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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잡은 이태원 유족과 상인 "상대의 슬픔 함께 돌보겠다"

[현장]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이태원 추모 공간 2차 재단장 작업...하나씩 옮겨진 추모의 마음

등록 2022.12.23 14:14수정 2022.12.2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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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에서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활동가들이 희생자들의 온전한 추모를 위한 재단장 작업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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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가족이 추모 공간 재단장 작업에 앞서 눈물을 닦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곳에서 잠든 사람들의 영(령)을 위로하여 주세요. 요즘 날씨가 많이 추워졌어요. 이들이 천국에서는 부디 건강하고 아프지 않길 기도합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너무나 무섭습니다. 안전한 삶을 지켜주세요."

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던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 호텔 뒷골목, 벽면 앞에 놓인 꿀물 음료에 붙어있던 포스트잇이다. 이곳엔 각종 과자와 빵, 귤, 바나나맛 우유, 초코맛 우유, 술 등도 함께 놓여있었다. 이미 색이 바랜 국화 꽃들도 벽면을 따라 끝없이 자리했다.

23일, 시민들의 추모 마음이 담긴 물건들이 하나 둘씩 박스에 옮겨졌다. 빨간 목도리를 두른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 이태원 지역 상인들, 자원 봉사자들은 꽝꽝 얼어버린 음료들을 박스에 담았다. 작은 인형, 선물 등도 함께 옮겼다. 벽면을 가득 메운 포스트잇도 조심히 뗐다. 보관할 포스트잇과 이미 많이 훼손된 포스트잇을 구분해 담았다. 영하 10도로 떨어져, 체감온도 –17도인 이날 추모공간 2차 재단장 작업이 진행됐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이태원 관광특구연합회,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는 "이태원이 모두를 위한 기억과 애도의 공간으로 거듭나도록" 재단장에 돌입한 바 있다. 지난 21일에는 이태원역 1번 출구 주변에 시민들이 놓아둔 추모 메시지와 국화꽃 등 물품을 정리했다. 현재 이태원 역 앞은 출구로 나오는 지하철 벽면에 붙여진 포스트잇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든 물품들이 옮겨진 상태다.

"세 주체가 서로를 보듬는 동안, 정부는 무엇을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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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앞에서 ‘희생자의 온전한 추모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이태원역 1번 출구 재단장 및 대책 촉구 기자회견’이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이태원 관광특구 연합회, 10.29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시민대책회의 피해자 권리위원회 자캐오 위원장(용산 나눔의 집 신부), 고 이주영씨 아버지인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부대표,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이동희 회장이 ‘온전한 애도와 기억을 위한 공간 정비’ ‘유가족, 상인, 지역 주민 등 피해자들의 회복’ ‘이태원 1번 출구 인근의 상권 회복’ 등의 내용을 담은 ‘상호협력 협약서’를 들고 있다. ⓒ 권우성


이태원 유가족들이 직접 추모의 글과 물품 정리에 나선 것은 이태원을 살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태원이 희망의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또 다른 이태원 참사의 피해자인 이태원 상인들의 삶을 위한 행동이다.

2차 재단장에 앞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부대표(희생자 이주영님 아버지)는 "우리 아이들을 기억해주기 위해 노력해주셔서 감사하다, 유가족과 마찬가지로 참사 피해자인 이태원 상인분들이 아이들을 애도하고 기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줘서 감사하다"라며 고마움을 먼저 표했다.

그러면서 이 부대표는 "이태원 거리가 사랑받는 거리가 되길 바란다, 이태원 거리를 찾아주시고 상인들을 격려해달라"라며 "참사 피해자인 이태원 상인들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한다, 심리지원과 생계 지원이 절실하다, 유가족협의회는 이태원 상인에 대한 대책과 조치 마련에도 목소리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동희 이태원 관광특구연합회 회장은 "사랑하는 이들이 찾았던 이태원 거리가 애도와 기억의 공간으로 남도록 참사의 생존자이자 목격자, 구조자인 상인들은 아픈 기억이 아닌 희망을 품고 이태원에서 살아 나갈 수 있도록 유가족들과 마음을 모으려고 한다"라며 "유가족, 지역주민, 시민단체가 서로를 의지하며 희망과 변화를 만들어가겠다"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이곳이 모두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공간이 되도록, 더 나은 희망의 공간 이태원을 만들겠다"라고 덧붙였다.

