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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이 수험생 '골탕 먹이기' 위한 도구? 아이들은 왜...

[아이들은 나의 스승] 굳이 서술형 시험 출제를 고집하는 이유

등록 2022.10.09 11:35수정 2022.10.0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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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서술형 문제를 풀지 않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작종과 함께 책상에 엎드리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 올해는 대충 헤아려도 25명 한 반에 예닐곱 명 정도다. ⓒ 연합뉴스

 
가을이 깊어가는 10월 초순, 어김없이 시험 답안 채점의 계절이 찾아왔다. 교사라면 모두 공감할 테지만, 시험 문항을 출제하는 것보다 채점하는 것이 백 배는 더 힘들다. 한두 학급도 아니고 학년 전체 225명의 답안지를 채점하다 보면 하루해가 짧다. 

내가 가르치는 한국사 과목의 중간고사만큼은 100% 서술형으로 출제한다. 수행평가 결과를 반영해 성적을 합산하고 등급을 산출해야 하는 학기 말 시험은 서술형 출제가 어렵다. 채점하는 데에 워낙 많은 시간이 걸려 자칫 방학 전까지 마무리 짓지 못할 수 있어서다. 

괴발개발 눌러쓴 아이들의 답안지 묶음을 들고 교실로 돌아왔다. 결과야 어떻든 시험이 끝나 들뜬 아이들은 일찌감치 하교하고 텅 빈 교실에 남아 팔을 걷어붙였다. 모든 반의 채점이 끝나려면 족히 여덟아홉 시간은 걸릴 것이다. 대강 한 반에 한 시간꼴이다. 

그런데 의외로 답안지 넘기는 속도가 빠르다. 백지 답안지가 많아서다. 어제오늘의 일은 분명 아니지만, 해가 갈수록 아예 문제지조차 펴보지 않고 시작종과 함께 책상에 엎드리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올해는 대충 헤아려도 25명 한 반에 예닐곱 명 정도다. 

이른바 기타 과목인 한국사가 이럴진대, 영어나 수학은 안 봐도 비디오다. 게다가 직접 답을 완결된 문장으로 적어야 하는 서술형 시험은 그들에게 그냥 잠이나 자라는 신호다. 짧게는 30자 내외에서 길어야 50자 정도를 요구하는 데도 적잖은 아이들이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한다.

서술형 시험을 고집하는 이유
 

아이들이 문제지를 펴보는 것조차 포기하도록 만들고, 채점하기도 버거운 서술형 시험을 굳이 고집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요행을 바라는 삿된 마음을 애초 갖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아이들 입에서 "잘 찍는 것도 실력"이라는 황당한 이야기가 나오면 안 된다. 

다섯 개 중에 하나를 고르는 선다형 시험에선 찍어서 맞힐 확률이 무려 20%나 된다.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만약 치사율이 20%인 감염병이 있다면 누구라도 '걸리면 죽는다'고 여길 테니 말이다. 찍어서 맞혔다면 그건 그저 운일 뿐 실력이라 말하는 건 민망한 일이다.

무엇보다 시험 때만이라도 펜을 손에 쥐고 글을 써보도록 하기 위해서다. 정확히 말하자면 완결된 문장까지는 기대하지도 않고, 그저 글자라도 또박또박 써보는 경험을 시켜주고 싶은 거다. 요즘엔 칠판에 판서하는 교사도 드물고, 설령 판서한다 해도 받아적는 아이들도 없다.

노트북과 스마트폰 사용이 보편화하면서 가장 먼저 쓸모가 없어진 게 펜과 공책인 듯싶다. 과거 샤프펜슬은 연필을 대체한 첨단문구이었는데, 요즘엔 그조차 수능 시험장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 됐다. 아예 가방에 필통과 공책을 넣어 다니지 않는 아이들도 부지기수다. 

요즘 아이들의 글씨를 판독하기 어려운 건 종이 위에 글을 써본 경험이 없어서다. 한때 '손 암기법'이라는 게 유행한 적이 있었다. 영어 단어나 수학 공식 등을 암기할 때, 눈으로 반복해 읽는 것보다 손으로 한 번 써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거다. 

머리로는 잊어버려도 손이 기억해낸다는, 언뜻 믿거나 말거나 식의 주장이었지만 당시엔 아이들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 두툼한 연습장에 마치 사전을 베끼듯 반복해 적어가면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샤프심이 순식간에 닳고 연필 깎기 바쁘던 시절이었다. 

이른바 '깜지'라는 과제물이 유행했던 것도 그즈음이다. 깜지란 깨알 같은 글씨로 백지 연습장을 빼곡하게 채워 까맣게 보이게 만드는, 일종의 '공부 증명법'이었다. 흔히 깜지의 분량에 따라 학습량을 판단했고, 성적이 떨어진 아이들에게 부과되는 벌칙으로 곧잘 활용됐다. 

