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1@이번 봉황대기 대회가 시작되면서 각종 언론들의 관심은 청각장애 성심학교 야구부 출전에 쏠렸다. 물론, 청각장애아들이 봉황대기라는 큰 대회에 나와 '인간승리'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참 보기 좋았던 건 사실이다.그러나 성심학교가 2회전에서 탈락한 후 각종 언론들의 관심이 썰물 빠지듯 없어지는 모습을 보고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는 이번 대회 주관사 일간스포츠에서조차도 경기결과와 관련한 조그마한 기사 정도에 그쳤으니 그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전국 최대 규모의 봉황대기사실 봉황대기 대회는 국내 고교야구가 자랑하는 큰 대회이다. 그럼 봉황대기 결승전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 봉황대기 대회에 대하여 알아보자. 봉황대기 대회의 가장 큰 매력은 예선전이 없는 전국대회라는 것에 있다.봉황대기는 서울에서 열리는 가장 마지막 전국대회이며 전국에 있는 모든 고등학교 야구팀이 아무런 제한 없이 출전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청각장애인 학교인 성심학교 야구부가 출전할 기회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전국 최대 규모의 대회이다 보니 봉황대기에서는 유난히 이변도 많고, 흥미도 많이 느낄 수가 있었다.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신생팀이 강팀을 이기기도 하고, 약체로 예상된 팀이 '신데렐라'와 같이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1971년부터 시작된 봉황대기는 지금까지 많은 스타들을 배출하였다. 1회 대회에서는 이름조차 생소한 대광고가 현 현대유니콘스 김재박 감독을 앞세워 스타플레이어였던 고 윤몽룡 선수가 이끄는 강호 중앙고를 누르며 결승전에 진출하는 기적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대구상고의 장효조 선수는 73년, 74년 팀이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현 SK와이번스 조범현 감독은 77년 대회 MVP를 차지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1980년에는 광주일고의 선동열 선수가 노히트노런을 기록하기도 했고, 같은 해 대구상고의 이종두 선수가 고교야구 사상 첫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지금은 메이저리거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박찬호 선수도 1989년 공주고 1학년 시절 휘문고의 박정혁 선수에게 무려 3연타석 홈런을 빼앗기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3학년이었던 1991년에는 박재홍이 이끄는 광주일고에게 완봉승을 거두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밖에도 박노준, 조계현, 조성민, 이승엽, 김동주 등도 봉황대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2003년 제33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제33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를 알리는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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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57개 고교야구팀이 참가, 지난 8월 5일 개막한 봉황대기에는 올 시즌 고교야구와 비슷하게 고른 전력을 갖춘 팀들간의 대회였다. 지난해 천안북일고와 광주일고가 양대 산맥을 이루며 전국대회를 휩쓰는 모습을 보였으나, 올 시즌에는 광주동성고, 순천효천고, 대구고, 경주고 등 여러 팀이 전국대회 패권을 나누어가지며 '춘추 전국 시대'를 이끌어왔다.이번 봉황대기에서도 대회 특성답게 의외의 승부가 벌어지고 있다. 작년 우승팀인 천안북일고, 국가대표팀 기량을 갖춘 덕수정보고, 대통령배와 대붕기 우승팀인 대구고, 청룡기 우승팀 동성고 등이 우승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일찌감치 탈락하는 등 수모를 겪었다. 대신 선린인터넷고, 경남고, 분당야탑고 등의 약진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대회였다.결승 격돌, 강호 중앙고 대 '신데렐라' 경남고이번 대회에서 최종 4강에 올랐던 팀은 중앙, 세광, 선린인터넷 그리고, 경남. 