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갈등에 관심 많은 시민을 위한 안내서

신학 입문서이자 탐사보도 <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

등록 2023.12.12 09:29수정 2023.12.1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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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잠잠하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간 무력 충돌이 재발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근거지인 가자 지구를 아예 지도에서 없애버리려는 기세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공세에 주로 희생되는 건 부녀자, 그리고 아이들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불거질 때면 으레 미국 등 국제사회는 일제히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나선다. CNN BBC 등 국제언론도 이스라엘 시각에서 사태를 전한다. 여기에 목소리를 보태는 집단이 있다. 바로 미국 내 근본주의 복음주의 세력이다. 


이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이스라엘이 마치 신앙의 궁극적 본향인양 추켜세우며, 반대 세력을 폄훼한다(이 점에서는 한국 보수 대형교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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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리 버지, ‘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 ⓒ 새물결플러스

 
이들의 여론전에 이스라엘의 가혹행위는 성공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진다. 미국 캘빈 신학대학원 개리 버지는 자신의 책 <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에서 이 같은 복음주의 세력의 일그러진 시각을 고발한다. 

그러나 이 책이 단순히 복음주의 세력을 겨냥한 비판서에 그치지 않는다. 개리 버지는 1970년대 초 레바논 베이루트에 교환학생으로 중동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수십년에 걸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땅을 밟으며, 이·팔 갈등 상황을 눈으로 보았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이 힘을 앞세워 팔레스타인을 탄압하는 부조리를 고발한다. 이 책 <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는 이·팔 갈등 이면에 숨겨진 이스라엘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뛰어난 탐사보도다. 

개리 버지는 이스라엘의 가혹행위를 가감 없이 전한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준동하는 이유도 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자행하는 온갖 차별 정책에 있다. 


하지만 앞서 적었듯 이·팔 갈등이 불거지면 미국 등 국제사회, 특히 서구사회는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팔레스타인에 '테러리스트' 딱지를 붙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땅에서 벌어지는 부조리가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개리 버지는 현실을 가리는 위선의 장막을 거둬들인다. 
 
"예루살렘을 방문한 사람들은 종종 그 도시 주변에서 보게 되는 엄청난 삶의 질의 차이로 인해 놀라곤 한다. 여행 가이드들은 일반적으로 관광객들이 아랍 이웃들의 삶을 보지 못하도록 거리를 둔다. (중략) 1999년 예루살렘 지방 발전 기금을 보면 전모를 보게 된다. 그 도시의 전체 예산은 1천 3백만 달러였는데 겨우 970만 달러만 아랍 이웃들에게 사용되었다. '마을 미화'라는 명목으로 440만 달러가 유대인 지역에 지출되었고, 50만 달러가 아랍 지역에 지출되었다." - 본문 258쪽 

이스라엘군이 특히 어린이에게 자행하는 폭력은 끔찍할 수준이다. 아래 인용할 인용문은 읽어 내려가기조차 힘들다. 
 
"점령지에서 어린이가 차량에 돌을 던지면 군은 가장 가까운 마을을 그 문제의 원천으로 여긴다. 그날 밤, 호송대가 이름 몇 개를 들고 한밤중에 그 마을에 도착한다. 군인들은 집집마다 다니며 모두 밖으로 나오라고 명령한다. 완전 무장한 군인들이 의심이 가는 아이들을 잡아내어 눈을 가리고 케이블타이로 양손을 묶은 후 울부짖는 부모들로부터 떼어네 바닥에 꿇어 앉힌 후 트럭을 기다리게 한다. 그들이 왜 잡혀가는지 어디로 잡혀가는지 설명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기서 그들은 언어 폭력과 신체 폭력을 당한다." - 본문 317쪽 

"이스라엘은 정의를 시행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으로 이 책의 진가를 한정할 수 없다. 개리 버지는 신약학자다. 그는 신학자로서 과연 이스라엘의 행위가 구약성서에 적힌 하느님의 언약과 맞는지, 진지하고도 사뭇 날선 질문을 던진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는 구약성서 기록이다. 구약성서 곳곳에서 하느님은 이스라엘에 '땅'을 약속한다. 그러나 개리 버지는 하느님께서 조건부로 '땅'을 허락했다고 지적한다. 하느님이 내세운 조건이란 바로 '정의'다. 
 
"언약은 단순히 이스라엘이 국가가 되게 하고 땅을 주기 위해 계획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이권을 충족시키기 위해 언약이 행해진 것도 물론 아니다. 이스라엘과의 언약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을 다른 모든 사람에게 드러내려는 하나님의 전략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임재를 온 땅에 드러내는 제사장 국가가 되어야 한다." - 본문 166쪽

이 지점에서 이스라엘에게 묻는다. 과연 이스라엘이 정의로운 국가인가? 이스라엘이 건국 이후 70년간 팔레스타인 이웃에게 행한 모든 정책이 '정의'라는 기반에서 이뤄진 것인가? 

저자의 답은 '아니오'다. "오늘날 그 땅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기독교 리더들과 (복음주의 측과 주류측) 기독교 구호 단체들, (적십자나 UN, 국제사면위원회 같은) 세속 기관들이 모두 같은 불만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이스라엘이 정의를 시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고 저자는 적는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늘 정치적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구약성서 전통을 끌어와 자신들의 정치논리를 정당화했고, 미국 내 복음주의그룹 등 근본주의 신앙으로 뭉친 세력들은 이스라엘의 논리에 동조했다. 

이번 이·팔 갈등 사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신앙이 공통으로 여기는 구약성서 전통을 이해하는 건 필수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개리 버지의 책 <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는 진가를 발휘한다. 

잠시 신약성서 전통을 살펴보자.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구세주(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는 '땅'에 대해선 그다지 중요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마태오의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마태오의 복음서 5:5, 공동번역 성서)

이스라엘 땅은 전략적 요충지였기에 유대민족은 이 땅을 차지하려는 강대국의 침략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온유한 사람'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스라엘의 지정학적 위치를 감안해 볼 때,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땅을 차지한다는 예수의 선언은 평화 선언이나 다름없다. 물론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고, 신약성서 전통도 배척하지만 말이다. 

최근 우리 시민 사이에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부쩍 관심이 높아졌다. MBC 등 공영방송도 현지에 취재진을 보내 우리만의 시각으로 사태를 바라보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이·팔 갈등에 관심 많은 시민이든, 현장을 직접 밟으려는 언론인이든 부디 이 책 <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를 꼭 읽어보기 바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이·팔 갈등을 바라보는 시야를 활짝 열어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미주 한인매체 <뉴스M>에 동시 송고합니다.

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

개리 버지 (지은이), 이선숙 (옮긴이),
새물결플러스, 2019


#개리버지 #팔레스타인 #하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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