내려가 있고, 주전 포수 진갑용 선수 또한 무릎부상으로 출장을 못하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유격수 브리또 선수가 무릎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하며 수비와 공격력에서 큰 구멍을 놓게 되었다. 이밖에도 선발투수로 활약을 펼쳐야 할 라이언 선수는 선발 로테이션 조차 끼지 못하고 있고, 마무리 노장진 선수 또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중심 타선인 이승엽, 마해영, 양준혁 선수가 최근 5경기에서 2할 대 초반의 빈타에 허덕이고 있으니 4연패는 어찌 보면 당연한 듯 보인다.

이런 분위기에서 만난 두 팀. 분명 분위기는 타이거즈 분위기였지만, 승리에 대한 갈망은 라이온즈가 더 강해 보였다.

경기 초반은 타이거즈 분위기

선발 투수에서 무게는 타이거즈에 있어 보였다. 비록 4승 5패 방어율 3.93의 성적이지만, 타이거즈 선발 강철민 선수는 최근 경기에서 연속으로 승리를 거두며 타이거즈 11연승에 한 몫을 해 준 선수였다. 이에 반해 라이온즈 선발 정현욱 선수는 비록 140km 후반의 직구는 가지고 있지만, 2승 4패 1세이브 방어율 4.02의 초라한 성적 뿐 아니라 올 시즌 선발로 나온 것이 단 두 차례밖에 없어 위력적인 투구를 기대할 상황이 아니었다.

11연승과 선발 투수의 무게에서 분명 경기 초반은 타이거즈 분위기였다. 전날 더블헤더를 독식한 것도 좋았지만, 2연패를 당할 수도 있었던 분위기에서 경기 막판 역전을 하는 저력을 보여주며 2위로 올라섰으니 타이거즈 덕아웃의 분위기는 당연히 최고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분위기를 탄 듯 타이거즈는 2회 초 김경언 선수와 김지훈 선수의 볼넷 두 개로 만든 찬스에서 9번 타자 이현곤 선수의 우중간 2루타로 대거 2점을 득점 한다. 전날 분위기를 이어온 것이다. 그러나 이어 나온 이종범 선수의 안타성 타구가 투수 정현욱 선수의 다리에 맞고 굴절되어 1루수 이승엽 선수에게 굴러가 아웃되며 상승 분위기는 멈췄다.

3회 초 공격에서도 타이거즈는 두개의 볼넷과 김종국 선수의 도루로 만들어 낸 무사 주자 1,3루 찬스에서 홍세완 선수의 1타점 적시타로 점수를 뽑았으나 이어 나온 박재홍, 김경언, 이재주 선수가 범타로 물러나 대량 득점기회를 놓쳤다.

홈런으로 분위기를 돌려놓다

요즘 연패에 늪에 빠지며 라이온즈에게는 고민거리가 있었다. 부상도 큰 문제지만, 중심 타선이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승엽, 양준혁, 마해영으로 이어지는 클린업 트리오는 8개 구단 최고라는 찬사를 듣지만, 요즘 들어 힘을 펴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문제로 분위기가 가라앉아있는 라이온즈에게 승리를 위해서는 중심타선이 살아나는 길밖에 없었다.

이날 라이온즈 중심타선의 물고를 튼 선수는 마해영 선수. 2점을 실점하고 바로 맞은 2회말 공격. 최근 부진을 면치 못하던 마해영 선수는 이날 6번 타자로 경기에 출전하였다.

4번 타자로 활약해야 하는 선수가 6번에 있는 것은 본인으로서도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마 선수는 중앙 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쳐내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다. 마 선수의 홈런에 흔들린 타이거즈 선발 강철민 선수는 이후 무려 5안타를 맞으며 무너지고 말았다.

이어진 3회 초 공격 최근 5경기에서 2할의 타율로 홈런도 기록하지 못했던 이승엽 선수가 주자 1,3루의 찬스에서 나온다. 이승엽 선수는 우측 담장을 넘기는 3점 홈런을 쳐내며 역전에 성공하고, 그동안의 부진도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회와 3회 두 번에 이어 나온 홈런이 이날 승부에서 분위기를 라이온즈 쪽으로 바꿔오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두개의 홈런이 나온 후 정현욱 투수는 7회 초 1아웃까지 타이거즈 타자들을 잘 요리하여 6과 1/3이닝동안 비록 4실점 했지만, 팀 승리에 큰 보탬이 되며 본인의 시즌 첫 선발승과 함께 팀 연패를 자르는데 견인차 역할을 해 주었다.

야구는 분위기와 집중력 싸움

흔히들 야구와 배구는 비슷한 스포츠라고 한다. 비록 완전히 다른 실외와 실내경기지만 게임이 끝날 때까지 시간제한이 없다는 것과 분위기에 의해 순식간에 승부가 뒤집어 지고, 집중력에 의해 승부가 가려진다는 점에서 많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야구에서 집중력과 그 집중력에 의해 좌우되는 분위기는 야구에서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이날 경기에서 타이거즈는 집중력 싸움에서 졌다. 아니, 스스로 집중력 없는 싸움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실 11연승을 하고, 특히 전날 더블헤더를 독식했고, 2위까지 차지했으니 집중력이 조금은 떨어졌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의 홈런으로 4실점을 할 때까지는 그래도 승부가 어디로 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중간 계투진에서 라이온즈보다는 타이거즈가 조금 더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나온 점수들은 타이거즈에 는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다.