전문가들은 중앙고는 강팀으로 분석했으나, 나머지 3팀은 예상밖의 선전이었다고 보았다. 여기서 중앙고는 세광고를 상대로 이영욱과 신동천의 투런 홈런을 앞세우고, 이기화 선수의 호투에 힘입어 9대 5 승리를 거두며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경남고는 선린인터넷고를 상대로 서정민, 유영재, 황준호, 김상록 투수들이 이어 던지며 2대 0 완봉승을 거두어 결승전에 진출하였다.원래 21일에 치러질 예정이었던 결승전은 마치 장마를 방불케 하는 비로 인해 순연되어 5일이나 지난 26일 저녁에 열리게 되었다. 필자는 경기가 시작되기 전 양 팀 덕아웃을 방문하였는데, 중앙고 덕아웃은 상당히 긴장감이 도는 분위기였고, 경남고 덕아웃은 자유스럽게 즐기는 분위기였다. 작년 준우승의 좌절을 만회하려는 중앙고와 약체 팀으로 분류되었던 팀이 결승까지 진출한 것만도 만족하며 편하게 해보자는 경남고와의 분위기 차이는 확실히 경기에서도 나타났다.스타 예감, 김상록
 결승전에는 경남고와 중앙고가 맞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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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듯 지난 22일 준결승이 있은 후 집중호우 덕분에 26일이 돼서야 결승전이 열릴 수 있었다. 이는 분명 선발 투수들에게 충분히 쉴 만한 시간을 주었고, 그것이 이번 승부에 큰 관건으로 작용될 것으로 보였다. 특히 대형 투수 남찬섭 선수를 보유하고 있는 중앙고에게는 그 힘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되었다. 경남고 또한 에이스 황준호에 더 기대를 걸었을 것이다.하지만, 뜻밖에도 호투는 남찬섭도 황준호도 아닌 경남고 2년생 김상록 선수에게서 나왔다. 김상록 선수는 9이닝을 완투하며 무려 9개 삼진을 뽑아내고 1실점에 그치는 위력적인 투구를 자랑했다. 특이한 것은 김 선수가 투수로 전환한 지가 2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개성중학교 시절 투수로 활약했지만, 팔꿈치 문제로 투수를 쉬고 있었다. 오랫동안 투구를 하지 않았던 선수답지 않은 위기관리능력과 배짱은 정말로 칭찬해주고 싶은 대목이었다.사실 경남고 이종운 감독은 김상록 선수에게 경기 초반 3~4회 정도만 막아주길 기대했을 것이다. 자칫 김 선수가 무너지면, 에이스 황준호와 풍부한 불펜진을 투입하여 경기를 이끌어가길 기대하였을 것이다. 그런 김 선수가 봉황대기 우승을 이끈 것이다.김상록 선수의 첫 번째 장점은 위기관리능력이다. 6대 0으로 앞서고 있던 4회 초 수비. 1사후 좌익선상 2루타와 중전 앞 안타를 맞으며 1사 1, 3루의 위기를 맞이했으나, 연속으로 나온 중앙고의 이희근과 신동천 선수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1실점으로 위기를 막아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7회 초 수비에서도 1사 후 이희곤 선수에게 우중간 2루타를 허용했으나, 바로 나온 선수들을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아주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김 선수가 무려 9개의 삼진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은 확실한 승부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슬라이더로 타자들의 눈을 흐려놓은 다음 몸쪽으로 붙이는 직구와 같은 승부구가 있었기에 130km대의 스피드를 가지고도 9이닝 1실점 완투를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김 선수의 두 번째 장점은 야구 센스이다. 필자는 그가 1회 초 수비에서 1사 후 나온 2루수 앞 땅볼에서 완벽한 커버플레이를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그의 야구 센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3회 초 공격에서도 3루수 에러로 중앙고 박문근 선수를 출루시킨 뒤 1루 베이스에 있는 박 선수를 지속적으로 견제하더니 김승구 선수의 기습번트 안타로 2루로 진루한 박 선수를 결국 견제로 잡아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김상록 투수의 견제능력으로 위기를 탈출했다고 볼 수 있다.김 선수는 이날 경기에서 무려 8개의 안타를 허용했다. 그러나 8개 안타를 허용하면서도 뛰어난 야구 센스를 앞세워, 뒤지고 있는 팀 타자들은 서두를 수밖에 없다는 단점을 간파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장점은 그의 투구의 제구력에서 올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제구력이 좋으니 사사구 하나 없는 경기를 펼친 것이다.