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홍콩>과 <그 해 불꽃놀이는 유난히 화려했다>를 통해 젊은 영화광들이 선호하는 시네아스트로 잘 알려진 홍콩의 프룻 첸 감독이 무려 3편의 신작을 들고 부산을 방문했다.

'홍콩 반환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리틀 청>과 <두리안 두리안>, 디지털 프로젝트 <공중화장실>이 그 작품들. 유독 부산국제영화제와 인연이 많은 감독답게 한 영화제에 3편을 선보이는 기염을 토한 프룻 첸은 역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빔 벤더스나 왕가위에 뒤지지 않는 화제를 모으고 있다.

프룻 첸의 신작 <리틀 청>과 <두리안 두리안>은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서로 같은 맥락에서 출발한 영화다. <리틀 청>을 찍기 위해 몽콕의 거리를 취재하던 중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매춘부 이야기를 듣고 영화화 작업에 착수했지만, 사정상 <리틀 청>에 삽입할 수 없자 차기작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두리안 두리안>인 것.

접시를 닦아 생계를 돕는 어린 소녀 인과 매춘부와의 우정을 통해 몽콕 뒷골목에 거주하는 불법 이주민들의 삶을 담백한 화법으로 묘사하고 있는 <두리안 두리안>은 프룻 첸의 전작에 비해 지극히 단순한 구조와 사실적인 화면이 눈길을 끈다.

고약한 냄새에 비해 지극히 맛있는 미국 과일 '두리안'과 같이 우리 삶에서도 전혀 어울릴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 소중한 인연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따뜻한 어조로 역설하는 이 영화는 삶의 양면성과 추억에 대한 향수를 노래한다. 다만, 후반부에 이르러 다소 지나치게 향수에 천착하는 진행은 이야기의 흐름을 거스른다.

<두리안 두리안>과 <리틀 청>을 연결하는 구실은 접시를 닦는 어린 소녀 인과 그녀의 가족들로 인은 리틀 청의 여자친구로 등장해 <두리안 두리안>의 빈 여백을 채워 나간다.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두리안 두리안>과 <리틀 청>의 연관성은 <리틀 청>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리틀 청>은 프룻 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훨씬 소박한 화법으로 홍콩 반환 이전의 소시민들의 삶을 조명한 영화로 성장 영화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밝은 이면 뒤에 감춰진 어두운 현실에 대한 묘사 또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프룻 첸의 전작과 달리 지나친 상징이나 이미지에 대한 집착 없이 리틀 청과 그를 둘러싼 소시민들의 이야기가 소박하게 펼쳐지며, 리틀 청이 벌이는 해프닝이 상당한 유머를 선사한다. '홍콩 반환 3부작'의 완결편으로 제작되었지만, 기존의 전작들처럼 직설적인 감상과 비관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리틀 청>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프룻 첸의 재기발랄한 신작에 대해 관객들은 박수로 화답하며, 관객과의 대화에 임했다.

마지막 장면에 <메이드 인 홍콩>의 주인공 3명이 등장하는데, 어떤 의도인가?

"특별한 의도는 없다. 3부작의 마무리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등장시켰다. 또한, <리틀 청>이 해피 엔딩이기 때문에, <메이드 인 홍콩>의 우울한 정조와는 다른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설정했다."

'홍콩 반환 3부작'의 완결편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화해에 대한 매너리즘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데

"홍콩 반환 문제에 대해 다룬 영화는 많았지만, 진정 깊이있는 성찰을 보인 영화는 <차이니즈 박스>뿐이었다. 모든 영화에 감성이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97년 홍콩 반환 이전의 기억을 담고 싶었을 뿐이었다."

<메이드 인 홍콩>을 비롯하여 항상 영화에 생리대가 등장하는데, 특별한 의도가 있나?

"<리틀 청>에 생리대가 등장한 것은 그 전 작품들에 생리대가 등장했기 때문에 연관을 맺기 위해서였다. 생리대는 때로 무정부주의를 대표하는 역할로 설정되기도 했다."

홍콩 영화와 한국 영화의 현실에 대한 입장은?

"홍콩 영화는 많이 몰락한 반면에 한국 영화의 성장은 눈부시다. 마치 80년대 홍콩 영화의 중흥기를 연상시키는 이러한 성장을 지켜보며 한국 관객들은 한없는 즐거움에 빠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2년 내에 홍콩 영화가 다시 부흥을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홍콩에서 내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는 확실히 표명할 수 없지만, 유일한 독립 영화 감독으로서 남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2000-10-11 23:02 ⓒ 2007 OhmyNews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다양성영화와 영화제에 관해 주로 씁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