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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부담 덜겠다'는 윤 정부 정책, 무주택자에겐 '손해'

[주장] 원칙도, 명분도 없는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율 동결과 로드맵 폐지

등록 2023.11.27 12:00수정 2023.11.2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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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 발표하는 김오진 1차관 김오진 국토교통부 1차관이 21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 발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1일 국토교통부는 '2024년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대비 부동산 공시가격 비율)'을 2023년과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국토교통부 김오진 제1차관은 "공시제도가 공정과 상식에 기반하여 운영되기 위해서는 현실화 계획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와 종합적인 처방이 필요한 만큼, 국민의 눈높이에서 현실화 계획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쉽게 말해, 2024년도 공시가격에 적용할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으로 동결하고 2035년까지 공시가격을 시세의 90% 수준으로 맞추겠다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은 폐지하겠다는 이야기다.

공시가격 현실화율 동결과 폐지의 명분은 무엇인가?

문재인정부가 지난 2020년 공동주택, 단독주택, 토지의 공시가격을 2035년까지 시세의 90%까지 올리겠다는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발표한 이유는 공시가격이 조세·복지 등 사회 여러 분야에 활용되고 있지만 50~70%의 낮은 시세반영률과 유형·가격대별 현실화율의 차이가 있어 조세부담 및 복지혜택의 불형평·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정책에 대한 생각과 입장은 다를 수 있지만 문재인정부는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제시하면서 나름의 명분과 원칙을 제시했다.

지난해 윤석열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리면서 '2022년 집값 급락에 따른 실거래 역전과 국민 부담'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2022년은 집값의 50%까지 하락한 지역이 있었고 2021년까지 가파르게 상승했던 집값으로 인한 보유세 부담이 단기간에 높아진 국민들에 대한 고려라는 점에서는 나름대로 논리적 정합성을 갖춘 명분이다. 하지만 올해 공시가격 현실화율 동결과 공시가격 현실화율 로드맵 폐지에 대한 명분과 원칙은 무엇인가?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보도자료를 읽어보면 '국민의 일반적인 기대와 실제 공시가격이 괴리되'어 신뢰도가 떨어지고 '부동산 시장 급변 가능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아 국민부담이 급증하는 부작용' 발생 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명확한 명분이 보이지 않는다.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폐지도 공시가격 현실화율 동결도 다 '국민들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함이라는 말만 눈에 띈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동결되면 벌어질 일들
 
 
하지만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동결하면 모든 국민들의 부담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정책이 그렇듯 정책이 변하면 어떤 국민은 이익을 보고, 어떤 국민은 손해를 본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동결되면 누가 웃고, 누가 울까? 일단 다주택자, 고가 부동산 소유자들은 웃는다. 누진 구조로 되어 있는 보유세 체계에서 다주택자, 고가 부동산 소유자들은 공시가격이 시세보다 대폭 저렴하게 책정되면 그만큼 보유세, 건강보험료 등을 덜 내게 되어 경제적 이익을 볼 수 있다.


반면 집이 없는 사람들은 경제적 손실이 생긴다. 누군가 세금을 덜 내게 되면 누군가는 세금을 더 내야 한다. 2024년 정부의 총지출이 총수입보다 많아 적자국채를 81.8조 원 발행할 것이라고 한다. 국채발행에 대한 이자는 세금으로 나간다. 다주택자, 고가 부동산 소유자들의 세금을 깎지 않았다면 내지 않았어도 되는 이자다. 고가 부동산 소유자와 다주택자들의 세금을 깎아주고 무주택자를 포함한 모두의 세금으로 정부부채의 이자를 갚는 것이기에 공시가격 현실화율 동결은 간접적이지만 무주택자의 경제적 손실을 일으킨다.

공시가격 현실화율 동결로 인해 더 직접적인 손실을 보는 집단이 있다. 저층주거지의 다세대주택·다가구주택을 여러 채 소유한 저층주거지 임대업자들이다. '전세사기'하면 빌라를 떠올릴 정도로 갭투기·깡통전세로 인한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건·사고는 저층주거지의 다세대·다가구주택에 집중되었다.

저층주거지에 전세주택 임차를 구하려는 사람들은 전세보증보험이 가입되지 않으면 그 집은 쳐다보지도 않는 상황이다. 공시가격 현실화율 동결이 저층주거지 임대업자들에게 불리한 이유는 공시가격이 시세에 근접할수록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쉬워지고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한 최대 수준으로 전세보증금을 책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층주거지 임대업자들 입장에서는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올라가 재산세 부담이 조금 늘더라도 역전세로 인한 전세보증금 하락규모를 낮추기 위해서는 공시가격이 시세에 근접하게 올라가는 것이 유리하다.

언론 기사에 따르면 강희창 전국비아파트총연맹 공동회장은 "공시가가 하락하면 역전세금을 더 준비해야 하는데 이미 가용 가능한 돈을 당겨써 자금을 더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임대인들이 많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같은 다주택자이지만 아파트 임대업자와 달리 저층주거지 임대업자들이 처한 상황이 이렇게 다 다르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동결하고, 공시가격 현실화율 계획을 포기했을 때 어떤 국민이 웃을지 보면 윤석열정부가 말하는 '국민'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그토록 재정건전성을 중요시 여기는 현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훼손하면서도 세금을 깎아주려는 '국민'이 모든 국민은 아닐 것이다.

명분과 원칙이 무너진 정책과 정치≒문명의 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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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종부세 고지서 발송... 공시가격 하락에 대상 줄어들 듯 종합부동산세 고지서 발송이 11월 23일 시작된다. 국세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부터 종부세 고지서가 우편으로 발송될 예정이다. 기재부는 올해 종부세수를 5조7천100억원 수준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실적(6조7천988억원)보다 약 1조800억원 적다. 사진은 이날 서울 송파·강남 일대 아파트 전경. ⓒ 연합뉴스

 
정부가 만드는 모든 정책은 변한다.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하도록 정책을 바꾸어 가다 보면 그 정책으로 인해 혜택을 보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변하는 정책에 따라 사회 구성원들의 이익과 손실이 달라지기에 중요한 것은 정책에 명분과 원칙이 분명한지다.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진시키고,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가 증진된다는 명분과 원칙이 분명하지 않으면 정책은 힘이 센 집단이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김오진 1차관이 말하는 '공정과 상식', '국민의 눈높이'라는 명분은 추상적이다. '어떤 계층'의 공정과 상식인지, '어떤 국민'의 눈높이인지가 중요하다. 정부의 재정지출, 준조세부담금은 정해져있는 상황에서 누군가의 세금을 깎아주면 누군가는 부담해야 한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동결하고 공시가 현실화 로드맵을 폐지하겠다는 윤석열정부의 정책방향에서는 명분과 원칙이 보이지 않는다.

정책과 정치가 '명분과 원칙' 중심이 아니라 강자에게 유리하고 약자에게 불리한 '약육강식의 논리'로 흐르는 현상을 '문명의 퇴보'라 부른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을 저성장국가라고 부르는 것은 용인할 수 있지만 한국사회가 '퇴보하는 문명국가'라는 오명을 쓰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공시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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