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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말,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나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 3] 지배와 수탈이 극심했던 시기

등록 2024.04.08 07:49수정 2024.04.08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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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운동에 앞장섰던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23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 연합뉴스

 
강만길(姜萬吉, 1933~2023)은 1933년 10월 25일 경상남도 마산에서 강재갑(姜在甲)과 진야묘치(陳也妙致) 사이의 2남 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한 지 23년 차로 지배와 수탈이 극심했던 시기이다.

악덕 지주와 일제의 횡포에 시달리던 농민들의 소작쟁의가 계속되자 총독부가 '조선소각조정령'을 제정하여 다스렸으나 소작쟁의는 갈수록 증가되었다. 이 해에 조선어학회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하고, 정평 적색 농민조합이 일제에 발각되었으며, 경남 적색 교원노조 관련자 30명이 검거되었다.

강만길의 증조부 때까지는 진주에서 지주로 살았는데 증조부 말년에 몰락하고, 아버지가 신흥도시 마산으로 옮겼다. 집안 살림이 넉넉하지는 못했으나 자식들 공부시킬 정도는 되어 부모님은 다섯 살 때부터 독접장을 모셔서 자식들에게 한문 공부를 시켰다.

선친은 근대교육을 거의 못 받으신 분이고 어머니는 한글을 깨우쳐서 <춘향전>이나 <장화홍련전>을 읽으시는 정도였습니다. 옛말에 '양반도 3대를 무식하면 상사람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선친 생각에 조부도 거의 공부를 못하셨고 당신도 그러셨는데 나까지 공부를 안 시키면 그야말로 상사람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다 아무리 집안이 어려워도 한 사람, 특히 장남은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네 부모님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으니까, 아마 어릴 때부터 공부를 시킨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비록 일제 교육이지만 학교 교육을 기피하고 계속 한학 교육만을 고집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고요. (주석 1)

그렇게 집에서 공부하던 강만길은 일곱 살에 마산의 완월 심상소학교에 입학했다. 1940년에 창씨개명이 실시되고, 황국신민화와 전시수탈이 광분하던 시대였다. 강만길이 소학교 2학년 때 일제는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한문을 조금 읽다가 당시에는 학교 교육을 안 받을 수 없었으니까 소학교에 들어가서 6학년까지 일본식 교육을 받은 셈입니다. 마산에는 마산중학교와 마산상업학교 2개가 있었는데, 나는 해방되고 마산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만, 해방이 안 됐으면 아마 못 들어갔을 겁니다. 왜냐하면 마산중학은 일본 사람이 70퍼센트, 조선 사람은 30퍼센트밖에 못 들어가는 데다가 재정보증이다 뭐다 여러 가지 요구하는 것들이 많았고, 집안 사정도 그렇고 하니 아마 해방이 좀 더 늦었으면 십중팔구 소년항공병 같은 것으로 끌려가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때는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일 때라 소학교 졸업생들을 모아서 일본 군인으로 기르는 제도가 있었는데 천만 다행히도 6학년 되던 해 8월에 해방이 됐습니다. (주석 2)

불운한 시대에 태어났지만 그나마 침략전쟁의 징병으로 동원되기 전에 일제가 패망하면서 해방이 된 건 행운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8·15 해방을 맞았다. 일제 말기에 태어난 세대는 대부분 일본어를 배우고 말하면서 성장했기에 한글을 잘 몰랐다. 학생들은 중학교에 들어가서 한글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만 했다.

다행히 나는 집안에서 어머니가 읽으시는 우리말 소설을 따라 읽으면서 한글은 깨우칠 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중학교에 들어가서 한글을 다시 배워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때는 엄청난 혼란기였습니다. 신탁통치라든지 좌우대립 문제 때문에 중학교 들어가자마자 동맹휴학이 오랫동안 계속되기도 했어요.

내가 중학교 5학년 때 6·25 전쟁이 터졌는데 그 5년 동안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서 중학 생활을 보냈습니다. 당시에는 일본 사람들이 버리고 간 책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중에는 일제 말기에 금서로 되어 있던 사회과학 분야의 책들도 많았습니다.

소학교 때 배운 짧은 일본어 밑천으로나마 책을 참 많이 읽었습니다. 그때부터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 쪽에 관심이 많았고 그 방면의 책을 많이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주석 3)

주석
1> <강만길―분단 극복을 위한 실천적 역사학자>, 역사문제연구소 엮음, <학문의 길 인생의 길>, 역사비평사, 2000, 198쪽.
2> 위의 글, 199쪽.
3> 위의 글, 200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강만길평전 #강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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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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