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오늘(4월 17일), 강원도 속초시 엑스포 A구장의 날씨는 추웠다고 합니다. 바다와 가까운데다, 황사를 동반한 강풍이 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오후 5시 30분경, 김도연 선수가 그라운드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후반전, 교체 투입된 김 선수는 힘차게 운동장을 누볐습니다. 힘차게 땅을 박차 올라 공중볼도 다퉜습니다. 하지만 3분, 딱 3분만이었습니다. 갑자기 맨 땅위에 쓰러진 김도연 선수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2002년 4월 17일 오후 8시 15분, <연합뉴스>는 스물 한 살 젊은이의 죽음을 긴급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험멜코리아배 2002 전국춘계대학축구연맹전 겸 대학상비군 선발대회에서 숭실대 선수 김도연(21.2학년)씨가 조선대와의 경기 중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속초 경찰서는 경기에 참여했던 선수들과 관계자들에게 사고 경위를 들었습니다. 다들 특별한 충격은 없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구급차가 없었다는 것.
숭실대 신현호 감독은 "주최측에서 구급차가 떠난 사이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70여분동안 구급차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은 무성의를 증명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유가족과 지도자들은 최악의 상황에서 무리하게 경기를 진행한 주최측에게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대학축구연맹은 춘계대학연맹전을 모두 취소하기로 결정하고, 유병진 회장은 사의를 표명하죠. 대한축구협회에서도 경기국장을 현장에 파견해 조사를 진행합니다. 월드컵 대표팀은 사흘 뒤 열린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에서 묵념을 하고 관중들도 한 청년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얼마 후, <스포츠서울>에는 'MVP 트로피, 형에게 바칩니다'는 기사가 실립니다. 고인의 동생 김도훈이 제7회 무학기 전국 중·고축구대회에서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는 소식이었죠. 인터뷰에서 김도훈군은 "축구를 시키느라 고생한 부모님께 감사한다. 앞으로도 우승도 많이 하고 잘하고 싶다"면서 울먹였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듣고 소설가 김별아씨는 다음과 같은 글을 띄웁니다.
축구는 승리의 환희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패배의 좌절과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의지도 가르친다. 대표팀의 평가전 승리의 환희 뒤에 얼마 전 경기 중에 숨진 숭실대 김도연 선수의 동생 김도훈이 무학기 중·고 축구대회에서 우승해 MVP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의 멈출 수 없는 삶처럼, 축구는 계속된다.
축구는 계속됐습니다. 얼마 뒤 월드컵이 열리고, 우리는 4강 신화에 열광하죠. '김도연'이란 이름은 영광에 묻혀 조용히 잊혀집니다. 아마도 힘있는 어르신들이나 기자들이나 모두 알고 있을 겁니다. 왜 한창 나이 젊은이가 그렇게 허망하게 죽어갔는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하지만 아무 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작년 8월 1일 광주에서 열린 상무와 부산2군과의 경기에서 장기붕 선수가 심장쇼크로 호흡장애를 일으켰을 때도 구급차는 보이지 않았다죠.
|
▲ 스물 한 살의 아이스하키 청년, 최승호 선수 역시 스물 한 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작년 11월 22일 광운대학교에서 열린 고인의 영결식. 동료 선수의 눈물 |
ⓒ 김진석 | 관련사진보기 |
최근 모 구장에서 열린 아마추어 전국축구대회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운동장에 선수가 쓰러지면 하얀 가운을 입은 아주머니 한 분만이 응급 가방 하나 들고 외롭게 뛰어 다니고 계시더군요. 구급차는 볼 수 없었습니다.
정말 망측한 생각입니다만, A매치에서 이와 같은 불행이 일어났어도 그랬을까요. 역시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유명한 프로팀 감독조차 부상이나 사고에서 선수들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않는다고 축구협회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판이니까요.
그래서 오늘 김도연이란 이름을 떠올려 봅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김도연'을 잊고 맘놓고 그라운드에서 뛰었으면 좋겠습니다. '최승호' '임수혁'이라는 이름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내일(4월 18일)은 잠실야구장에서 임수혁 선수가 쓰러진 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