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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돈 달라고 질질 짜냐"는 댓글... 이건 '교육'의 문제다

경영자의 이기심과 노동자의 이기심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사회

등록 2022.09.16 13:04수정 2022.09.16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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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시안에서, 작년 11월 문재인 정부가 "교육목표로 반영하는 방안"으로 검토했던 노동인권교육 관련 내용이 대폭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다. 노동이란 단어는 거의 다 사라졌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예전에 한 60대 청소노동자가 했던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평생 노동이란 말 자체를 불순한 말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어디선가 노동이란 말만 들리면 북한 노동당부터 생각났던 건 어렸을 때 반공교육을 열심히 받은 덕일까요. 세뇌라는 것이 그만큼 무서운 거겠죠. 노동이란 말이 나쁜 것이라고 그렇게 주입식 교육을 받은 사람이 막 모여서 데모질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좋게 볼 수 있겠어요.

그래서 교육이란 게 중요하면서도 무서운 것 같아요. 무얼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사람이 변하잖아요. 노동자로 살면서도, 노조에 가입하고 또 거기서 무언가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향해 빨갱이니 뭐니 손가락질할 수도 있으니까요. 지금까지도 제가 노조에 가입하고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고 있었을지 솔직히 궁금해요. 죽을 때까지 노조 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생각하며 살지 않았을까요. 그놈의 반공교육 때문에 말이죠."


그녀는 이렇게 말한 뒤 나에게 어렸을 때 노동인권과 관련한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노동자의 인권에 관심을 갖는 것이 그와 관련한 교육을 받은 덕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 역시 그녀처럼 노동인권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과거에 내가 공부했던 7차 교육과정 기반의 교과서에서는 노동이란 단어조차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나는 12년간의 초중고 교육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학교에서 만나는 선생님들을 단 한 번도 노동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 그녀의 세대가 반공주의자의 시선으로 노동을 대하도록 교육받았다면, 나를 비롯한 세대는 자본가나 기업가의 시선으로 노동을 바라보도록 학습받았다. 이는 정부 수립 이후 단 한 번도 노동자의 시선으로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교육을 한 적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광역자치단체에서는 노동인권교육을 하는 학교들이 있다. 하지만 그 수업이 얼마나 실효성 있게 지속되는지의 여부 또한 중요하다. 대부분은 일회성으로 끝나며, 그마저도 자습시간으로 대체된다.

그에 비해 자본이나 기업 중심의 경제교육은 사회나 경제 등의 필수교과목에서 주요하게 다뤄진다. 예를 들면, 개인의 이기가 곧 사회의 이익이 된다는 시장경제학적 견해는 여전히 기업가의 중요한 자질이자 덕목처럼 가르친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경제는 자본가와 기업가만이 이끌어가고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나 역시 사회 시간에 그렇게 배웠다. 그 부분은 시험으로도 출제되므로,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무조건 외워야 했다.


현재의 교육과정은 '경영자의 이기심'을 미시적인 측면에선 기업의 이익을 창출하고 거시적인 측면에선 경제 생태계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으로 표현하려는 입장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지만,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점들에 대해선 잘 다루지 않는 편이다. 장점만 있고 단점은 없어 보이는 듯 꾸며진 경영자의 이기심은 결국 학생들에게 바람직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마련이다.

사실 경영자가 경영을 이기적으로 한다는 건 비용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나 다름없다. 인건비 역시 비용으로 책정된다는 점에서 기업가가 비용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노동착취적 경영방식을 모색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노동자와 경영자의 '이기심'을 다르게 교육하는 사회

그렇다면 기업가의 이기심을 '바람직한 경영자의 표상'이라고 교육받으며 자란 노동자가 사용자의 노동착취적 경영방식에 맞서는 이들을 보면 당장 어떤 태도를 취하려 할까? 응당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러한 반응은 노동자들이 무언가를 요구하는 기사에서 보이는 여론의 태도로도 쉽게 증명된다. 지난 8일, 네이버에 실린 <경향신문> 기사(15년 일해도 '세후 월급 176만원'···학교 비정규직 생계 '막막')를 한 번 살펴보자.

지난 15년간 학교 급식실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한 정경숙씨가 한 달을 일하고 받는 임금의 실수령액은 약 176만 원(8월 기준)이다. 최저임금 수준이다. 그런데 그녀의 월급은 지출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헤프게 쓰는 것도 아니다. 지칠 줄 모르고 오르는 물가 때문에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맬 대로 졸라매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노조원들과 함께, 정부를 향해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임금 인상을 촉구했다.

정경숙씨의 이런 모습에 달린 네이버 댓글은 응원과 격려보다 비난과 비판이 더 많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세후 176만 원 받고 (...) 일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엄청 많"다면서 "왜 자기들만 그런 대우받냐고 하는지 모르겠"(mama****)다라고 이야기하거나, "공부해서 더 좋은 직장을 가든지 다른 자격증을 공부"해서 "더 좋은 곳으로 가면 되지 왜 돈 달라고 질질 짜는지 모르겠"(mama****)다라고 말한다. 공감이 높은 댓글의 대부분이 이런 반응을 담고 있다.

