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지지' 붕괴된 대통령에 자비란 없다

[게릴라칼럼] 여전히 고집불통인 박 대통령, '민의' 말하기 전에 총선 결과를 보라

등록 2016.04.19 05:40수정 2016.04.19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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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오늘 입은 옷의 색깔은 녹색이었다. ⓒ 청와대


"흔한 말로 박 대통령이 누굴 적극적으로 민다고 해 보십시오. 민심이 따라가겠습니까? 아마 누구도 그렇게 해 주길 바라지 않을 거예요. 후보 될 사람도."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그야말로 처절한 직격탄을 날렸다.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을 지냈던 그는 18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한 전화 인터뷰를 통해서 박근혜 대통령을 전방위적으로 비판했다.

특히 박 대통령이 반기문 UN 사무총장이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여권 대선후보로 밀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런 가운데 "박 대통령이 누구 찍으면 오히려 그 사람은 안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세요"라는 김현정 앵커의 질문에 윤여준 전 장관은 이렇게 답했다. 

"그건 대통령 후보가 누가 되느냐, 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국가를 이끌어갈 것이냐 하는 것에 달렸겠지만, 어차피 박 대통령은 차기 대통령 후보가 만들어지고 선출되는 과정에 개입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허망한 꿈이에요. 역대 대통령들이 다 그 생각을 했는데. 그게 다 번번이 실패하고 부작용을 일으키는 걸 뻔히 보면서도 다 그 길로 가더라고요. 자기는 다르다는 착각 때문에 그런 것인데, 박 대통령은 제발 그런 착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총선 결과에 대해서도 윤 전 장관의 평가는 혹독했다. 윤 전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비민주적 통치 방식에 대한 심판 성격"이라고 한마디로 정리한 후 이렇게 덧붙였다.

"박 대통령의 비민주적 리더십에 대한 심판이라고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박 대통령이 집권 3년 동안에 시종일관 보여준 것이 군림하되 통치하지 못하는 모습이었어요. 마치 대통령은 지시하고 호통치는 것으로 책임을 다하는 것 같이 인식하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거든요. 그러니까 이번 총선 결과는 민심이 민주주의를 빨리 복원하라 하고 명령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됩니다."

'민의' 운운하며 딴청 피운 박 대통령 


그렇다면, 18일 박근혜 대통령은 총선 이후 처음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 자리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반성과 전망을 내놓았을까. 그럴 리가. 윤 전 장관은 "아마 반응을 안 내놓은 건 충격 때문이었겠죠. 이런 결과를 전혀 예상 못 했을 테니까요"라며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의도된 침묵을 풀이하기도 했다.

예상이 맞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충격은 훨씬 큰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혹시나'는 결국 '역시나'로 끝나 버렸다. 사과나 반성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공개 발언 시간 중 총선 결과에 할애한 시간은 1분이 채 안 됐다고 한다.

"이번 선거의 결과는 국민의 민의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국민의 민의를 겸허히 받들어서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민생에 두고 사명감으로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마무리하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한다. 20대 국회가 민생과 경제에 매진하는, 일하는 국회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정부도 새롭게 출범하는 국회와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것이다."

20대 총선 결과에 대한 언급은 이게 전부였다. 반성과는 담을 쌓은 듯한 박근혜 대통령은 여당의 참패에 대해 "민의를 받아들이겠다"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 이후엔 "민생과 경제"와 같은 앵무새 같은 반복이 이어진 것이다.

이후 "일자리 대책과 노동개혁"을 강조한 뒤, 아니나 다를까 "북한의 도발"을 언급하는 딴소리를 이어갔다. 어찌 보면 애처로울 지경이다. 종종 호통을 치던 모습과 달리 한껏 발톱은 숨긴 모습이랄까.

