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조감독 출신으로 <하얀 풍선>을 통해 잘 알려진 이란 감독 자파르 파나히가 신작 <순환> 상영에 맞춰 부산을 찾았다.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해 세인의 주목을 이끌어낸 <순환>은 지금까지의 이란 영화와는 달리 이란 사회의 어두운 이면에 초점을 맞춘 작품으로, 이란 여성들의 삶이 사회적 억압과 모순에 부딪히며 짖밟히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핸드헬드 카메라의 잦은 사용으로 쫓기는 여성들의 삶을 다큐적인 사실성으로 표현하는 것도 이 작품의 미덕이라 할 수 있다. 출구를 찾지 못한 채 그저 대안없는 현실에 주저앉는 여성들의 고통을 순환의 고리로 연결시키는 감독의 재능은 인류학자에 버금가는 철학을 읽게 만든다.

<순환>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하나로 묶는 매개체는 '담배'이다. 하지만 남성들과 사회의 시선 탓에 같은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 담배가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구 위에 사는 모든 인간들은 하나의 서클(원) 안에 산다. 원이 크게 보이는 곳도 있고 작게 보이는 곳도 있겠지만, 원은 문화, 정치, 사회, 가족의 문제 등을 모두 표현한다. 영화를 통해 원이 점차 크게 보이기를 바랬다. 모든 인간에게 해당될 수 있는 문제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담배는 일종의 제한과 한계에 대한 비유로 설정한 것이다. 담배 대신 사형을 보여주었다면, 담배가 전달할 수 있는 느낌이 살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정답을 설명하기 보다 관객들이 몰입해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여성들 사이에 공유가 이루어진다. 가령 산모의 비명소리로 시작하는 첫 장면에서 시어머니는 딸을 낳은 산모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 실제로 이란에서 여성들 사이에 공유가 활발히 이루어지는가?

누구나 원 안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한번쯤 일탈을 꿈꾼 사람이라면, 벽에 부딪힌 사람들의 처지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비단 여성에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으로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산모가 딸을 출산하는 첫 장면이 감독 본인의 딸 출산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알고 있다. 출산 장면은 처절한 일상에서 딸을 키우고 싶지 않다는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이 영화가 폐쇄적인 이란 사회에서 여성들의 지위 발전과 고정관념 해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가?

"첫 장면은 <순환>의 모든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나의 경험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기 보다는 이란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생각할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할뿐, 생각의 몫은 관객의 것이다. 나의 영화가 동기를 제공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한다."

핸드헬드 카메라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반면에 후반부에 이르러 지나치게 정적인 느낌이 드는데 어떤 의도인가?

네 명의 여성의 삶이 각기 다른 시각에서 비춰진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등장하는 18세의 여성의 모습을 통해 자유분방한 느낌을 살리고자 핸드헬드를 사용했다. 후반부로 진행되면서 세상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므로 고정된 앵글을 이용해 정적인 화면을 연출했다.
2000-10-11 22:57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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