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이면 되겠죠?"
잠실 야구장에 있는 LG 스포츠 사무실. 최종준 씨는 여전히 바빴다. 뭔가를 지시 받기 위해 분주하게 드나드는 직원들. '단장님'을 부르는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어 있다. 생각보다 비좁은 단장실, 빡빡한 긴장감 사이에서도 최단장의 목소리는 거침이 없다.

- 단장직에서 물러난 이유는 무엇인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지 않겠는가. 거취를 달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 LG트윈스는 프런트와 코칭 스태프를 전면 교체했다) 그리고 12년동안 현장을 지켰다. 지치기도 했다."

- 팬들은 최 단장의 사임이 별로 아쉽지 않은 것 같다. 그동안 팬들로부터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아 온 걸로 아는데, 혹시 이번 사임에 영향을 미쳤는가?
"아니다. 물론, 원성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단장은 원래 팬들에게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자리다. 프런트가 안고 있는 숙명과도 같다."

ⓒ 이원영
- 구단에서 단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구단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주로 사장은 그룹과의 연계 업무 그리고 대외 창구 역할을 한다. 단장은 대내적으로 마케팅, 홍보, 스카웃등 구단의 전체적인 운영을 총괄한다."

- 구단 홈페이지 게시판을 보니까, 어느 팬이 '최 단장만의 팀 LG'라고 써놨더라. 그만큼 단장의 목소리가 컸다는 얘기가 되는데.
"단장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한다. 팬을 의식해서 중심(단장)이 흔들리면, 팀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항상 팬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단장, 넓게 보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단장을 GM(General Maneger), 감독을 필드 매니저(Field Maneger)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단장은 감독과 달리 장기적인 관점에서 팀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

- 시즌중 성적이 부진하면, 감독을 교체하는 일이 잦다. 당연한 것인가?
"당연하다. 프로의 논리다. 그리고 단장도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이기면 나도 잘했고, 지면 잘못 없다는 식은 곤란하다. 99년도에 단장직을 물러난 것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번 사임은 그때와는 성격이 틀리다. 궁극적으로는 야구인이 단장을 해야 된다고 본다. B팀의 감독 출신이 A팀에 가서 단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장 실무 경험을 충분히 갖고 있어야, 깊이 있는 얘기들이 윗어른들에게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단장의 위상이 떨어지다 보니, 갈수록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 문제다."

ⓒ 이원영
- 구단에서 단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작년 생각이 난다. 단장들은 외국인 선수를 줄이기로 했는데, 이사회에서 뒤집히지 않았는가.
"축구나 농구는 단장이 이사회 멤버로 표결권을 갖는다. 하지만, 야구는 그렇지 않다. KBO이사회가 사장단으로 구성된다. 그러다 보니 단장들은 정책 입안 등에 별다른 영향력이 없다. 현재의 이사회 구성을 바꾸기 힘들다면, 사전에 안건을 심의할 수 있는 역할이라도 할 수 있도록 단장의 위상이 높아져야 한다. 이래서는 현장에서 운명을 같이 하는 '보스'라는 생각을 하기 힘들다. 단장이 강해야 프런트가 강해진다. 그래야 현장도 강해진다."

- 최 단장의 사임을 아쉬워하는 야구관계자들이 있다.
"주관을 갖고 프런트를 운영했다. 그리고, 야구 발전을 위해 바른 소리도 많이 했다. 그래서 그런 것 같다."

- 그럼, 외국인 선수 문제를 얘기해보자. 현 제도를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 도입 때부터 반대했다. 외국인 선수의 기량을 검증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 그동안 용도 폐기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호세나 우즈 등 몇몇을 빼면 말이다. 양질의 국산 제품은 해외로 나가고, 비양질의 외국 제품이 들어오는 꼴이다. 또한 아마추어에 대한 지원도 제대로 정착돼 있지 않은 상태다. 이래서는 아마 선수가 설 자리가 없다.

굳이 쓴다면, 한 팀에 한 명 정도가 적당하다. 3명은 너무 많다. 구단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1년에 100-120억 예산을 쓰는데, 부대 경비를 포함하면 용병 한 명에게 7억 원 정도가 들어간다. 전체에서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 이원영
- 구단에서 단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프런트와 선수는 신뢰가 중요하다. 그런데, 연봉협상을 하다 갈등이 생기고 만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어떤 선수가 좋은 성적이 나왔다. 구단에서 '내년에 보상해주겠다'고 하면, 선수는 무슨 연봉을 2배로 주겠다는 약속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어떤 근거도 없이 올려 줄 수는 없지 않느냐. 나중에는 '왜 약속을 안 지키냐'고 화를 막 내면서 튀어 나가기도 하더라.

현실적으로 선수가 자기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드는 것은 매우 힘들다. 이를 대신해줄 수 있는 양질의 에이전트가 양성돼야 한다. 또, 구단이나 선수 모두에게 간접 대화가 훨씬 편하다. 에이전트를 선수를 조종해 몸값을 올려 구단에 폐를 끼치는 사람으로 여기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음성화되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다."

- 많은 돈을 주고 데려온 신인 선수가 부상으로 도태되는 걸 많이 봤을 것이다. 아마야구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재정이 약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학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선수 선발에도 문제가 생긴다. 또한, 단기 토너먼트다 보니, 에이스를 계속 쓸 수밖에 없다. 초중고도 리그전으로 가야 한다. 초중고가 튼실해야 야구가 발전할 수 있고, 아마야구가 강해야 프로야구가 강해질 수 있다. 현실적으로는 KBO가 대한야구협회를 흡수하는 방법이 좋다고 생각한다. 프로와 아마가 대통합할 때가 됐다."

- 구단에서 단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현 응원문화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관제 응원은 자극적이고, 사람들을 흥분시킨다. 언제까지 'LG 바보' '두산 바보'가 나와야 하는가. 기본적으로, 야구는 생각하면서 봐야 하는 경기다. '정(靜)'과 '동(動)'이 반복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반면 축구나 농구는 액션이 계속된다. 치어리더가 무얼하든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상당히 오래전부터 치어리더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치어리더는 구단 입장에서 하드웨어를 고치지 않고,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팬 서비스다."

ⓒ 이원영
- 1990년부터 프런트로 일해왔다. 그동안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하드웨어가 바뀌지 않았다. 운동장 시설이나, 정부의 지원도 변한 것이 없다. 팬들의 요구 수준은 높아졌는데, 하드웨어가 못 따르고 있는 형편이다."

- 그렇다면, 변한 것은 무엇인가?
"구단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Management(프런트), Marketing, 그리고 Medicine(스포츠 의학). 특히 재활은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했다. 한편, 예전보다는 선수들의 권익도 많이 보호받고 있다. 선수협과 엇박자가 나고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FA제도나 자유계약제도도 많은 발전을 이뤘다고 본다."

- 혹시 스포츠신문에 대해 불만은 없는가?
"지금 내가 그런 얘길 할 수 있는가(웃음). 외국은 그렇지 않은데, 우리나라 스포츠신문은 가판 중심이다. 조금 선정적이고 자극적일 수밖에 없다."

- 앞으로의 계획은?
"3월말일자로 퇴직한다. 아직까지 특별한 계획은 없다. 다만 스포츠와 관련한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

- 마지막으로 야구팬들에게
"신문에 난 구단의 정책만 보고 비난하지 말고, 어떤 연유로 저런 정책이 나왔는지 한번 더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신문들이)너무 가볍게들 다루는 것 같다. 언론과 구단도 서로 도와야 하는 입장이지만, 팬과 구단은 더욱 공생할 수밖에 없는 관계 아닌가."
2002-02-19 11:31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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