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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로 둔갑한 폭행공범, 검사는 한 게 없다"

[창간 24주년 기획-억울한 사람 만드는 검찰①] 늘어나는 기소유예처분... 헌재로 가는 사람들

등록 2024.02.22 14:59수정 2024.02.22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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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가 내리는 처분 중 '기소유예'라는 게 있다. 죄는 인정되지만, 여러 정황을 참작하여 재판에 넘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주로 경미한 사건일 경우 내려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수사 결과, 죄는 있다'는 것.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검찰의 기소유예처분을 매년 수십 건씩 취소하고 있다. 그만큼 억울하게 범죄자로 몰린 피해자가 많다는 의미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전체 불기소사건 가운데 기소유예처분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검찰의 기소유예처분 남발을 진단하고 그 대안을 모색해본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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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검찰의 기소유예처분을 매년 수십 건씩 취소하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전체 불기소사건 가운데 기소유예처분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사진은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 모습이다. ⓒ 연합뉴스


"경찰 수사는 엉터리였고, 검사는 애초에 경찰 수사를 들여다볼 생각도 안 하고 죄가 있다면서 기소유예처분을 한 거예요. 검사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경기도 파주시에서 배달기사로 일하는 이아무개씨의 말이다. 그는 3년 전 경찰과 검찰에 의해 억울하게 범죄자로 몰렸다가 우여곡절 끝에 누명을 벗은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울분이 치민다. 그는 <오마이뉴스>에 "경찰이랑 검찰은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는다"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시계는 3년 6개월 전으로 돌아간다.

폭행 가담자가 목격자로 둔갑

이씨는 2020년 7월 2일 낮 파주시의 한 건물 앞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서둘러 음식 배달을 하려는데, 술 먹은 일행이 시비를 걸어왔다. 이 과정에서 김아무개씨가 오토바이를 타려는 이씨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찼고, 이씨는 바닥에 넘어졌다. 이씨는 112에 신고했고, 경찰관이 출동했다. 파주경찰서에서 조사도 받았다.

이후 경찰의 수사 결과는 쌍방 폭행이었다. "이씨가 배달음식으로 자신을 쳤다"라는 가해자 김씨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김씨는 현장과 경찰서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진술을 했고, 폭행에 가담한 김씨 일행인 A씨는 피의자가 아닌 목격자 자격으로 김씨 주장을 거들었다. 이씨는 문제를 제기했지만, 경찰의 수사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이씨는 경찰의 엉터리 수사를 검찰이 바로잡아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검찰에서는 조사는커녕 제대로 된 연락 한 통 없었다. 결국 어느 날 의정부지방검찰청 고양지청 담당검사가 기소유예처분을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범죄사실이 인정되나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으로 그 경위에 참작할 사유가 있고 사안이 중하지 않다는 등의 이유가 적시됐다. 이씨는 분통을 삭이지 못했다.


"기소유예가, 죄가 있는데 한 번 봐준다는 뜻이잖아요. 죄가 없는데, 봐주긴 뭘 봐주냐는 거죠. 너무 열 받는 거예요. 민원도 여러 차례 넣었고 검찰청에 가서 소리를 지르면서 검사 나오라고 막 난리를 쳤어요. 검사가 제대로 하지 않고 제 맘대로 기소유예를 하는 게 어디 있습니까."

누군가는 검찰이 선처하는데, 기소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억울해할 이유가 있느냐고 할지 모른다. 이씨의 말이다.

"술 먹은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서 생긴 일이에요. 똑같은 일이 발생하면 그때는 검사가 저보고 상습범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저는 폭행을 하지도 않았는데 범죄자 취급을 받을 수가 없어요. 제가 폭행하지 않았는데,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이씨는 억울함을 푸는 방법을 수소문했다. 검찰에는 기소유예처분의 재판단을 구하는 절차가 없었다. 재판에 넘겨진 것도 아니니 법정 다툼을 할 기회도 없었다. 단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헌법재판소에 검사의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해달라는 내용의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는 것이었다.

너무 억울했던 오토바이 배달원, 헌재 문을 두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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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에서 오토바이로 음식 배달을 하는 이아무개씨는 검찰의 기소유예처분이 너무 억울해서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렸다. (사진은 이 기사와 특정한 관련 없음) ⓒ 연합뉴스

 
그는 헌법재판소 문을 두드렸고, 국선대리인 태원우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와 만날 수 있었다. 2020년 12월 헌재에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제출함과 동시에 목격자로 둔갑한 가해자 일행 A씨를 폭행죄로 고소했다. 이후 폭행죄가 인정돼, 벌금 100만 원의 약식명령이 내려졌다. 이후 A씨는 이씨에게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고 털어놓았고, 그 녹취록은 헌재에 증거로 제출됐다.

A씨가 사실을 말했으니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한번 판단을 내렸던 검찰은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담당검사는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A씨 진술을 두고 "A씨와 청구인(이씨)은 초면이고, (가해자) 김씨가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기 때문에 (A씨가) 이씨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다"라고 밝혔다. 또한 "수사과정이나 결론도출과정에서 적법한 증거판단을 거쳐 이뤄졌고 기소유예처분 이유 또한 실체관계에 부합하는 정당한 결론"이라고 주장했다.

2023년 3월 헌법재판소는 이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검사의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한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가해자 김씨와 A씨의 진술 모두 그 신빙성이 의심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청구인(이씨)은 수사기관에서 일관되게 폭행 사실을 부인하면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진술하고 있고, 수사가 이루어진 내용만으로는 청구인이 유형력을 행사하였다는 점을 인정하기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검사는 청구인에 대하여 폭행 혐의를 인정하고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을 했다"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은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수사미진 또는 증거판단의 잘못이 있고, 그로 인하여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되었다"라고 밝혔다.

검찰은 비로소 이씨에게 연락해, A씨가 거짓말을 했다고 인정한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달라고 말했다. 이후 검찰 스스로의 판단을 뒤집고 이씨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사과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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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배달원 이씨 사건에서 2023년 3월 헌법재판소는 이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검사의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한다고 결정했다. 이 사건처럼 헌재가 검찰의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하는 사례가 매년 수십 건이다. 사진은 헌재 깃발 모습이다. ⓒ 연합뉴스

 
"나는 운 좋은 케이스"... 이게 운에 맡겨야 할 일일까

이씨는 "나는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라고 말했다.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하는 절차가 어렵다. 헌재에서는 꼭 변호사가 있어야 하니까 지레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면서 "저처럼 증거가 확실하지 않은 사람은 헌재에서도 억울함을 풀기 쉽지 않을 것"라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엉터리 수사한 경찰관과 검사에게 불이익을 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면서 "경찰관과 검사를 고소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씨의 국선대리인을 맡았던 태원우 변호사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결정을 내려야 마땅한 형사사건에 대해서 검사가 기소유예처분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면서 "이는 검찰권 남용"이라고 밝혔다.

그는 "최근 현직 검사와 만날 일이 있었는데, 사건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하고 처분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은 경찰 수사가 제대로 됐는지 판단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늘어났다. 검찰은 검찰권을 남용하지 말고, 기소유예처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 [억울한 사람 만드는 검찰② - 검사의 선처? 헌재는 "수사미진"이라 말한다]로 이어집니다.
 
#기소유예처분취소 #헌법재판소 #검사 #검찰 #기소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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