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경기에서 시즌 31호, 통산 299호 홈런을 쳐낸 라이온즈의 이승엽 선수
ⓒ 이성환
2003년 시즌 코리안 시리즈 전초전이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시즌 1,2위를 다투고 있는 팀들답게 경기 분위기는 코리안 시리즈 못지 않았다. 일단, 라이온즈 이승엽 선수의 300호 홈런을 기대하는 팬들로 대구시민구장의 관중석은 꽉찼다.

경기 분위기도 틀렸다. 좋은 찬스를 자주 무산시키는 타자들의 모습에서는 마치 포스트시즌에서 긴장한 선수들을 보는 듯 하였고, 한 팀이 크게 앞서갈듯이 보이다가도 어느새 따라 잡히고, 경기 내내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모습도 포스트시즌 경기 같았다.

20일 라이온즈와 와이번스간의 시즌 9차전 경기는 선수나 코칭스태프들이야 피가 마르는 승부였겠지만, 어쩌면 이승엽 선수의 300호 홈런을 보기 위해 대구시민구장에 모인 팬들에게는 더 할 나이 없이 재미있는 짜릿한 승부였다.

초·중반 와이번스 분위기

경기 초반은 투수전이었다. 와이번스의 선발투수로 나온 채병룡 선수는 방어율 3.21, 7승 1패로 팀 내에서 최다승을 기록하고 있고, 전체 다승 3위, 방어율 6위의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었다. 특히 라이온즈 상대로 2승(방어율 1.84)의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어 이날도 좋은 경기를 예상하였다.

라이온즈의 선발투수인 배영수 선수는 방어율 4.81, 5승 4패, 실점 42점(자책 39점-팀 내 최다)의 안 좋은 모습을 보이지만, 최근 연승을 거두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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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3회까지는 채병룡과 배영수가 경기를 이끌어갔다. 하지만, 결국에는 채병룡 선수는 6이닝 6안타 5사사구 3실점으로 물러났고, 배영수 선수는 5이닝 6안타 5실점으로 물러나며 난타전의 서막을 열었다.

▲ 라이온즈의 김응용 감독
ⓒ 이성환
경기 중반까지는 와이번스의 분위기였다. 3회말 공격에서 라이온즈가 진갑용의 좌중간 솔로 홈런으로 선취점을 앞세워 분위기를 잡아가는 듯 보였으나 이어진 4회초에 와이번스는 대거 5점을 뽑아내며 경기의 주도권을 잡았다.

우선 선두타자로 나온 조원우 선수가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치고 나갔고, 김민재 선수의 보내기번트 이후 이진영 선수의 우익수 앞 안타로 1점을 득점했다.

여기서 라이온즈의 선발 배영수 선수는 완전히 무너졌고, 지난 경기부터 오랜만에 지명타자로 나선 디아즈 선수의 좌중간 2루타, 이호준 선수의 볼 넷, 와일드피칭과 조경환 선수의 중앙 담장을 넘는 투런 홈런까지 묶어 5점을 얻어내며 사실상 승부를 가르는 듯 보였다.

특히 조경환 선수는 제구가 흔들리는 배영수가 분명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으려 들어올 것이라는 것을 노리고, 초구에 큰 스윙으로 홈런을 만들어 내 노련미를 과시했다. 그러나, 경기는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연이은 '기회 무산'과 추가 득점 실패

우선 라이온즈가 경기를 끌려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에게 주어졌던 수많은 찬스를 무산시켰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선 4회말 공격. 선두타자로 나선 강동우 선수가 풀 카운트까지 가는 접전에서 볼 넷을 얻어냈고, 이승엽 선수가 우익수 앞 안타를 쳐 무사 1,2루의 기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어 나온 4번 타자 마해영 선수가 6-4-3으로 이어지는 어이없는 병살타를 쳐 찬스를 무산시켰다.

5회말 공격에서도 2사 1,3루의 기회에서 득점을 하지 못했고, 6회말 공격에서도 2개의 사사구로 만들어낸 무사 1,2루의 찬스를 김한수 선수의 6-4-3 병살로 다시 무산시켜 승부를 어렵게 이끌어가게 만들었다.

▲ 20일 경기에서 뛰어난 타력을 보여준 라이온즈의 진갑용 선수
ⓒ 이성환
와이번스 또한 5점을 득점하며 5대 1로 앞서 가면서도 추가점수를 뽑지 못해 불안한 리드를 지켜갈 수밖에 없었다. 와이번스는 5회초 조원우의 기습번트 안타와 도루를 묶어 1사 3루의 기회를 만들었으나 이어 나온 김민재 선수와 이진영 선수가 연속 삼진을 당하며 추가점을 얻는데 실패하였다.

6회초 공격에서도 5회에 찬스에서 삼진으로 물러났던 김민재 선수가 다시 1사 1,3루 찬스에서 포수 파울플라이로 물러났고, 주루플레이 미숙으로 3루주자가 아웃 당하며 기회를 다시 무산시켰다.