야당의 반발이 이어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총선 이후 첫 발언이어서 기대했지만 단 한 마디의 반성도 없었다"고 했다. 국민의당 역시 "국민이 피부로 체감할 정도로 반성하고 변화하지 않는 이상 국회의 협조도 경제 활성화도 어려울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소위 '진박'을 제외한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 역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최초로 붕괴된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청와대


"그러니까 트루먼 대통령은 집무실에 'The buck stops here' 이런 문구를 걸어놨다고 하지 않습니까?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는 거죠. 지도자는 권한을 행사하는 동시에 책임을 지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지도자는 모든 책임을 밑으로 돌리고 있어요. 지도자가 책임지지 않으면 아무도 소신껏 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 정부가 성공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우리 지도자가 권력자가 아니라 책임자가 될 때 저는 일이 풀리기 시작한다고 봅니다."

18일 오전,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한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의 일성이다. 정 의원이 미국의 33대 대통령 트루먼 대통령의 좌우명을 소개하기도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이에 화답할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평소 여론조사 결과를 그리도 중시한다는 박 대통령에게 4.13 총선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를 소개할 차례다.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에 따르면, 지난 14~15일 총선 직후 이틀간 1012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취임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긍정 평가는 총선 전인 한 주 전보다 무려 8.1% 포인트 하락한 31.5%였다. 민심이 심판한 총선 결과를 반영하듯 박 대통령이 그리도 신경 쓴다는 여론조사까지 폭락한 것이다.

부정 평가 역시 62.3%를 기록해 7.8% 포인트가 올랐다. 리얼미터는 이 역시 취임 후 부정평가가 가장 높았던 2015년 2월 1주차와 동률이라고 밝혔다. 30.8%라는 긍정과 부정의 격차 역시 취임 후 가장 큰 폭이다. '책임지지 않는 무능한 대통령'에게 걸맞은 여론조사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래도 반성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 이래도 별일 아니라는 듯 계속 딴청을 피울 셈인가. 아니면, 심각한 총선 결과로 인해 받은 충격을 또다시 국민들이 위로해 줘야 하나.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2주기 추모 행사에 참석은 물론 그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세월호 후속 대책으로 내놓은 '국민안전의 날'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굳이 붉은색 옷 걸치고 '선거 개입'까지 의기양양 일삼았던 박 대통령 아니었던가.

세월호 2주기는 왜 '나 몰라라' 했을까

"'너희들 그까짓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겪은 고통에 비하면, 너흰 몰라서 그렇지 나는 그것보다 더 큰 고통을 겪었고, 그걸 혼자서 다 이기고 여기까지 왔어.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이런 마음이었을 거란 말이죠. 그러니까 트라우마가 치료되지 않으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어요. 전혀 감정이입이 안 돼요.

왜냐하면 그 끔찍한 고통에 계속 매몰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고통에 마음의 시점이 이동하질 않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람한테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죠. 근데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일단 1950년도 한국전쟁을 겪으며 온 국민이 트라우마 환자인 거예요. 그거 한 번도 제대로 치료한 적 없어요."

세월호 참사 1주기에 맞춰 발간된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에서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 박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트라우마를 이렇게 설명했다. '어릴 적 양친을 모두 끔찍한 사고로 잃고, 18년간 홀로 '와신상담'했다는 박근혜 대통령이 치료하지 못한 트라우마로 인해 공감능력을 잃었다'는 진단인 셈이다.

윤 전 장관의 예측대로, 박 대통령이 이번 총선 결과에 받은 충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은 안 된다. 아무리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해도 '16년 만의 여소야대' 정국의 현실과 심각함은 제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투표로 심판한 민심이 원하는 민생경제를 비롯해 국정교과서 폐기, 노동 5법 철폐,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 등을 못 이기는 척 정상적으로 되돌릴 수 있지 않겠나. 아마도 계속 고집을 피운다면, 더 큰 충격을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대통령이 남은 임기를 별 탈 없이 보내기 위해서라도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한 더 큰 제스추어가 필요하다. '콘크리트 지지율'이 무너진 대통령에게 더이상 자비란 없다.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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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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