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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공무원에게 용산구청 문 지키게하고... 박희영은 황제재판"

[현장] 유가족들 "이태원참사 용산구청장 재판 겨우 2번째, 재판 지연에 유족은 참담"

등록 2023.06.26 13:33수정 2023.06.2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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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기본소득당, 시민들이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사퇴와 엄정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가방에는 반쯤 녹은 얼음물이, 허리춤에는 노란 우비가 둘러 있었다. 10.29이태원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과 시민 100여 명은 장마가 시작된 26일 오전 서울광장 시민분향소를 출발해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두 번째 재판이 열리는 마포구 서울서부지법까지 행진해왔다. 트라우마와 공황장애 등을 이유로 보석을 받고 지난 7일부터 구청장 권한을 회복한 박 구청장의 사퇴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습기 가득한 날씨 탓에 얼굴에는 땀이 달라 붙어있었다.

유가족들 "만나겠다면서 문은 왜 잠그나"
 

박희영 불구속 상태 첫 공판, 이태원 참사 유가족 “황제 재판 용납 어려워…” ⓒ 유성호

 
유가족들은 더디기 만한 재판 속도에 답답함을 털어놨다. 이들은 이날 입장문에서 "박 구청장이 구속 기소된 지 157일째인데 재판은 오늘로 겨우 2번째 공판기일이다"라면서 "검찰 측 증인만 최소 8명인데 오늘까지 2명만 나왔다. 지금같은 속도로 1달 1번씩 한다면, 재판은 1년을 넘길 것이 너무나 명백하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이어 "용산구청에 재직 중인 책임자들이 무슨 일을 벌일지 어떻게 알겠나"라면서 "재판이 지연되고 처벌이 연기되는 사태 앞에 유가족들은 피가 타고 눈앞이 캄캄한 심정이다"라고 토로했다.

"유족들은 왜 만나겠다고 하는 것인가요. 만나겠다면서 문은 왜 잠그는 것인가요. 그냥 사퇴하십시오. (중략) 구청장 하나 지키려고 공무원들이, 경찰 기동대들이 왜 동원돼야 하나요. 용산구청을 주민 품으로 돌려주십시오."

고 진세은씨의 고모 진창희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 구청장이 유족들을 '만나겠다'고 하면서도, 용산구청은 구청 직원들로 하여금 유가족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상황을 언급했다. <CBS노컷뉴스>에 따르면 용산구청은 일부 유족들의 시위에 대비해 구청 공무원 3개조 90여 명의 인원이 3교대로 청사 방호 근무를 진행하고 있다.

진씨는 "(사퇴하고 잘못을 인정하면) 용산구청이 경찰 기동대를 부를 필요도 없다"면서 "젊고 어린 공무원들에게 구청 문을 지키게 하고 용산구 주민조차 구청 출입을 불편하게 한다. 버티면 버틸수록 용산구 주민들의 피해는 얼마나 불어나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이태원참사 TF 소속인 이창민 변호사는 공무원임용령 등을 들며 "유가족들의 집회와 시위를 구청 막으려고 공무원들에게 자신의 임무가 아닌 업무를 하도록 지휘하는 것은 위법 소지가 크다"면서 "이렇게까지 하면서 유가족들을 내쳐야겠나"라고 말했다.

유가족, 이태원참사 특별법 제정 촉구 단식 7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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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기본소득당, 시민들이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사퇴와 엄정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5월 15일 열린 첫 재판에선 이태원참사 당시 당직 근무를 섰던 용산구청 직원들의 증언이 있었다. 당시 이태원 참사 현장으로 출동을 준비하던 근무자에게 윤석열 정부 비판 전단지를 제거하라는 박 구청장의 지시가 하달됐다는 내용이었다.


유가족들은 이날 성명에서 "(참사 당일) 당직자 5명 중 2명이 전단지 제거 업무를 하느라 참사 발생 시까지 전단지를 뗐다. 이태원로에 인파가 몰려 혼잡한데 구청이 우선 할 업무가 전단지 떼기인가"라면서 "결국 용산구청은 오후 10시 20분에 서울소방재난본부에서 참사가 발생했다는 문자를 받고도 사람이 부족해 현장 출동을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희생자들을 살릴 수 있었던 골든타임이 박 구청장의 지시 때문에 지나가고 말았다"는 말끝에 일부 유가족들이 소리내 오열했다.

이들은 또 "박 구청장은 구속된 139일 동안 월급도 꼬박꼬박 받아왔다고 보도됐다. 앞으로도 구청장으로서 지위와 혜택을 모두 누리고 '황제 재판'을 받는 것은 유가족으로서 용납할 수가 없다"면서 "용산구민에 의해 소환되기 전에 지금이라도 즉시 사퇴하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서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유가족들은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국회로 다시 행진을 시작했다. 현재 국회 앞에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고 박가영씨의 어머니 최선미씨와 고 이주영씨의 아버지 이정민씨가 7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관련 기사 : "유족 역할 정해진 이상한 나라, 국회의원은 뭘 하나" https://omn.kr/24g8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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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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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용산구청장 #박희영 #이태원 #이태원참사 #책임자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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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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