야구전문가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것이 4점의 점수 차와 5점의 점수차이다. 4점의 점수차는 홈런 한 방(만루홈런)이면 쫓아갈 수 있는 점수라 사정권 안이라고 생각하지만, 5점이 되면 만루홈런을 치고도 1점을 더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경기를 포기할 때가 많다는 이야기를 한다. 결국 와이번스가 추가점수를 못 뽑아냄으로써 경기종반 역전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라이온즈의 역전과 이승엽의 299호 아치

우선 경기 종반 분위기를 뒤집은 것은 라이온즈였다. 7회말 선두타자 브리또가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행운의 안타를 치고 진루하자 진갑용이 좌측 담장을 맞추는 2루타를 쳐내 무사 2,3루의 찬스를 만들었고, 1사 후 박한이 선수의 중견수 앞 안타로 2점을 득점하며 3대 5로 따라간다.

여기서 분위기는 완전히 라이온즈로 넘어왔다. 추가 득점 실패에 와이번스는 2점차까지 추격을 당했고, 여기서 송은범 투수의 와일드 피치와 이승엽에 볼 넷을 묶어 만든 2사 1, 3루 기회에서 마해영 타석 때 더블스틸을 감행하며 1점을 추가하였다.

▲ 라이온즈의 용병 브리또
ⓒ 이성환
이미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 라이온즈는 8회말 공격에서 타선이 폭발하며 무려 6점을 득점하며 경기를 10대 5로 뒤집는데 성공한다.

우선 선봉장으로 나선 것은 양준혁 선수. 양준혁 선수는 우측 담장을 넘기는 큰 홈런을 쳐내며 동점을 만들었고, 진갑용 선수가 바뀐 김희걸 투수의 초구를 통타 중앙 담장을 넘는 역전 투런 홈런을 날리며 역전에 성공한다. 이어 김재걸 선수의 좌측 담을 맞추는 2루타와 박한이 선수의 내야안타를 묶어 1점을 득점하여 라이온즈가 8대 5로 앞서나간다.

여기서 하이라이트는 이승엽 선수의 투런 홈런. 2사 2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이승엽 선수는 와이번스 투수 김태한 선수의 초구를 힘있게 끌어당기며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투런 홈런을 만든 것이다. 이승엽 선수의 시즌 31호이자 통산 299호 홈런이었다.

사실 이승엽 선수는 최근 4경기 10타수 2안타 3삼진 6볼 넷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세계 기록(왕정치 27세 3개월 11일)과 국내 기록(장종훈 32세5개월27일)을 동시에 갈아치우는 기록(26세 10개월 2일)이라 부담감이 더 컸을 것이라 예상된다.

투수들의 견제가 심했다고는 하지만, 당연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 만약, 300호 홈런을 맞는다면, 세계 야구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두고두고 남기는 것인데 그것을 원하는 투수가 어디 있을까? 무조건 투수들을 욕하기보다는 그런 역경을 이겨내고 만드는 기록이 더 의미가 크다는 생각을 해주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고 이미 역전을 시킨 상태에서 추가점수로 나온 홈런이라 기쁨은 두배였으리라 생각된다.

이승엽 선수의 홈런이 나왔을 때까지 점수는 10대 5로 라이온즈가 리드. 이미 경기는 끝났다고 생각을 했다.

'역전에 산다' 와이번스

9회초 5대 10으로 뒤진 상황. 선두타자 박경완 선수가 투수 앞 땅볼로 물러날 때까지는 박 선수가 9회초에 다시 한번 타석에 들어설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로 이루어졌고, 믿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 와이번스 선수들은 특유의 끈끈한 플레이로 20일 경기도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다.
ⓒ 이성환
2번째 타자로 나온 조경환 선수가 우중간을 꿰뚫는 2루타를 친다. 그리고, 이어 나온 안재만 선수가 좌익수 앞 안타를 치며 무사 1,3루의 찬스. 8회초 공격을 삼자범퇴로 잘 막았던 오상민 투수가 이렇게 갑자기 무너질 것이라고는 삼성 벤치가 생각도 못하고 있었나보다. 부랴부랴 마무리 노장진 선수를 몸풀게 하고, 바로 경기에 투입시켰다. 그러나, 노장진이 활화산 같이 타오르기 시작한 와이번스 타선을 잠재우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다음 타자로 나온 최태원 선수는 좌측 담장을 맞추는 2루타를 치며 1점을 따라간다. 6대 10. 여기서 이날 4타수 3안타의 맹활약을 보인 톱타자 조원우가 나와 볼 넷을 얻어 1사 만루의 찬스를 이어간다. 여기까지만 해도 와이번스가 역전에 성공하리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단지 "내일 경기에 와이번스 선수들이 힘 받겠네"정도.

그러나, 두 번의 찬스를 무산시켰던 김민재 선수를 대신하여 나온 채종범 선수가 중견수 앞 안타를 치며 2타점을 올려 8대 10으로 바짝 쫓아갈 때는 이미 분위기는 반전되어 있었다.

