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영령 추모하는 아름다운 이팝나무 꽃

광주 5·18 민주묘지로 가는 도로변 3㎞에 심어진 이팝나무 가로수

등록 2015.05.13 12:11수정 2015.05.13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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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18민주묘지로 가는 길에 활짝 핀 이팝나무 꽃. 광주-담양 간 국도에서 묘지까지 3킬로미터에 걸쳐 이팝나무 가로수가 심어져 있다. ⓒ 이돈삼


5월로 접어들면서 남도의 이팝나무가 새하얀 꽃을 피웠다. 이팝나무가 줄지어 선 거리는 밤새 하얀 눈이 내렸는가 싶은 착각이 들 정도다. 하이얀 꽃 덕분에 거리가 밝아진 느낌이다. 하늘빛마저도 환해진 것 같다. 꽃을 바라보는 행인들의 마음을 밝혀주고 발걸음도 가볍게 해준다.


이팝나무 꽃이 활짝 피면 '명물'이 된 남도의 이팝나무가 떠오른다. 전남 순천시 승주읍 평중리에 있는 이팝나무는 천연기념물(제36호)로 지정돼 있다. 순천시 황전면 평촌리의 나무는 전라남도 기념물(제184호)로 지정됐다. 모두 수령 400여 년 된 나무들이다.

고불총림 장성 백양사의 쌍계루 앞에 있는 이팝나무도 떠오른다. 해마다 가을이면 단풍과 어우러져 한껏 멋스러움을 뽐내던 그 나무다. 고려 공민왕 때 각진국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둔 것이라고 전해진다. 각진국사는 백양사를 중창하고 천연기념물이 된 비자나무 숲을 조성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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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묘지로 가는 길. 이팝나무 꽃이 활짝 핀 도로변에 영령들을 추모하는 노란 리본이 걸려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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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묘지로 가는 길. 도로변 양쪽에 이팝나무가 하얀 꽃을 활짝 피웠다. 그 사이사이에 5·18 35주기 행사를 알리는 노란 펼침막이 걸려 있다. ⓒ 이돈삼


광주시 망월동 5·18민주묘지로 가는 길은 새로운 이팝나무 군락지다. 광주-담양 간 국도에서 5·18묘지를 거쳐 옛 망월묘역까지 3㎞의 도로변 양쪽에 이팝나무가 줄지어 심어져 있다. 도로변은 물론 주택가 골목까지도 이팝나무가 자라고 있다. 꽃도 하얗게 무리 지어 피었다.

이팝나무 꽃은 민주주의와 인권, 평등과 정의를 외치다 숨진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1980년 당시 광주시민들은 주먹밥을 나누면서도 결코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다. 자유와 평등세상을 부르짖었다. 이곳의 이팝나무 꽃이 5월 광주와 민주묘지를 상징하는 꽃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도 이런 연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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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 꽃. 조그마한 하얀 꽃이 네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흡사 쌀로 지은 밥알 같다. ⓒ 이돈삼


이팝나무 꽃은 옛날 배고픈 시절을 떠올려주는 나무다. 꽃의 생김새가 쌀밥처럼 생겼다고 해서 '쌀나무'로 불렸다. 꽃잎을 살펴보면 가느다랗게 네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꽃잎 한 갈래가 하얀 밥알 하나처럼 생겼다. 영락없이 쌀이고 쌀밥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 꽃이 활짝 피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듬성듬성 피거나 만개하지 않으면 농사철에 가뭄이나 흉년이 찾아올까 걱정했다. 선조들이 이팝나무 꽃이 만발하기를 바란 이유다. 풍년이 들어 배를 곯는 이웃이 없었으면 하는 소망을 이팝나무를 통해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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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활짝 핀 이팝나무 꽃. 하늘빛마저도 환하게 밝혀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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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핀 이팝나무 꽃. 흡사 쌀밥이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 이팝나무를 쌀나무로 부르는 이유다. ⓒ 이돈삼


이팝나무에 얽힌 이야기도 애틋하다. 이름이 '이밥나무'에서 변했다는 얘기가 있다. 옛날 쌀밥은 왕족이나 양반들만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한 마디로 이씨(李氏)들의 밥이었다. 벼슬을 해야만 이씨 임금이 내려주는 흰 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 쌀밥을 '이밥'이라 불렀다.

며느리와 시어머니에 얽힌 이야기도 있다. 옛날 어느 시골 마을에 한 며느리가 살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마음씨가 고약했다. 하루는 며느리가 집안의 큰 제사를 맞아 쌀밥을 짓게 되었다. 모처럼 쌀밥을 짓게 된 며느리는 걱정이 앞섰다. 혹시나 밥을 잘못 지어서 시어머니한테 야단을 맞을까봐 걱정된 탓이었다.

마음을 졸이던 며느리는 밥이 다 될 때쯤, 솥뚜껑을 열고 주걱에 밥알 몇 개를 떠서 씹어 보았다. 뜸이 제대로 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공교롭게도 그 순간 시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이 모습을 본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크게 야단쳤다. 며느리가 쌀밥을 몰래 먼저 먹었다고 오해를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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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묘지 입구에 핀 이팝나무 꽃. 주먹밥을 나누며 민주와 자유를 외친 영령들을 추모하고 있는 것 같다. ⓒ 이돈삼


자초지종을 설명할 겨를도 없이 야단을 맞은 며느리는 너무나 억울했다. 그 길로 집을 뛰쳐나가 뒷산에 목을 매고 죽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을사람들이 며느리의 시신을 거둬 양지바른 언덕에 묻어주었다.

이듬해 봄, 그 며느리의 무덤에서 나무 한 그루가 올라왔다. 그 나무는 쑥-쑥- 자라서 싹을 틔우더니 하얀 꽃을 피웠다. 그것도 한두 송이가 아니고 무더기로 피웠다. 그 꽃의 생김새가 이밥(쌀밥)을 닮았더라는 얘기다. 마을사람들은 쌀밥에 맺힌 한으로 죽은 며느리의 넋이 변해서 핀 꽃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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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밥을 나누며 민주와 인권, 정의와 평등을 외치다 스러져간 무명열사의 묘. 5·18 민주묘지 뒤쪽 옛 망월묘역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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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중항쟁 35주기를 앞둔 지난 12일 어린이들이 5월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묘역을 참배한 뒤 묘지를 걸어나오고 있다. ⓒ 이돈삼


5·18민중항쟁 35주기를 앞둔 지난 12일. 5월 영령들이 잠든 5·18묘지에 참배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묘지로 가는 길목의 이팝나무 가로수 사이사이에는 추모행사를 알리는 펼침막이 펄럭이고 있다. 영령들을 추모하는 노란 리본도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영령들의 넋을 기리러 가는 발걸음이 가벼운 이유다.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이팝나무 꽃이지만, 5·18민주묘지로 가는 길을 환하게 밝혀준다. 주먹밥을 나누며 민주와 인권, 자주와 정의, 평등의 세상을 외쳤던 영령들의 넋이 이팝나무 꽃으로 되살아난 것만 같다. 하얀 이팝나무 꽃과 광주 5·18 민주묘지가 하나로 엮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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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중항쟁 35주기를 앞둔 지난 12일 5월 영령들을 참배한 어린이들이 노란 리본에 추모의 글을 쓰고 있다. ⓒ 이돈삼


#5·18민주묘지 #5·18민중항쟁 #이팝나무 #이팝꽃 #망월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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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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