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대회의 스타 김종부 선수가 폭탄 선언을 했습니다. 오늘 김종부 선수는 현대와의 가계약을 파기하고 대우와 계약을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기자 김종부 선수가 스카우트 파동에 휩싸였습니다. 지난 30일 현대와 계약금 1억5천만원과 연봉 2천4백만원에 가계약을 체결한 김종부 선수가 돌연 대우를 선택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현대 윤국진 부장 "김종부 선수가 정상적인 선수 생활을 하려면 현대로 돌아와야 합니다. 아무튼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겠습니다."
기자 내년 봄 졸업 예정인 김종부 선수의 진로는 현재로서는 불투명합니다. 대우와 현대 사이에서 김종부 선수를 둘러싸고 일어난 치열한 스카우트 전쟁이 자칫 법정으로까지 비화되지 않을까 많은 축구관계자들은 우려하고 있습니다.
1986년 4월 11일, 한국 축구의 아까운 스타 한 명이 사그러들기 시작했다. 축구계에는 대한축구협회 집행부가 총사퇴하는 등 태풍이 몰아쳤다. 김종부 선수는 고려대 축구부에서 제명당하고 1986월드컵 대표팀 선발에서도 탈락하게 된다.
하지만 축구팬들은 멕시코 월드컵에서 김종부의 활약을 보고 싶었다. '김종부 구명 여론'이 높아지면서 멕시코행 비행기를 타게 된 김종부 선수는 마침내 1986년 6월 6일 불가리아전에서 한국축구역사에 오래도록 남을 골을 터뜨린다. 노수진 선수와 교체투입된 '김종부'가 후반 24분경 0-1로 뒤지던 상황에서 작렬시킨 극적인 동점골. 월드컵 출전 사상 첫 승점(1점)을 획득하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축구팬들의 기억속에서 '김종부'가 사라지는 출발점이 되고 만다. 이후 김종부 선수는 잇따른 부상과 슬럼프에 빠져 신음하며 4개 구단을 전전하다, 1995년 시즌을 끝으로 대우에서 쓸쓸히 그라운드와 이별을 고하게 된다. '김종부 파동'은 본인에게나 한국 축구계에나 너무나 안타까운 사건이 되고 말았다. '김종부 파동'으로 1988년부터 드래프트제가 도입됐고, 2002년 자유계약제가 부활되기까지 14년동안 드래프트제는 프로축구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현재 동의대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재직중인 김종부씨는 스포츠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비록 자유계약제도에 희생되긴 했지만, 한국 축구를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좋은 제도"라며 "당시 프로라는 개념 자체를 잘 몰랐고, 사회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거액이 오가는 일에 내가 끼여 들 틈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많은 축구팬들은 김종부 선수를 폭발적인 슈팅과 뛰어난 볼 컨트롤 능력에 스피드까지 겸비한 뛰어난 스트라이커였다고 평가한다. 채 피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린 축구 천재 김종부. 만약 1986년 스카우트 파동에 휩싸이지 않았다면, '김종부'란 이름은 지금 어떻게 기억될까.
2003-04-11 08:13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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