그때도 글씨가 엉망이라고 놀림 받는 친구가 있었지만, 요즘에 댈 건 아니다. 글씨체가 나쁘다는 게 흠결인 세상이던 당시엔 서점에 가장 흔한 게 펜글씨 교본이었다. 숫제 펜글씨 교본을 교재로 수업하는 교사도 있었다. 어느새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가 됐다. 

한가닥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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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답안지만큼이나 최근 들어 눈에 띄는 건 맞춤법에 서툰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 연합뉴스



시나브로 늘어나는 백지 답안지만큼이나 최근 들어 눈에 띄는 건 맞춤법에 서툰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시험 전에 맞춤법이 틀리면 오답 처리하겠다고 을러대지만 이내 흰소리가 되고 만다. 그러잖아도 오답이 부지기수인데 맞춤법까지 반영하면 채점 자체가 불가능하다.

인물이나 사건의 이름 등 핵심 단어를 잘못 적은 거라면 모를까, 웬만하면 눈감아주게 된다. 이를테면 맞히다와 맞추다를 혼동하고, 삼가다를 삼가하다로, 어떡해를 어떻해로 적는 경우가 태반이다. 외려 우겨넣다나 됬다가 바른 표기 아니냐고 되묻는 아이도 있다.

검정색이나 금새, 눈꼽 등 잘못된 표기는 따로 암기해야 할 정도로 어려워한다. 하물며 제대로 된 띄어쓰기를 바라는 건 과한 욕심이다. 채점 기준에 아예 띄어쓰기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미리 밝혀두는 이유다. 세상에서 가장 공부하기 어려운 게 띄어쓰기라는 아이도 있다.

부러 불러 맞춤법이 틀렸다고 지적하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는 대꾸가 있다. '의사소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 아이들은 원어민 교사도 영어 수업하다 스펠링을 틀리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그다지 괘념치 않는다면서 유독 우리만 맞춤법에 연연한다고 볼멘소리를 해댄다. 

심지어 구어체가 대세라며 맞춤법 운운하는 건 '꼰대스럽다'고 조롱하기까지 한다. 하다못해 '응'조차 'ㅇㅇ'으로 줄여 표기하는 요즘 맞춤법은 시대에 뒤처진 규정이라고 잘라 말한다. 까다롭기 그지없는 맞춤법은 수험생들을 골탕 먹이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거다. 

아이들의 원성은 자자하지만, 그래도 맞춤법에 대한 지적질을 포기할 순 없다. 이따금 국어 교사보다 더 까탈스럽다고 아이들에게 흉잡혀도 잔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맞춤법과 어휘력은 동전의 양면 같다는 확신 때문이다. 서술형 시험을 채점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다. 

맞춤법에 서툰 건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경종을 울렸다, 사영 기업, 일본은 구축될 것, 조속한 독립, 책임 방기, 기립 표결 통과 등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경우가 드물다. 앞뒤 문맥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는 흔한 표현들인데도 그렇다.

그러다 보니 경중이라고 적는가 하면, 사용 기업의 오타 아니냐고 반문한다. 또, 구축을 세운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조속과 방기 같은 건 처음 접한 단어라고 말한다. 아무리 한자어라지만, 기립이 일어선다는 뜻이라는 걸 알고 있는 아이가 거의 없었다. 

일단 교과서 내용을 달달 외워서 답을 쓰긴 하는데 정확한 의미를 모르니 곳곳에서 오타가 쏟아진다. 물론 한자어 대신 쉬운 우리말로 고쳐 쓰려는 노력은 더없이 중요하다. 다만 기존의 한자어로 된 단어가 무슨 뜻인지는 알아야 교과서의 '행간'을 읽어낼 수 있다.

장담하건대 지금 고등학생 중에 사전이나 스마트폰 도움 없이 한국사 교과서의 내용을 정확히 독해할 수 있는 비율은 기껏해야 절반이다. 과연 오래된 용어가 많은 과목이라는 게 이유가 될까. 예전에 견줘 쉬워진 건 분명한데 아이들은 그마저 어려워하니 난감할 따름이다.

이보다 더 쉬워져야 한다면, 줄글 책 대신 그림책을 교과서 삼자는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조선의용대 화북 지대와 지대가 반영된 물가, 산악 지대로 행군에서 각각 사용된 '지대'. 그 차이를 묻는 아이들 앞에서 잠시 한국사 교과서를 덮고 국어 교사가 되어야 했다. 

숱한 백지 답안지부터 괴발개발 글씨로 판독이 어려운 답안지, 맞춤법이 엉망인 답안지까지. 선다형 시험이었다면 몰랐을 요즘 아이들의 진면목에 다시금 신발 끈을 조여 맨다. 어떻든 자주 글을 쓰게 하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 나아질 거라는 희망까지 버릴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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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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