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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40년 차 농부는 왜 '무경운 모내기'에 도전했나

[내일의 기후] 전남 곡성군 농민들의 탄소중립 무경운 모내기 '절반의 성공'

등록 2021.06.29 07:30수정 2021.06.2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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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9일 전남 곡성군 죽곡면 신풍리에서 '무경운 모내기'를 하고 있다. ⓒ 김현인


"로터리도 안치고 풀만 무성한 논에 어떻게 모를 심겠다는 것이여?"

땅을 갈아엎지 않고 그대로 맨 땅에 모를 심어버리는 '이상한 모내기'는 지난 19일부터 시작됐다. 전남 곡성군 죽곡면 신풍리. 땅을 갈아엎지 않아 풀이 무성한 논에 모를 심는 이앙기가 들어가자 구경 나온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그러나 '윙'하며 이앙기가 돌아가자 궁금증이 풀리기 시작했다. 보통 이앙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경운을 위해서 특수하게 개조된 이앙기였다. 사람 손을 대신해 모를 심는 '식부장치' 앞에 길쭉하게 생긴 날들이 장착돼 있었는데 바로 이 날들이 모가 심길 만큼의 땅을 미리 갈라준다. 이앙기는 그 틈으로 모를 심어나갔다.

기계에는 '어떻게든 논밭을 갈아엎지 않고 쌀을 생산해보겠다'는 농부들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전남 곡성군에서 평생 농사를 지어온 김현인, 이광수, 박기범, 조해석 - 이 네 명의 농부들은 '땅속 미생물과 지구를 지키는 농사'를 지어보겠다며 난생 처음으로 '무경운 모내기'에 도전했다.

이야기를 나눠봤다. 이 날의 무경운 모내기를 주도한 김현인 농민, 그는 1952년생, 70세였다. 그 연배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인사말을 건넸더니 그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요. 농민의 나이로 본다면 창창한 현역이죠.(웃음)"

김현인 농민이 살아온 길은 범상치 않았다. 서울대 농대 원예학과 71학번으로 대학 졸업 후 안정된 직장 대신 전남의 청정지역을 찾아 귀농했다. 이후 40여 년간 화학비료와 농약을 안 쓰고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어왔다. 소득이 쏠쏠해 자녀 교육비를 벌 수 있던 과일농사를 짓던 중 우루과이라운드로 우리나라 쌀시장이 개방되자 '나라도 쌀을 지켜야겠다'며 쌀농사로 주 종목을 바꿨다.

이후 쌀농사의 중요성을 알리는 <논 벼 쌀>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곡성군 농민회 활동을 꾸준히 해오며 개방농정에 온 몸으로 맞서 온 아스팔트 농사꾼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무경운'에 도전하게 됐을까?

"근본으로 돌아가야겠다"
 

무경운을 위해 개량된 이앙기 모를 심는 식부 앞쪽에 긴 날들이 땅을 갈라준다. ⓒ 김현인

 
"전적으로 코로나19 때문에 결심하게 됐습니다."

40여 년간 유기농업으로 농사지으며 자연을 관찰해온 그의 눈에 이미 농사현장은 '벼 도열병' 같은 작물계의 '팬데믹'이 일상화돼 있었다. 왜 이런 병이 매년 찾아오는지 근본 원인을 생각해봤더니 '식물의 면역체계'가 무너졌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중장비로 논과 밭을 완전히 갈아엎고 화학농약을 살포하는 지금의 농사 방식은 땅 속 미생물을 없앴고, 그 결과 식물과 공생하며 면역체계를 돕던 땅 속 미생물 활동이 없어지면서 식물 면역체계가 무너지고 '팬데믹'을 불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작물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코로나19 같은 '팬데믹'이 찾아오는 것을 보며 김현인씨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아, 이거 갈 데까지 갔구나... 사람은 생태계에서 가장 멀리 있으면서 가장 폭넓게 면역체계를 갖고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사람까지 왔다는 것은 정말로 모든 것이 다 깨져서 흔히 이야기하는 지구의 여섯 번째 대멸종의 시대를 맞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당장 작년부터 일체 유기농과 관련된 처치마저 중단해버리고 방법을 찾았습니다."

이런 고민을 지난해 모내기를 마친 뒤부터 했다고 한다. 모를 심고 나면 온갖 벌레들과 병균이 달라붙기 마련. 병이 생겨날 징후가 보일 즈음 김현인씨는 '세상 끝났어' 하는 심정으로 유기농 약 처방마저 포기한 채 식물의 무너진 면역체계를 되살릴 근본 해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근본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땅을 건들지 않는 '무경운' 농사 방식을 떠올렸다고 한다.