여기서 노장진 투수는 이진영 타자에게 볼 넷을 허용, 1사 만루의 절대절명의 위기를 자초하고 강판 당한다. 이어 나온 라형진 투수는 이미 분위기를 탄 와이번스 타선을 막을 수가 없었다.

1사 만루의 찬스에서 나온 선수는 지명타자 디아즈 선수. 지난 5월 27일 왼쪽 복사뼈 골절상을 당하여 재활치료를 받다가 19일 경기에서 복귀하여 와이번스 중심타선에 힘을 실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던 디아즈 선수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디아즈는 우중간을 가르는 주자일소 2루타를 쳐낸다. 3타점. 점수는 11대 10 역전. 와이번스가 믿어지지 않는 대역전 드라마를 이끌어 낸 것이었다.

9회말 라이온즈의 마지막 공격에서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선두타자로 나온 양준혁 선수가 와이번스 마무리 조웅천을 상대로 중견수 앞 안타를 쳐내며 찬스를 만든다. 여기에 투수 조웅천의 수비실책까지 합쳐 무사 1,2루의 찬스.

그러나 이어 나온 브리또가 수비력이 좋은 1루수 강혁 선수 앞으로 보내기 번트를 대는 바람에 3루주자가 포스아웃 당하며 선행주자 보내기에 실패한다. 이어 나온 진갑용 선수도 유격수 땅볼로 선행주자를 포스 아웃 시키고, 2사 1,3루에서 나온 김재걸 선수가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나며 와이번스와 라이온즈간의 시즌 9차전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결국 이 박빙의 승부가 브리또의 보내기 번트 실패로 끝나버리고 만 것이다. 라이온즈로서는 두고두고 아쉬워할 경기로 남게 되었다.

박경완 vs 진갑용

▲ 뛰어난 투수리드와 수비력을 자랑하는 와이번스의 박경완 선수
ⓒ 이성환
경기의 승패를 떠나 와이번스 포수 박경완 선수와 라이온즈의 진갑용 포수의 대결은 정말로 흥미로웠다. 지금 현 시점으로 보았을 때 이 두 선수가 국내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포수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날 경기에서는 박경완 선수는 뛰어난 수비력을 자랑했고, 진갑용 선수는 뛰어난 타력을 뽐냈다.

경기 내내 박경완 포수는 채병룡 투수가 스트라이크 같은 볼을 던질 수 있도록 하여 아웃을 잡아갔다. 그러나, 4회말 5회말 위기가 찾아오자 과감하게 직구로 승부하는 투수리드의 묘미를 보여주었다.

가장 큰 위기였던 4회말 마해영 타석(무사 1,2루)에서는 정면 승부로 6-4-3로 이어지는 병살을 만들었고, 5회말 강동우 타석(2사 1,3루)에서는 유격수 앞 땅볼을 만들어 위기를 극복했다.

6회에도 2번의 사사구로 무사 1,2루의 위기를 맞이했으나, 왼쪽 양준혁에게는 바깥쪽 공을 구사하고, 오른쪽 김한수 선수에게는 몸쪽 공을 구사하게 투수리드를 하여 좌익수 플라이와 6-4-3으로 이어지는 병살로 위기를 극복하였다. 그리고, 1회, 2회 수비에서는 두 번 연속으로 도루하는 주자를 잡아내어 뛰어난 도루저지율도 자랑하였다.

삼성 진갑용 포수의 타력 또한 놀라왔다. 이날 진갑용 선수는 5타석 4타수 3안타 2홈런 3타점 1볼 넷을 기록했다. 특히, 8회말에 나온 중앙 담장을 넘는 역전 투런 홈런은 진갑용 타력의 최고조를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9회 마지막 타석에서 유격수 땅볼로 물러나 아쉬움이 남았지만, 이날 보여준 타력은 괴력이라 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8번 타자임에도 팀의 타력을 이끌어갔다.

와이번스가 6승 3패로 시즌 우위 점쳐

와이번스의 이날 승리는 단순히 승리를 넘어설 듯 보인다. 이번 경기는 올 시즌 와이번스가 라이온즈 킬러로 부각되는 동시에 단독 선두 자리를 지킬 수 있는 힘을 받은 경기였다고 볼 수 있다.

5점차로 지고 있다가 뒤집는 그것도 9회에만 6점을 득점해 역전시키는 경기가 있다면, 당연히 그 팀은 자신감이 넘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와이번스의 독주를 견제할 만한 세력인 라이온즈가 당한 패배는 단순한 1패를 넘어서 그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와이번스와 라이온즈는 코리안 시리즈에서 만날 공산이 크다. 만약 그들이 만난다면, 오늘의 승부가 그날 경기에 영향을 미칠까?

필자가 이날 경기를 보며 정말 야구는 심판이 마지막 아웃을 선언할 때까지는 아무도 승부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경기. 결국 이런 것이 야구의 재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2003-06-21 10:18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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