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다섯살 배기가 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일본영화는 언제나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와 칙사 대접을 받아왔다. 물론 지금은 일본영화와 음반등이 많이 개방된 상태지만 어쨌든 영화제 기간에 일본영화와 감독들은 오히려 자신의 나라에선 찬밥신세가 되다가도 부산에서만큼은 뜨거운 호응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가을이 돌아오면 이들은 젊은 부산영화제의 환상적인 나날들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올해는 예년만큼 관객들이 열광할만한 작품은 아니더라도 거장 오시마 나기사의 <고하토>에서 중견의 자리를 지키는 이시이 소고의 <고조>, 기타노 다케시의 <브라더> 그 밑을 바짝 따라오는 사카모토 준지의 <얼굴>,<의리없는 전쟁>등이 여전히 매진행렬을 달리고 있다.

어느 작품 할 것 없이 그 감독이 추구하는 본연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애쓴 흔적들이 보이는데, 그 중에서도 현재, 혼돈 속에 있는 일본영화계의 최전선에 서서 새로운 영화를 이끄는 사카모토 준지의 <얼굴>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사카모토 준지의 영화들은 주로 현대인이 느끼는 감성에 깊이 호소하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제3회 부산영화제때 출품한 <멍텅구리 – 상처입은 천사>처럼 그는 소외된 인물을 내세워 황당한 사건을 통해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슬그머니 미소 짓게 만드는 연출력을 보여준다.

1989년에 <패줄까보다>라는 데뷔작으로 호평을 받으면서 주로 남성들의 세계를 그려온 사카모토 준지는 이번 부산영화제에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얼굴>과 야쿠자 영화의 대명사 <의리없는 전쟁>을 통해 드라마틱한 영상미를 보여준다.

영화 <얼굴>은 단지 성만 바뀌었을 뿐이지 여전히 사카모토 준지의 관심 대상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콤플렉스를 가진 인물들에게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비현실적이며 다소 황당한 스토리 텔링을 통해 사카모토 준지가 말하는 꿈과 희망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뚱뚱하고 못생긴 마사코는 어머니가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바느질을 한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그녀는 어느날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뒤, 평소 사이가 안좋은 동생 유카리와 언쟁을 하는 중에 동생을 죽이고 만다.

그때부터 마사코의 인생은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한다. 러브호텔의 청소부에서 술집에서, 섬마을에서 그녀는 잘못된 사람들의 만남을 통해 다양한 인생을 즐기며, 자신이 배우고 싶었던, 자전거 타기와 수영을 배우게 된다. 우연한 죽음의 현장에서 마사코는 그가 배운 것들을 하나씩 써먹으면서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게 된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녀는 여태까지 외로운 생활과 외모에서 오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일본이라는 사회에서 그녀의 존재는 한갓 보잘 것 없고 연약한, 관습에 매여 있는 인물에서 과감하게 자신의 삶을 바꿔가는 존재로의 변화를 통해 사카모토 준지는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사회라는 큰 원 바깥에서 맴도는 인물들을 재미있게 그리면서, 잠시나마 이 영화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껴 볼 수 있다. 한번쯤 사회에서 소외된 경험을 느껴보았다면, 사카모토 준지의 <얼굴>은 유쾌함을 느끼는 동시에 일탈의 충동을 자극받게 될 것이다.

구체적인 설명보다는 관조적인 시점으로 바라보는 프레임내 사람들의 생활을 담담한 어조로 그린 영화 <얼굴>을 통해 감독은 실지로 느끼는 외부와의 단절감을 몸소 극복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2000-10-14 10:54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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