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빡머리' 해글러를 기억하십니까? 저격수 헌즈는? 18년 전 오늘 당신은 해글러와 헌즈의 대결을 어디에서 보셨습니까? 오늘(4월 16일)은 세계미들급통합챔피언 마빈 해글러(Marvin Hagler)와 WBC슈퍼웰터급 챔피언 토머스 헌즈(Thomas Hearns)가 세기의 대결을 펼쳤던 날입니다. 해글러가 헌즈를 3회 TKO로 누르고 11차 방어에 성공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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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과 리치에서 압도적 우세를 보인 헌즈는 당초 아웃복싱을 구사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링위의 미치광이'와 1회부터 정면 대결을 펼칩니다. 미친 듯이 밀고 들어오는 해글러의 맷집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고, 헌즈는 1회부터 그로키 상태에 빠지게 되죠. 상당한 타격를 입은 헌즈는 뒤늦게 숨을 추스리려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쫓기는 자에게 사각의 링은 너무 좁은 것 아니겠습니까. 마침내 프로복싱 최고의 라운드중 하나로 선정된 3회가 시작됩니다. 엄청난 난타전, 2분 15초만에 이마가 찢어져 피를 흘리며 돌진하던 성난 황소는 헌즈를 무너뜨리고 말죠. 오른쪽 스트레이트 두 방을 맞고 다운, 헌즈는 안간힘을 써서 일어나지만 이미 다리는 풀려 있었습니다. 해글러와 헌즈의 대결에 쏠린 관심은 뜨거웠죠. 1985년 4월 17일자 <중앙일보>는 "이날 타이틀매치의 폐쇄회로 중계에 거의 2백만명이 몰려들어 지난 71년 무하마드 알리와 조 프레이저 헤비급타이틀전 때의 1백60만명을 능가하는 새 기록을 세웠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수입도 굉장했겠죠? 해글러는 대전료와 수입배분금 총 1천10만달러(당시 약 86억원), 헌즈는 8백10만달러(약 69억원)의 돈을 벌어 들입니다. <중앙일보>는 "컴퓨터 집계 결과 해글러는 헌즈에게 1백66개 펀치중 94개를 맞았고, 헌즈는 1백73개 가운데 96개를 맞았다"며 "해글러가 맞은 주먹 한 방의 댓가는 10만달러가 넘었다"는 재미있는 계산을 내놓기도 했죠. 어떻게 보면 8분 1초만에 허무하게 끝난 대결. 어쨌든 권투팬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 준 빅카드였다고 생각합니다. 링지는 1985년 최고의 명승부로 바로 이 경기를 선정하기도 했죠. 2년 후 해글러는 또 한번의 명승부를 펼칩니다. 1987년 4월 6일, 슈거 레이 레너드와의 일전이었죠. 그야말로 인파이터와 아웃복서가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명승부를 보여 준 경기, 해글러는 판정패하고 링에서 물러납니다. 67전 62승(52KO) 3패 2무라는 화려한 전적을 남기고 영화배우로 변신하죠. 그리고 AFP통신은 레너드와 함께 20세기 10대 복서중 한 사람으로 해글러를 선정합니다.
 해글러와 헌즈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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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는 어떻게 됐을까요. 1958년생인 헌즈의 '현역 시절'은 2000년까지 계속됐습니다. 헌즈의 마지막 경기는 2000년 4월 8일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벌어진 IBO 크루저급 타이틀 방어전이었습니다. 아쉽게도 헌즈는 2라운드 발목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하고 말죠. 하지만 7체급 제패라는 신화를 만든 헌즈 역시 세계 복싱사에 길이 남을 챔피언임은 분명합니다. 당시 도전자 그랜트는 "내가 싸운 복서중 최고의 복서. 그를 이긴 것은 영광이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헌즈에 대한 존경을 표시합니다. 이후 타이슨이라는 걸출한 '핵펀치'가 나왔지만, 아무래도 세계 복싱계의 황금기는 해글러, 헌즈, 로베르토 듀란 그리고 레너드등이 활약하던 80년대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빅게임 중계는 왜 꼭 낮에 걸리는지. 경기가 있는 시간에 운 나쁘게(?) 걸린 수업들은 바로 '땡땡이'로 이어졌죠. 친구의 자취방에 모여 앉아 라면을 끓여 먹고 TV앞에 모여 앉았던 시절. 따뜻했던 봄날과 잘 어울렸던 친구들이 문득 떠오릅니다. 1985년 4월 16일자, 추억의 스포츠뉴스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링위의 미치광이'는 당시 해글러의 별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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