"출발은 땅을 건들지 않는 '무경운'이어야 한다. 땅이 흡수해 저장하는 탄소가 공기 중에 떠있는 탄소보다 더 많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땅을 건들게 되면 그것들이 또 배출되어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이런 것도 있죠."

토양의 탄소흡수 저장능력을 위한 이유가 첫 번째였지만 김현인씨가 그보다 더 중시한 것은 흙 속 미생물 생태계의 복원이었다. 중장비로 땅을 갈아엎는 지금의 농사 방식이 흙 속 미생물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40년 차 농부는 생생하게 표현했다.

"트랙터 무게가 보통 2~3톤 되는데 그 무게에 의해서 작물이 크는 작토층(지표에서 20~30센티미터)을 제외하고 그 아래 땅은 완전히 돌덩이처럼 돼요. 트랙터 무게로, 미생물이 완전히 살 수 없을 만큼. 더구나 고속의 로터리가 지나가면서 나오는 마찰 열, 소음, 진동, 이런 것에 의해서 작토층 외에는 거의 미생물이 없다고 할 정도죠."

이런 미생물 생태계의 파괴를 제자리로 되돌릴 수 있는 게 무경운이라는 것이다. 그는 무경운의 장점 몇 가지를 열거했다. 우선 땅 속 미생물 생태계가 빠른 속도로 회복될 뿐 아니라 미생물의 사체가 쌓이며 최고의 거름이 되고, 트랙터 같은 중장비 농기계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농가부채 문제를 덜 발생시킬 수 있으며, 더구나 기계로 인해 사라져버린 우리 농촌의 문화를 조금씩이나마 되살리는 의미도 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모 심는다고 '못밥'(모내기하면서 먹던 밥) 같은 게 있었지만 지금은 기계가 해버리니까 기계한테 맡겨버리고 들녘에 기계소음 말고는 남는 것이 없죠. 노래가 사라지고 대화가 사라지고...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대화가 사라지고 문화의 양상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들까지 그 참 저 참 생각하면서 무경운은 반드시 해야 하는, 거부할 수 없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아주 기초적인 것이 되겠구나..."

"코로나로 신음하는 국민들에게 '답'을 제시해보자"
 

곡성군 농민들이 만든 웹포스터 무경운 모내기 일시를 알리며 주변의 따뜻한 관심을 호소했다. ⓒ 김현인


김현인씨는 무경운의 대상으로 우선 '쌀농사'를 짚었다. 밭농사보다는 논농사에서 무경운이 훨씬 쉽다는 판단, 그리고 우리나라 쌀농사에만 무경운이 적용돼도 탄소배출의 상당량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벼농사에서 무경운은 특히 밭작물보다는 훨씬 용이합니다. 모내기 딱 한 번만 하고 나면 기계 들어갈 일이, 땅을 건들 일이 없죠. 나중에 수확할 때 콤바인을 쓴다 하더라도 콤바인은 (물론 무게는 있지만) 한번 훑고 지나가는 거니까. 더구나 농촌진흥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농업부문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약 19% 정도를 바로 줄일 수 있는 걸로 그렇게 보거든요.

(논에서만?) 예. (대단하네요.) 그렇죠. 뿐만 아니라 벼 자체가 산소발생이 굉장히 많은 작물이지 않습니까. 아마존 밀림보다 2배가량 많은 산소를 발생한다고 하는데, 벼는 다른 작물보다도 산출되는 곡물량 대비 거름 요구량도 훨씬 적습니다. 산소는 많이 뿜어내고 탄소는 많이 잡아들이고, 이런저런 것까지 생각한다면 논농사야말로 무경운 시범을 보이기에 가장 좋은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심을 굳히고 겨우내 실무적인 준비를 해온 김현인씨는 올해 초 곡성군 농민회원들 모두가 모이는 '농민회 총회'에서 열변을 토했다. 농민운동이 앞장서서 코로나19로 신음하는 국민들에게 '답'을 제시해보자고.

"그동안 농민회가 데모만 하고 다닌다는 평을 많이 들었는데 기본적으로 우리는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민들이다. 농민회가 자기 이익만 챙기는 이익집단이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는 판에 팬데믹 코로나19를 만나서 우리 제자리를 찾아서, 온 국민이 신음하고 있는 이걸 해결하는 데 있어 뭔가 답을 해야 하지 않느냐, 그러면서 제안을 했어요. 무경운을 하자고."

