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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그리고 중국 향한 맹렬 돌격, 윤 대통령의 그림

[진단] 국내외적으로 무리한 행보... '2024년 4월 총선' 변수 넣으면 설명된다

등록 2023.06.25 20:24수정 2023.06.2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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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전혀 상관없는 듯 보이는 일도, 잘 들여다보면 '하나의 끈'으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범죄 사건에서 이런 연결 고리를 잘 찾아내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을 명탐정 또는 명수사관이라고 합니다. 소설 속의 이야기이지만 오리무중의 상황에서 치밀한 관찰과 날카로운 추리로 불가사의처럼 보이는 사건을 시원하게 파헤치는 셜록 홈스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셜록 홈스가 도전해 봄 직한 기상천외의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셜록 홈즈가 실존 인물이 아닌지라 아무리 거금을 들여도 초빙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라도 그의 흉내를 내어 몇 개의 난제 풀이에 도전해 볼까 합니다.

거의 날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속출하고 있지만 최근 일어난 두 개의 사안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는 '느닷없는 한국방송(KBS) 수신료 분리 징수 추진'이고, 다른 하나는 '도 넘은 중국 때리기'입니다. 전자는 국내 사안이고, 후자는 외교 사안이어서 전혀 접점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두 사안이 같은 배경과 목적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 '옴니버스극'이라고 봅니다.

두 사안 모두에 윤 대통령의 강한 입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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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KBS 앞에 수신료 분리 징수와 김의철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근조 화환이 놓여 있다. 이날 방송통신위원회는 수신료 분리 징수를 위한 전체회의를 열고 내용을 보고받았다. ⓒ 연합뉴스

 
그러면 차근차근 얘기를 풀어가 보겠습니다. 우선 두 사안 모두 윤석열 대통령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중국 때리기에 관해서는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를 구한 말 조선 국정을 좌지우지했던 "청나라의 위안스카이" 같다고 저격했으니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방송 시청료 분리 징수 건은 윤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흔적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뜻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정황은 뚜렷합니다.

갑자기 수신료 분리 징수 문제가 추진된 과정을 보면, 연결 고리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2월 24일, 특수부 검사 출신인 정순신씨를 경찰청의 초대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했습니다. 검찰이 경찰 수사까지 장악하려는 의도가 깔린 인사였습니다. 그런데 한국방송이 바로 그날 밤, 정씨 아들 학폭 사건을 단독으로 보도하면서 강한 비판 여론이 일어났습니다. 정씨는 의외의 일격에 다음날 사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즉각 대통령실이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2주일 뒤인 3월 9일, 대통령실 국민제안 누리집에 'TV 수신료 징수방식 국민토론'을 올리면서 한국방송 손보기 신호탄을 쏴 올린 것입니다. 그 이후 수신료 분리 징수를 내세워 한국방송의 목을 죄는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는 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배후의 거대한 힘의 존재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 처리입니다.


국익 경시, 공익 경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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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지난 3월 28일 국회 대표실을 방문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두 번째 공통점은 선후와 경중을 깡그리 무시한 무모함입니다.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도 불사하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다가 나중에 후회한다"라는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의 거친 발언에,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기분 좋을 이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불쾌감을 표시하고 중국 관계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갈 정도의 사안은 아닙니다. 파리를 잡자고 도끼를 휘두르는 꼴입니다.

결과적으로 중국을 제압하지도 못하고 중국을 대하는 대통령의 속내만 드러낸 셈이 됐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미일 추종 외교 탓에 중국과 사이가 틀어지면서, 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버팀목 노릇을 해왔던 중국 시장이 이번 일을 기화로 더욱 줄어들지 않을까 조마조마합니다.

대통령의 중국 대사 저격이 국익을 무시한 화풀이라면, 한국방송의 시청료 분리 징수는 공익을 무시한 보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4년부터 수신료를 지금처럼 전기료와 합쳐 통합 징수하기 시작한 이래, 좌우 양쪽 가리지 않고 보도에 대한 불만을 분리 징수 요구로 표출한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주도해 분리 징수를 추진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분리 징수가 공영방송의 재정적 토대를 허물 수밖에 없고, 그 여파는 국민의 손해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으로, 윤 정권의 분리 징수 감행은 공익보다 사익의 관점에서 공영방송을 대하고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기승전-총선'의 시나리오 봐야 전모 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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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국가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베트남 문화교류의 밤 행사에서 공연을 관람하며 박수치고 있다. ⓒ 연합뉴스

 
여기까지만 보면, 대통령이 국내외 사안을 가리지 않고 사적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무모한 행동을 마구 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변수를 더하면 감춰졌던 숨은 그림이 툭 튀어나옵니다. 바로 내년 4월 총선입니다.

윤 정권은, 하는 행동을 보면 매우 강한 듯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취약합니다. 대통령선거에서 겨우 27만7077표(0.73%p) 차이로 신승했을 뿐 아니라, 1년이 넘도록 대통령 지지율이 30% 언저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더구나 의회에선 다수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어서, 하고 싶은 정책을 법제화해 시행할 힘도 없습니다.

검찰을 앞세운 공포정치와 법을 우회한 시행령 정치는 이런 약함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식과 제도 파괴의 공포·편법 정치는 국민의 저항을 불러오게 되므로 마냥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취약한 권력 기반의 윤 정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년 총선 승리에 목을 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추론에 이르게 됩니다.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공영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이 무너져도 좋으니 어떡하든 내 편을 드는 방송 환경을 만들자.' '당장 국익을 해쳐도 좋으니 사회에 팽배한 중국 혐오 정서를 최대한 활용해 총선 판을 한중전으로 끌고 가자.' 이런 속셈 아래 대통령과 여당, 심지어 정부까지 함께 스크럼을 짜고 '총선 앞으로, 돌진' 태세에 돌입했고, 그것이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밖으로 불거져 나온 것이 수신료 분리 징수와 중국 때리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역시 손자병법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 아닐까요.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한국방송(KBS) #수신료 분리 징수 #중국 때리기 #내년 4월 총선 #윤석열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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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논설위원실장과 오사카총영사를 지낸 '기자 출신 외교관' '외교관 경험의 저널리스트'로 외교 및 국제 문제 평론가, 미디어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일관계를 비롯한 국제 이슈와 미디어 분야 외에도 정치,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1인 독립 저널리스트를 자임하며 온라인 공간에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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