5회말 1사후 나온 연속 볼넷으로 몰린 주자 1,2루의 위기. 5번 김한수 선수가 친 공이 3루수 이현곤 선수 쪽으로 굴러갔다. 순간, 파울이라고 생각한 이 선수는 멈칫하였고, 결국 타자주자는 1루에서 세이프가 된다. 2사 2,3루가 되어야할 상황이 1사 만루로 바뀐 것이다. 이 선수의 실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선수는 다음 타자 마해영 선수의 안타성 타구를 잘 잡는다. 워낙 빠른 타구라 2루로 던진다면, 병살로 이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 선수는 공을 1루로 던졌고, 결국 3대4의 스코어를 3대5로 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타이거즈의 수비 실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타이거즈는 7회 초 공격에서 다시 1점을 쫓아가 4대5로 만들었다. 하지만 말 공격에서 양준혁과 이승엽, 김한수 선수에게 연속 안타와 볼넷을 허용에 무사 만루의 위기를 맞았다. 여기서 마해영 선수가 좌전 안타를 쳤는데 만약 홈으로 제대로 송구했다면, 1실점으로 막을 수 있는 상황을 송구실책으로 2실점으로 만들었다. 스코어는 4대7.

고우석 투수는 여기서 심성보와 현제윤 선수를 잡아내어 2사로 만들지만, 대타 강동우 선수가 1루 땅볼을 쳐냈을 때 투수 커버플레이 실수로 1점을 헌납하고 말았다. 결국, 3점차의 점수를 실수로 만들어준 안타로 4점차로 만들며 승리를 헌납한 것이다.

이승엽 아시아 신기록 D-7

이날 경기장에는 LA다저스의 토미 라소다 전 감독이자 부사장이 자리했다. 필자는 의외로 이런 분위기에서 이승엽 선수가 홈런을 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원래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면, 홈런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이 야구고, 이 선수 또한 다저스로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몇 차례 한 바 있어 오히려 좋은 활약을 보이기에는 힘든 경기가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이승엽 선수의 스타성은 참으로 대단하였다. 작년 코리안 시리즈 내내 빈타에 허덕이다가 6차전에서 팀이 가장 필요할 때 동점 쓰리런 홈런을 친 것과 같이 그렇게 극박한 상황에서 홈런을 칠 수 있는 것 그것이 스타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이야기했듯 이 선수는 3회와 8회 각각 48과 49호 홈런을 쳐냈다. 특히 3회 초 홈런은 역전 쓰리런 홈런으로 그 의미가 컸다.

하지만, 기자가 이 선수를 칭찬 해주고 싶은 것은 이날 몇 차례 나온 뛰어난 호수비와 파울볼을 잡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었다. 자칫 스타플레이어들은 중요한 상황이 아니면, 몸을 사릴 수 있다. 자기 몸 상태에 따라 몇 억이 왔다 갔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선수는 어떤 상황에서도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를 보여야 한다.

그리고, 스타플레이어는 홈런을 칠 때 치더라도 안타를 칠 때는 칠 줄 알아야하는데 이 선수는 이런 모습도 보여주었다. 7회말 공격 양준혁 선수가 우전 안타를 치고 나간 후 이승엽 선수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우전 안타를 만들어내 팀이 5 대 4로 쫓기고 있는 상황을 8 대 4로 만드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승엽 선수의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다. 메이저리그 진출 후 그가 성공을 할지 실패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로 찬사를 받을 수 있을 만큼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왕정치 선수가 세웠던 55개 아시아 신기록을 깨기 위해 이제 7개밖에 남지 않았다. 필자는 야구팬으로써 그가 메이저리그로 진출하기 전 이 기록을 깨 한국야구의 위상을 높여주길 기대한다.

승리는 라이온즈, 상승세는 타이거즈

오늘 승리는 라이온즈에게 돌아갔다. 라이온즈는 4연패를 끊고, 2위 자리를 지키는 동시에 라이벌인 타이거즈의 12연승도 저지하는 값진 승리를 따냈다. 그러나 필자가 경기를 지켜보면서 승리를 거두는 라이온즈 선수들보다 타이거즈 선수들에게서 더 많은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타이거즈 선수는 지는 경기에서도 경기를 즐기면서 하는 분위기였고, 라이온즈 선수들은 이기면서도 왠지 뭔가에 쫓기는 듯한 인상을 보여주었다. 이는 이날 경기의 투수 교체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라이온즈는 무려 5점차의 리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9회 초 수비에서 무려 투수를 셋 투입하는 등 왠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이날 경기의 결과가 타이거즈의 상승세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타이거즈는 1패를 당했지만, 라이온즈와 상대성적에서 9승 1무 4패의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고, 타이거즈는 전력도 안정적이다. 여기에 타이거즈는 팀 분위기가 아주 좋다. 이에 비해 라이온즈는 선발진이 붕괴되고, 선수들이 부상에 허덕이는 등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다. 이런 분위기가 시즌 막판 그리고 포스트시즌에 어떻게 반영될지 궁금해진다.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는 듯한 의외의 결과들. 이것이 야구의 재미 아닐까?

9월 4일 타이거즈 vs 라이온즈 시즌 14차전 경기결과

승리투수 정현욱 6과 1/3이닝 4실점(시즌 3승 4패 1세이브 방어율 4.16)
패전투수 강철민 2이닝 4실점(시즌 4승 6패 1홀드 방어율 4.30)

1
2
3
4
5
6
7
8
9
R
H
E
B
타이거즈
0
2
1
0
0
0
1
0
0
4
7
1
8
라이온즈
0
1
3
0
1
0
3
1
X
9
14
1
5
2003-09-05 11:49 ⓒ 2007 OhmyNews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