온라인상에서뿐만 아니다. 오프라인에서도 임금 인상과 근로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노동자의 이기심'으로 규정지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때의 이기심은 경영자의 이기심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띤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학교 급식노동자들의 단체파업 날이면 단골 메뉴처럼 나오는 사진일 것이다. 초중고 학생들이 학교에서 제공한 빵과 우유, 또는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는 장면 말이다. 이는 노동자의 이기심을 극단화시킨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이 무대가 학교라는 점에서 징후적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열악한 일터를 개선하려는 노동자들을 향해, 도리어 회사에 불만이 있으면 그만두라는 식의 선택만 강요한다. "안타깝지만 직업선택은 개인 자유"이므로 "돈 안 된다면 다른 직업 찾아야"(0zan****) 한다는 앞선 기사의 댓글처럼, 그럴 때마다 직업선택의 '자유'를 유난히 강조한다. 노동법을 지키지 않고 벌어지는 최악의 노동착취 사례들을 제외하고는 노동자의 이기보다 사용자의 이기를 더 먼저 비판하는 여론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면 이기심은 당연하게 품을 수 있는 인간의 본능일지 모른다. 그래서 이기심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도 바라볼 수 있을 터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기심을 대상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해석한다는 점에 있다. 우리 사회가 사용자의 이기심과 노동자의 이기심을 상반되게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우리가 현재 입사하길 바라는 회사 중에는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악명 높았지만, 오히려 그러한 환경에 순응하지 않고 경영진을 향해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싸운 노동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노동자친화적인 일터로 바뀐 곳이 있다. 아마 그때의 투쟁 과정에서도 정경숙씨가 처한 상황처럼 여론으로부터 수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았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 행위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과 달리, 양질의 일자리를 더 확대시키는 동력이자 긍정적인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는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학교에서 중요하게 다뤘다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상황 자체를 잘 떠올리지 못한다. 예나 지금이나 노동운동의 역사를 정규과목으로 편성하기는커녕 역사 과목에서도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현실을 잘 모르니, 지금의 좋은 일터가 단지 경영자의 '선의'에 의해 거저 주어졌다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또 한편으로 노동문제와 관련해서 왜 이런 질문은 잘 보이지 않는 걸까? 법정 최저임금을 받는 직종이 정말 그만한 값어치의 일이라는 논리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삶 자체를 영위할 수 없는 임금을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경영자를 '탐욕의 표본'으로 대해야 하지 않을까?

법은 시시각각 변하는 현실을 절대 따라잡지 못하는 절차상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법만 지키면 된다는 태도로 현실과 괴리된 선택을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르다고 볼 수 있을까? 노동자는 경영자처럼 이기적이면 안 되는 것일까? 사용자의 이기심은 기업가가 가져야 할 중요 자질과 덕목으로 추앙하면서 왜 노동자의 이기심은 떼쓰는 것으로 비하될까?

충분히 내놓을 수 있는 의문들 같지만, 쉽게 불온시된다. 노동자의 이기심을 나쁘게 인식하는 시선이 그만큼 많다는 건 이미 우리 사회가 노동'법'만 지킨다면 현실이 어떻든 경영자의 판단이 무조건 옳다고 본다는 의미일 터다. 달리 말하면, 지난 세월 내내 노동문제를 노동자의 시선이 아닌 반공주의자나 자본가, 기업가의 시각으로 교육한 노력이 드디어 빛을 발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에서 고려했던 교육정책을 1년도 안 된 사이에 바꾸려는 이유는 그래서 확실해 보인다. 현 정부가 지금까지 발표한 경제정책들을 살펴보면, 노동자의 이기보다 사용자의 이기를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7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교육부의 첫 번째 의무는 산업발전에 필요한 인재 공급"이며, 또한 "교육부는 스스로 경제부처라고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 경제부처의 최고 수장이라 할 수 있는 경제부총리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자제나 최저임금 동결을 당당히 내놓는 사회에서, '산업발전에 필요한 인재들'(노동자들)의 이기심을 먼저 생각하는 교육을 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지 않을까?

경영자의 사고방식을 갖춘 노동자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라면 현 정부가 내세우는 교육기조는 올바른 선택일지 모른다. 교육이 중요한 건 교육으로 형성된 가치관이 사회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친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교육이 한 사회의 주류적 관점을 이루는 요인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충분조건임에는 틀림없다. 박근혜 정부가 역사교과서를 국정화 하기 위해 온힘을 쏟은 것도 교육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중요 사례라 볼 수 있다.

지금도 사용자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는 노동법은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학교에서 교육받아 온 인식이 구체화된 결과물은 아닐까? 노동자들이 무언가를 요구할 때마다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분명한 건 노동자의 이기심과 경영자의 이기심을 전혀 다르게 교육하는 사회에서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또는 당당히 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노동인권교육 #2022 개정 교육과정 #이기심 #노동자 #노동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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