반면, 중앙고의 선발로 나선 이기화 선수는 너무 쉽게 1회말에 무너지고 말았다. 사실 중앙고의 조윤식 감독도 경남고 감독과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대회 기간 내내 혹사한 남찬섭 선수를 아끼기 위해 이기화 투수가 3회 정도를 1~2실점 정도로 막아주길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기화 선수가 남긴 것은 1/3이닝 2실점. 중전 앞 안타와 볼넷, 도루를 허용하며 1회부터 1사 1, 3루의 위기를 자초하고 강판 당한 것이다.뒤이어 나온 남찬섭 선수. 혹사를 당한 것도 있지만, 이렇게 빨리 나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기에 몸도 제대로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등판하였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남찬섭은 2루타 2개를 포함 3안타를 맞으며 3점을 내주며 무너지고 말았다. 3회 초 수비에 나선 남찬섭 투수는 다시 4안타 2실점했고 사실상 승부가 결정되고 말았다.집중력이 승부를 갈랐다
 열심히 응원하고 있는 중앙고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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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8. 경남고와 중앙고의 안타 숫자이다. 거의 비슷한 숫자다. 그러나 승부는 6대 1 경남고의 완벽한 승리. 역시 공격의 집중력이 승부를 가른 것이다. 경남고는 1회와 3회의 찬스에서 10개의 안타 중 무려 8개를 집중시키며 6득점에 성공하였고, 중앙고는 8개의 안타를 쳐내면서도 1득점, 그것도 안타도 아닌 더블스틸로 얻어내는 집중력이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었다.수비에서도 집중력이 승부를 갈랐다. 중앙고는 경기에서 2개의 에러를 허용했다. 2개의 에러 중 결정적인 에러는 바로 3회에 나온 송구 에러. 4대 0으로 뒤지고 있는 상태에서 1점이 아쉬운 중앙고가 유격수 송구에러로 1점을 헌납한 것이다. 야구에서 한방으로 최대한 얻어낼 수 있는 점수가 4점이라 것을 감안할 때 이 점수는 사실상 승부를 가르는 점수였다.이 부분에서 올 최고의 유격수로 꼽히는 중앙고 김재호 선수의 공백이 아쉬웠다. 김재호 선수는 현재 청소년 대표를 선발되어 훈련을 받고 있어 대회에 불참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내야에 구멍이 생긴 셈이었다. 김재호 선수의 공백은 투타 양면에서 중앙고의 전력 손실을 불러왔다.중앙고 최윤식 감독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김재호 선수의 공백이 아쉬웠다. 내야가 안정 돼야 투수들이 안심하고 던지는데 내야 수비가 불안하여 다들 공중에 떠있는 듯하였다. 타력에 있어서도 김 선수가 있었다면, 김상록 선수를 공략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반면, 경남고는 유격수 김태곤 선수의 뛰어난 수비력을 앞세워 안정된 내야를 이끌어갔다. 김태곤 선수는 타력이 조금 약한 것이 흠인데, 이 점만 보완된다면, 뛰어난 선수로 발전 할 수 있다는 예감을 받았다.경남고, 봉황을 품안에...
 경남고 우승 확정 후 학생들과 선수들이 같이 교가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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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경남고는 김상록 선수의 뛰어난 투구와 나머지 선수들의 집중력을 앞세워 우승을 거머쥐었다. 올해 같은 지역 부산고에 밀려 그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던 경남고에게는 아주 귀한 선물을 받게 된 것이다. 1회전과 16강전, 결승전에서 강호 천안북일고, 광주일고, 중앙고를 물리치고, 8강, 준결승전에서도 돌풍의 팀인 분당야탑고, 선린인터넷고를 각각 꺾는 좋은 플레이를 보여준 경남고등학교. 1947년부터 20번의 전국대회 우승으로 야구 명문 고등학교 명단에 또 하나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이날 경기를 보면서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도 보기 좋았지만, 경기장을 찾은 학생들과 동문 그리고, 고교 야구팬들의 힘찬 응원과 고교야구에서만 느낄 수 있는 패기가 어두운 한국 야구의 미래를 빛내주는 희망이라는 느낌을 받았다.@BOX2@@BOX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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