그의 발언은 농민들의 가슴을 흔들었고, 즉시 십여 명의 농민이 무경운 모내기에 뜻을 모았다. 그러나 모내기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자 네 명만 남았다. 수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방식이라는 현실적인 걱정이 있었던 거다. 그래서 더 사람들의 눈과 귀가 무경운 모내기에 쏠렸나 보다. 그들이 모내기하던 날, 많은 농민들이 구경하러 나왔다. 결과는 어땠을까?

절반의 성공이었다. 무경운을 위해 개량한 이앙기는 모가 심겨질 만큼의 땅을 착착 갈라줬지만, 일부 엉뚱한 위치의 땅을 가르기도 하고 힘이 달리기도 했다. 때문에 중간중간 제대로 심겨지지 않은 '뜬 모'가 발생했고 농민들은 모내기 이후 하루 이틀간 손으로 '뜬 모'를 바로 심는 고된 수작업을 해야 했다.

김현인씨는 이를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했다. 실패 속에서도 기계의 어떤 부분을 바로잡으면 될지 문제를 명확히 인식했다는 점 때문이다.

"펀드 하나 만들어주시죠"
 

전남 곡성군 죽고면 신풍리에서 무경운 모내기는 4농가 5620m²(1700평)에 걸쳐 시행됐다. ⓒ 김현인

 
"이것만 개선하면 되겠다. 첫 번째는 지금 땅을 갈라주는 부분의 위치가 잘못되어있어요. 땅을 갈라줘야 하는데 엄한 데를 갈라주는 게 문제죠. 그리고 출력이 약해요. 약간 더 심각한 문제인데 엔진을 조금 더 큰 걸 쓰면 될 것 같은데, 엔진을 바꾼다는 것은 기계 전체의 미션이라든지 다 영향이 있기 때문에 이건 엄청난 문제가 되는 거죠.(웃음)"

그동안 무경운 농사에 쓰이는 농기계는 철저히 개인의 영역이었다. 농기계 회사 어디에서도 개발하지 않았고 국가 연구기관 또한 최근 들어서야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고령화된 농촌 현실에서 손으로 모를 심을 수도 없고, 무경운 이앙기를 구해보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던 농민들은 우리나라 무경운 농사 연구자 1호인 양승구 박사가 개발했던 무경운 이앙기를 수소문 끝에 만나게 됐다.

양승구 박사가 전남 농업기술원에 재직하던 시절 개발한 이 기계는 그러나 양 박사가 퇴직한 뒤 어떤 지원도 없이 철저히 개인적 차원에서 개량되어 왔기에 농사현장에 실전 적용하기에는 미흡할 뿐 아니라 문제점을 알면서도 바로잡는 속도도 느렸다. 그래서 문제점을 발견한 김현인씨는 올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돈을 모아서 농기계 개량에 투자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기계를 어떻든 다시 개량해서 만드는 것이 올해 최대의 목표예요.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돈을 만들어야겠어요.(웃음)"

이렇게 환경 기여도가 큰 기계를 왜 개인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개량해야 하는지 답답했다. 그래서 마지막 질문으로 심정을 물어봤다. 모내기가 끝난 뒤 뜬 모를 손으로 일일이 심을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그랬더니 당장 문학작품에 써도 좋을 만큼의 답이 들려왔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다 비애가 있습니다. 사회 경제적으로 천대받아 온 것, 그리고 그동안 농민들이 농업정책과 관계되어 데모도 많이 하고 죽기도 많이 죽었잖습니까? 그런 저런 것들로 인해 비애가 있는데, 그런 비애 속에서 꿈이 싹튼다는 생각으로 모떼기(손으로 뜬 모를 심는 작업)를 했습니다."

김현인씨는 기계의 문제점만 보완하면 우리나라 전체 농민들이 무경운으로 쌀농사 짓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말했다. 농민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이앙기에 '무경운 장치'만 부착하면 되기에 가격 부담도 적고, 제초나 수량감소의 문제도 보완책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남은 것은 올해 시연에서 드러난 기계의 문제점을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극복하느냐 하는 '개발'의 문제. 그러나 이것이 과연 개인의 영역인가 하는 강한 의문이 든다. 기자에게도 '펀드 하나 만들어주시죠'라며 간절한 심정을 피력한 70세 농부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인터뷰를 마치고 들녘으로 돌아갔다.   
덧붙이는 글 김현인 농민은 자신의 얼굴이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무경운을 한 것이 아니라며 얼굴 공개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혀왔습니다.
#무경운 #모내기 #탄소중립 #기후위기 #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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