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3월 27일, 서울운동장야구장(현 동대문야구장)에서 2만5천여명의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미국, 일본, 멕시코에 이어 세계 4번째로 프로야구를 즐길 수 있게 된 나라.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고적대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100여 MBC 무용단원들의 흥겨운 춤이 이어졌다. 200여 국악예고 학생들은 가야금을 퉁기며 1개월 동안 연습한 부채춤을 선보였고, 바니걸즈, 희자매, 이쁜이, 국보자매 등 자매 가수들은 관중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개막식에 참석한 유창순 국무총리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눈앞에 두고 스포츠 인구의 저변 확대와 국민화합정신 함양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며 "야구를 통해 규칙을 더욱 잘 지키는 국민이 되고 우리 사회가 함께 웃고 즐기는 명랑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국민들이 화합하고 규칙을 잘 지키길 바라는 나라'의 대통령다운 시구였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강한 공을 스트라잌존에 꽂아 넣었고, 삼성라이온즈와 MBC청룡의 개막전이 시작됐다.

환호하는 스탠드, 양 팀 응원도 불을 뿜었다. 특히 삼성은 제일모직과 제일합섬에서 7백여명의 여공을 동원해 일사불란한 카드섹션을 연출해 관중들의 눈길을 끌었다. 열흘 가까이 하루 5시간씩 준비한 카드섹션중에는 '새시대 새물결 새질서 새국민'이라는 구호도 포함돼 있었다.

ⓒ IHS21.org
MBC청룡에서는 이길환 투수를 선발로 내세웠다. 하기룡, 정순명, 유종겸 등 기라성 같은 선배 투수를 제쳐놓고 마운드에 선 이길환 투수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1회초 이만수 선수에게 한국 프로야구 1호 안타와 타점을 내 준 이길환 투수는 2회초에 2개의 보크를 범하는 등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국가대표 출신 미남 에이스 황규봉 투수를 선발로 내세운 삼성은 초반부터 경기를 주도했다. 하지만 6회말 강타자 백인천 감독의 솔로홈런이 터지면서 경기 분위기는 바뀌기 시작했다. 7회말 2사 1·2루에서 MBC청룡의 유승안 4번 타자는 황규봉 투수의 초구를 스리런 홈런으로 연결, 경기를 7-7 동점으로 만들었다.

연장 10회말, 선두타자로 나선 김인식 선수가 몸에 공을 맞고 씩씩하게 뛰어나갔다. 김용달 선수의 좌전안타, 1사 1·3루에서 유승안 4번타자가 등장했다. 하지만 유승안 선수가 볼카운트 0-3에서 욕심을 부리다 투수 앞 땅볼로 물러났고, 이선희 투수는 백인천 선수를 고의사구로 걸러냈다.

그리고 이종도 선수의 굿바이 만루홈런이 터졌다. 11-7. MBC청룡의 승리였다. 5타수 3안타 5타점을 기록,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이종도 선수는 "프로 세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영광을 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1호 안타, 1호 타점, 1호 홈런의 주인공 이만수 선수도 "1호 홈런의 영광이 나에게 돌아올 줄 몰랐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종도 선수는 오토바이, 이만수 선수는 등나무 응접세트를 각각 부상으로 받았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개막전은 '어린이들에게는 꿈을, 젊은이들에게는 정열과 낭만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너무도 잘 어울렸다. 하지만 규칙을 허물어뜨린 정권에 의해 탄생된 프로야구는 그후 오랫동안 '국민화합'보다는 오히려 지역감정을 고착시키는데 이바지했다.
2003-03-27 10:33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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