배광재 관광특구협회 총무 역시 "떠난 이들의 마지막을 목격하고 다음의 날을 살아야 하는 지역주민과 상인들의 고통을 공감해줘서 감사하다"라며 "유가족과 상인이 바라는 건 고통을 딛고 안전한 이태원이 되는 일이다, (이 같은 작업이) 모두의 회복을 향한 걸음이 될 거다, 이태원을 사랑해 달라"라고 호소했다.

성공회나눔의집 자캐오 신부는 "세 주체가 서로를 보듬고 오늘에 이르는 동안 행정안전부와 서울시, 용산구청 등 공공의 책임 있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라며 "이제라도 피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실질적 지원을 해달라"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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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앞에서 ‘희생자의 온전한 추모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이태원역 1번 출구 재단장 및 대책 촉구 기자회견’이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이태원 관광특구 연합회, 10.29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박성현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피해자권리위원회 활동가는 "유가족과 상인들은 각자 가진 슬픔과 고통이 있지만 이태원이 기억과 애도의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 손을 잡았다"라며 "상대의 슬픔을 함께 돌보겠다고 결심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활동가는 "이런 노력을 지원해야 한다, 공공은 시민들의 메시지를 잘 기록하고 유족들을 위한 공간, 자원봉사자들이 쉴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라며 "사회적 참사에 심리적 회복을 위한 권리 역시 보장돼야 하고 피해자인 상인들을 위한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지원 역시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태원이 참사가 있었던 두려운 공간이 아닌 참사를 넘어 상생과 희망의 공간이 되도록 지원해야 한다"라며 "수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회복의 도시 이태원이 되길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당신의 삶을 알고 싶어요""초능력은 없지만, 위로하고 싶어요"

이날 2차 재단장까지 마무리한 뒤 추모글과 물품들은 예를 갖춰 보관하고, 꽃들은 조계종 스님의 도움을 받아 소각해 재를 모아 수목장 형식으로 처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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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10.29이태원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앞 해밀턴 호텔옆 골목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유가족, 시민들의 메모지와 국화꽃 등 추모물품이 놓여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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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에서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활동가들이 희생자들의 온전한 추모를 위한 재단장 작업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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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에서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활동가들이 희생자들의 온전한 추모를 위한 재단장 작업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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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현장에서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활동가들이 희생자들의 온전한 추모를 위한 재단장 작업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다음은 이날 보관함으로 옮겨진 추모글 일부다. 

"당신들의 삶을 잘 알고 싶어요... 젊은 날의 추억을 만들러 간 날에 황망히 떠나야 했던 슬픈 꽃이 아니라...
'19세 패션디자이너 지망생 재학 중 유학 준비
고2 삼성전자 입사 희망 알바비 모아 할머니께 옷 사드림'
왜 나는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나요? 당신들이 열심히 하루 하루 살아가고 웃고 떠들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슬픔과 참사로만 당신들을 기억 속에 봉인하고 싶지 않아요. 행복하게 웃던 당신, 미래를 준비하던 당신, 당신이 궁금합니다. 당신의 하루가 열정 가득 찬 삶이었다는 걸 알면 좋겠어요. 11월 6일 서OO,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저와 같은 나이의 친구들, 비슷한 젊은 청춘들, 심지어 저보다도 어린 청소년들까지. 너무 많은 생명들이 희생됐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게 해주세요. 얘들아 친구들아 거기선 행복하렴."

"반짝이는 별을 볼 때마다 그대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 대구에서"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사세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눈뜨고 마지막 눈감는 순간까지, 단 한순간도 소중하지 않은 적이 없던 꽃봉오리같던 영혼들. 그곳에서는 활짝 꽃피우고 마음껏 뛰놀고 마음껏 숨쉬며 부디 평화와 안식을 찾으시길."

"저는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김은O 학생입니다. 위로의 말을 전달해주고 싶어 이 편지를 썼어요. 평범하고 똑같던 하루에 이태원 사건이 일어났는데 전 선생님 말씀에 이태원 사건을 알게 됐어요. 나는 뭘하고 있었을까? 제가 초능력이 있고 위대하지 않아서 무엇을 주어야 할지 모르지만 큰 위로를 전달해서 하루에 작은 기쁨이 들었으면 합니다. 이런 편지가 처음이라 위로가 못 전달될 수 있지만 위로를 받으시면 좋겠어요."
#이태원 참사 #이태원 역 1번 출구 #해밀턴 호텔 #이태원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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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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