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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사태로 9월 한 달 동안 미국의 극장가는 된서리를 맞았다. 각 영화의 흥행 실적이 곤두박질했고, 폭력적인 내용을 담은 액션물들은 간판을 내리거나 개봉일자가 뒤로 미뤄졌다. 그러나 신작들이 속속 개봉되며 미 극장가도 예전의 활력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의 향수를 담은 성장영화 '하츠 인 애틀란티스(Hearts in Atlantis)'는 조용히 개봉일을 기다렸다. 마치 폭력으로 점철된 극장가의 새로운 대안이 되길 기다렸던 것처럼.
이제는 50줄에 접어든 중견 사진작가인 주인공 바비 가필드(데이비드 모스)는 어린 시절의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또 다른 어린 시절 친구들의 죽음을 뒤늦게 전해들은 바비는 폐허가 되어버린 옛집을 방문하고, 삶의 가치관을 완전히 바꾸게 만든 1960년 여름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11살의 바비는 5살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리즈(호프 데이비스)와 단둘이 살아간다. 리즈는 옷장에 옷들을 잔뜩 채워 넣으면서도, 바비의 생일날 도서관 이용카드를 선물로 건네는, 이기적이고 허영심 많은 어머니다.
건조한 일상속에 불쑥 테드 브로티건(앤서니 홉킨스)이라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바비네 집 2층에 입주한다. 음울한 인상의 테드(홉킨스의 '하니발 렉터' 캐릭터 연기의 영향 때문이리라)는 이사온 첫날 자전거를 가지고 싶어하는 바비의 속마음을 읽어내 어린 소년을 놀라게 한다. "어떻게 알았냐"는 물음에 "아이들은 모두 자전거를 가지고 싶어한다"고 재치 있게 둘러대는 테드.
테드는 신문을 읽어주는 심부름의 대가로 1달러의 주급을 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하며 바비와 급속히 친해진다. 그러나 여전히 테드는 바비에게 알 수 없는 인물로 남아있다. "자신의 능력을 원하는 사람들로부터 쫓기고 있다"며 추적자들이 나타나면 즉각 알려달라고 말하는 중년의 신사. 그들이 정부 기관 요원인지 혹은 마피아인지는 영화 끝까지 분명히 정체가 그려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범상치 않은 기억 속에 나타난 '초능력의 사나이'. 이 같은 설정에서 1986년작 '스탠 바이 미'가 묘사한 1950년대 미국 소년들의 모험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고, 99년작 '그린 마일'의 속의 초능력 사형수 존 카피를 연상할 수도 있다.
두 말할 나위 없이 세 작품의 저자는 모두 스티븐 킹이다. '캐리', '샤이닝', '미저리' 등 수준급 공포-스릴러 영화의 원작 소설가로 이름을 날린 킹은 80년대 중반 이후 '스탠 바이 미', '쇼생크 탈출', '돌로레스 클레이븐' 등의 새로운 경향의 작품을 내놓는다.
성장기를 다뤘다는 의미에서 '하츠 인 애틀란티스'는 '스탠 바이 미'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죽은 아이의 시신을 찾기 위해 어른들이 없는 세상으로 모험을 떠나는 '스탠 바이 미'와 달리 '하츠 인 애틀란티스' 속의 바비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어른' 테드를 통해 성인으로서의 통과 의례를 치르게 된다.
아쉬운 대목은 종반으로 치닫을수록 바비에게 아버지와 같은 권위를 가지게 되는 테드의 정체가 불분명하게 그려진다는 것. 영화는 명쾌한 판결보다는 짙은 여운을 남기는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흐릿하게 잡아내는 '성장 영화'는 모두 이런 식으로 마무리가 돼야 할까?
테드는 바비의 어머니에 의해 '아동 성폭행자'로 오인받고 쫓겨나다시피 집을 떠나게 되는데, 그가 정말로 성도착자인지 초능력자인지 과거에 무엇을 했고 바비와 헤어진 후에는 어떻게 됐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이 있는 인물로 소개된 테드는 바비에게 짧은 순간이나마 같은 능력이 있음을 발견하게 해주지만, 둘의 교분이 바비로 하여금 어떻게 유년의 문을 넘게 했는 지의 여부도 명쾌하게 그려지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츠 인 애틀란티스'는 '스탠 바이 미'나 '그린 마일'을 보고 감동을 느낀 사람들에게는 함량미달로 비칠 수 있다. 초능력을 노리는 사람들에게 끌려가는 테드의 모습은 이웃들을 살려내고 누명을 쓴 채 죽어가는 '그린 마일'의 존 카피만큼 비장함을 주지 못한다.
노신사가 유년기를 지내는 소년에게 주는 가장 큰 가르침은 '세월의 무상함'이다. 바비는 친구 캐롤(미카 부렘)에게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처음 느낀다. 바비에게 캐롤은 가장 친한 친구이며, 학교에 항상 함께 가기를 원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유년 시절의 추억을 통해 이들은 애틋한 감정을 키워가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사랑인 줄을 모른다. 헤어진 후 남은 생을 통틀어 서로를 그리워하게 되지만, 그뿐.
테드는 바비에게 "이 모든 기억들이 결국은 사라질 것이라는 것. 상상의 대륙 아틀랜티스 에 사는 것이 아닌가하는 이 유년시절의 행복감은 곧 나이가 들고 현실 속에서 산산조각이 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최초의 인물이 된다. 실제로 바비는 테드가 집에서 쫓겨난 후 사람들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게 되면서 무력감을 느낀다. 어린 바비는 삶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단순하지 못하고 복잡한 외양을 띄고 있음을 새삼 절감하며 더욱 어두운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자신을 단련하게 된다.
다소 밋밋해 보이는 영화에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들의 유년시절의 어느 단락에 '테드'가 있었고, '캐롤'이 있었고, 야구방망이를 메고 시비를 걸어오는 '상급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츠 인 아틀랜티스'는 950만 달러의 수입으로 이번 주 박스오피스 3위에 올랐다. 3주만에 탑10 영화들의 총수입이 최고치로 오른 이번 주 1위는 마이클 더글라스 주연의 스릴러 '돈 세이 어 워드'. 벤 스틸러가 국제적인 음모에 휘말린 우둔한 수퍼모델 역을 맡은 '주랜더'는 젊은 층의 호응에 힘입어 2위에 안착했다.
다음 주에는 테러 참사로 개봉이 연기된 '트레이닝 데이'를 비롯, 스릴러 '조이 라이드'와 로맨틴 코미디 '세런디퍼티' 등이 선보인다. 다음은 이번 주 박스 오피스 순위. ( )는 지난 주 순위, +는 데뷔작.
1 (+) Don't Say A Word ........ $18.0 million
2 (+) Zoolander ............... $15.7 million
3 (+) Hearts in Atlantis ...... $ 9.5 million
4 (1) Hardball ................ $ 5.2 million
5 (2) The Others .............. $ 5.1 million
6 (5) Rush Hour 2 ............. $ 2.7 million
7 (3) The Glass House ......... $ 2.1 million
8 (7) Rat Race ................ $ 1.8 million
9 (4) The Musketeer ........... $ 1.7 million
10(6) Two Can Play That Game .. $ 1.6 million
덧붙이는 글 | 지난 주 테러 참사로 할리웃 영화 개봉일자가 조정됐음을 알려드렸는데, 11월 개봉작 중 다시 '윈드토커스'가 내년 여름으로 개봉을 연기했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시대에는 영화가 되려 호황을 누렸는데, 이번에는 어찌될지 누구도 예측을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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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01 13: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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