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월드컵 역사가 방영될 때마다 잉글랜드 웸블리에서 열린 1966 월드컵 결승전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잉글랜드와 서독이 2:2로 팽팽하게 맞서던 연장 전반, 잉글랜드 허스트가 날린 슛이 크로스바 아래를 맞고 튕겨 나와 골라인 선상에 떨어진다. 양 팀 선수들에 둘러 싸여 고민하던 심판은 잠시 후 '골인'을 선언한다. 이른바 '웸블리골'이라는 명칭에는 문제의 판정이 홈팀(잉글랜드)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숨어 있다. 1977년 2월 28일(한국시간), 한국 대표팀은 텔아비브에서 벌어진 이스라엘과의 아르헨티나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반대의 경우를 당하고 만다. 당시 이스라엘은 1970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에 올랐던 강호였다. 지역 특성상 유럽 축구 흐름에 빨리 따라갈 수 있었던 이스라엘은 개인기에서 한국보다 한 수위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체력 조건에서도 평균 신장이 5cm 차이가 날 정도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4만 관중의 응원을 등에 업고 있었다.
 1977년 2월 28일자 동아일보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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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70년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포진한 한국의 전력도 만만치 않았다. 좌우 날개로 차범근 박용주 김진국이 펼쳐졌고, 중앙 공격에는 이영무 허정무 신현호가 나섰다. 쌍둥이 형제 김강남 김성남이 지키는 미드필드 뒤에는 조영증 최종덕 박성화 황재만이 철벽 수비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리고 맨 뒤에는 김황호 골키퍼가 버티고 있었다. 경기 초반 이스라엘의 파상 공세를 잘 막아 낸 한국은 전반 20분께부터 반격에 나선다. 전반 33분, 이영무가 때린 강슛이 골포스트를 맞고 나온다. 불운의 전주곡이었던 셈이다. 전반전을 득점 없이 끝낸 양 팀은 후반에도 불꽃 튀기는 격전을 벌인다. 마침내 후반 18분 박용주와 교체 투입된 김진국이 반대쪽에서 넘어온 센터링을 그대로 왼발 발리슛으로 연결한다. 크로스바를 맞고 골라인 안쪽으로 떨어지는 공. 스코틀랜드 주심은 노골을 선언한다. 한국의 거센 항의로 잠시 중단됐던 경기는 그대로 속행, 결국 경기는 0:0 무승부로 끝나게 된다. "이스라엘 해설자들을 포함, 많은 사람들은 김진국의 슛이 골인되었다 튀어나온 것이라고 보았다", "이스라엘 TV 방송국 녹화 필름을 슬로비디오로 분석한 결과 골인되었음이 밝혀졌다" 등 국내 신문의 보도가 잇따랐지만, 이미 경기는 끝난 뒤였다. "그럼요. 생각나죠. 관중들 정말 많았어요. 그전까지 동남아에서는 여러 번 어웨이 경기를 치렀는데, 이스라엘 같이 먼나라에 갔던 것은 처음이었어요. 서양 사람들과 비슷한 체구를 갖고 있는 사람들, 수많은 관중 앞에서 엄청난 중압감을 느끼며 뛰었죠." 25년이 흘렀지만, 당사자였던 대한축구협회 김진국 기술위원장의 아쉬움은 누구보다 크다. 27일 전화통화에서 김 위원장은 "분명히 라인 안쪽으로 떨어졌는데, 선심이 인정을 해주지 않았다. 주심은 정확한 상황을 보지 못했다"며 "상당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골로 축구협회에서 제소했는데 번복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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