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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오마주로 장식한 거장의 훌륭한 마침표

[리뷰]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23.10.31 11:43최종업데이트23.10.3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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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 포스터 ⓒ 스튜디오 지브리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무렵 소년 마히토(산토키 소마 목소리)는 화재로 어머니를 잃는다. 그로부터 1년 후, 마히토는 아버지 쇼이치(기무라 타쿠야 목소리)와 도쿄를 떠나 어머니의 고향에 있는 저택으로 이사를 간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새로운 어머니 나츠코(기무라 요시노 목소리)에 대한 거리감으로 힘들어하던 마히토 앞에 정체불명의 왜가리 한 마리가 나타나고, 저택에서 일하는 일곱 할멈으로부터 왜가리가 살고 있는 탑에 대한 신비로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느 날, 마히토는 갑자기 자취를 감춘 새엄마 나츠코를 찾기 위해 일곱 할멈 중 한 명과 함께 탑으로 향하고 사람 모양으로 변한 왜가리(스다 마사키 목소리)의 안내를 받아 문을 통과하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신비로운 이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이다. 1941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1963년 토에이 동화에 입사하며 애니메이터 생활을 시작한 그는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루팡 3세> 시리즈, <미래소년 코난> <명탐정 번개> 등 다양한 TV 애니메이션에서 원안, 아이디어 구상, 원화, 장면 설계, 화면 구성, 캐릭터 디자인, 레이아웃, 연출로 참여하여 경력을 쌓았다. 

1979년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으로 첫 장편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웃집 토토로>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숱한 흥행작을 쏟아냈다. 그뿐만 아니라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 등 국제 유수 영화제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며 예술성도 인정받았다.

곳곳에 보이는 오마주와 거장의 메시지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의 한 장면 ⓒ 스튜디오 지브리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2013년 공개한 <바람이 분다>를 끝으로 장편 영화 제작에서 은퇴하겠다는 선언을 철회하고 10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한 작품이다.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받은 요시노 겐자부로가 쓴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삼았다. 군국주의가 만연하던 1937년에 출간한 이 책은 열다섯 살 코페르가 일상에서 발견한 의문에 대해 외삼촌이 일기와 대화로 대답하는 구성을 통해 엄혹한 시대를 사는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올바른 방향을 제시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원작 소설에서 제목과 인본주의적 관점을 공유하되 군용기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의 공장장이었던 아버지, 유복했던 가정환경, 화염으로 지옥이 된 도쿄 등 자신이 겪었던 삶을 이야기에 투영하여 기억과 허구를 섞어 완전히 다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만들었다. 원작 소설은 영화와 서사적 공통점은 없으나 주인공의 심리에 변화를 일으키는 중요한 장치로 나온다.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의 한 장면 ⓒ 스튜디오 지브리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원작 소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외에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존 코널리의 소설 <잃어버린 것들의 책>, 폴 그리모 감독이 1952년에 만든 애니메이션 <왕과 새>에서 영감을 얻었다. (앨리스처럼) 마히토가 (흰토끼를 연상시키는) 왜가리를 쫓아 굴을 통과하여 초현실적이며 마법 같은 모험을 경험한다는 건 이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보여준 바 있는 친숙한 구조다. 이세계가 현실 세계와 캐릭터상으로 기이한 대칭 구조를 형성한다는 점으로 본다면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영향도 받았다. 

엄마를 잃은 소년이 아빠의 재혼으로 새엄마와 이복동생이란 가족을 맞이하게 되고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서 눈을 돌려 동화책을 읽으며 신화와 동화 속에 빠져들어 현실과 상상이 뒤섞이기 시작한다는 <잃어버린 것들의 책>의 전개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무척 흡사하다. 도망치는 남녀, 왕궁의 형태와 계단 모양, 수많은 새, 여러 개의 문 등은 <왕과 새>와 매우 비슷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개인적인 취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이웃집 토토로>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 등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그동안 만들었던 수많은 명작의 여러 요소가 스토리와 이미지 곳곳에 오마주 형태로 녹아있다.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측면에선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인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반딧불이의 묘>(1988)도 떠오른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들은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을 포함하여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 스즈키 토시오 스튜디오 지브리 프로듀서 겸 대표이사 등 스튜디오 지브리 멤버들의 특징을 반영했다고 알려진다. 그야말로 스튜디오 지브리 팬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편지인 셈이다.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의 한 장면 ⓒ 스튜디오 지브리

 
마히토가 간 이세계는 그 자체로 성장의 공간이나 현실에 기반을 둔 두 가지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이전 세대(과거)'로서의 공간이다. <바람이 분다>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일본은 진정한 근대 국가가 되지 못했다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에선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세대(전쟁을 일으킨 이전 세대도 당연히 포함)가 만든 일본은 실패했다면서 구시대의 잔재인 지금의 일본을 부숴버리고 다음 세대는 올바른 일본을 만들어 주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그렇기 위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묻는다.

다른 하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창작 세계'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세계를 유지하는 '큰할아버지(히노 쇼헤이 목소리)'를 빌려 자신이 몸담은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이야기한다. <바람이 분다>를 제작하던 시기를 담았던 다큐멘터리 영화 <꿈과 광기의 왕국>(2013)에서 그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게 "저주 받은 꿈"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선이라 생각하며 행동했으나 도리어 문명의 어두운 앞잡이가 되어버린 현실을 빗댄 표현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비롯한 그의 세대는 아이들을 위해 건강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지만, 이들의 바람과 달리 애니메이션에 몰두한 나머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낳았다. 현실로 돌아가는 마히토를 통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은 삶의 도피처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도구란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방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는 마히토의 모습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마지막 화와 <신세기 에반게리온-엔드 오브 에반게리온>(1997)의 엔딩과 맞닿는 대목이다. 

한편으로는 거장이 애니메이션 업계에 보내는 바람이기도 하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튜디오 지브리는 어느새 과거의 유물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올해 일본에선 <더 퍼스트 슬램덩크> <원피스 필름 레드> <스즈메의 문단속>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흥행 성적을 훌쩍 뛰어넘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보유하던 역대 일본 흥행 수입 1위 기록은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2020)에 의해 깨졌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자신의 유산이 다음 세대에 의해 무너지는 현실을 영화로써 포용하며 후배들이 계속해서 자기만의 '탑'을 쌓길 응원하는 모습이다.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의 한 장면 ⓒ 스튜디오 지브리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지금 시대에 무엇을 근심하고 어떤 말을 들려줘야 할지 고민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삶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깊은 성찰이 엿보이는 진정한 '어른'의 영화이자 (현재까지론) 거장의 훌륭한 '마침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말한다.

"소년의 안에 담긴 여러 가지, 아름다운 것도 있지만, 물론 어디에도 보여줄 수 없는 추한 감정과 또 갈등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힘차게 넘어갈 수 있을 때, 드디어 세상의 문제들과 마주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이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미야자키하야오 산토키소마 스다마사키 시바사키코우 기무라타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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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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