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춘화도 보고 왕인박사도 만나고

국립공원 월출산 자락 따라가는 ‘영암 왕인문화체험길’

등록 2014.01.09 21:45수정 2014.01.09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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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인박사는 월출산 자락, 전남 영암에서 태어났다. 논어와 천자문을 갖고 도예가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아스카 문화를 꽃피웠다. 새해를 맞아 그의 큰 발자국을 따라간다. 지난 1일 왕인문화체험길이다.

 

길은 월출산 기찬랜드에서 시작된다. 기찬랜드는 월출산 맥반수를 이용해 만든 인공 풀장이다. 계곡에 조성된 다양한 풀로 여름철이면 많은 피서객들을 불러들였던 곳이다. 입구에 이 고장 출신의 가수 하춘화의 '영암아리랑'과 '월출산연가' 노래비가 새워져 있다.

 

노래비를 보고 기찬랜드를 따라간다. 물놀이장을 오른편에 끼고 숲길과 나무데크 길이 나 있다. 길섶에 명품 나무들이 즐비하다. 곰솔과 노간주나무, 졸참나무, 노각나무가 보인다. 소나무와 밤나무, 아까시나무, 산벚나무도 많다. 고추나무과의 말오줌때, 차나무과의 사스레피나무도 있다. 사스레피나무의 검붉은 열매가 눈길을 끈다.

 


 


가야금 산조의 창시자인 김창조 선생이 가야금을 즐겨 연주했다는 깨금바위를 지나니 산자락에 기대 선 바위가 보인다. 지난 여름 웅장한 폭포수를 쏟아냈던 용추폭포다. 겨울가뭄으로 물길은 멈췄다. 하지만 맑은 물이 떨어져 폭포를 이루는 모습을 상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구름이나 안개 자욱한 날엔 운치도 더 있겠다.

 

기찬랜드로 다시 나와 왕인문화체험길로 들어선다. 돌담과 어우러진 빨간색 열매가 시선을 유혹한다. 겨울에 빛나는 파라칸사스의 열매다. 나그네의 마음이 금세 황홀해진다. 발길도 한참 머문다.

 

길은 여기서 왕인박사유적지 쪽으로 이어진다. 월출산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들길과 마을길을 지나니 대동제와 만난다. 월출산이 부둥켜안고 있는 저수지다. 그 품세가 다소곳하다. 저수지 물속에 월출산의 능선이 고스란히 들어앉아 있다. 정자도 물속에 오롯이 비친다. 저수지가 그려낸 수채화 한 폭이다. 반영의 아름다움이다.

 


 


제방에 놓인 나무데크를 지나니 숲속 오솔길과 만난다. 월출산이 내어준 숲길이다. 자갈 깔린 길인가 싶더니 바로 흙길이다. 길도 잘 다듬어져 있다. 길에 낙엽이 널브러져 있다. 덕분에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감촉이 푹신하다.

 

한동안 이어지던 오솔길이 임도로 연결된다. 서너 명이 나란히 걸어도 좋을 만큼 넓다. 아낙네의 허리라인처럼 구부러진 길도 매혹적이다. 주변 풍광도 멋스럽다. 왼쪽으로 이어지는 월출산의 형세가 눈을 한시도 떼어놓을 수 없게 만든다.

 

월출산의 기(氣)를 받은 덕분인지 발걸음도 가뿐하다. 길옆의 논두렁과 밭두렁도 넉넉하다. 하늘하늘 걷기에 좋다. 호동마을로 가는 길에서 코끝을 긴장시켰던 축분 냄새만 없다면 더 없이 좋겠다.

 


 


도선국사의 출가 성지로 알려진 월암사터와 월암마을을 지나 죽정마을 쪽으로 간다. 월출산과 어우러진 억새길이 아름답다. 누렇게 빛바랜 억새가 겨울바람까지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왕인박사의 흔적은 이 길의 끄트머리쯤에서 만난다. 수박등을 지나 도갑사로 가는 길을 가로질러 문산재(文山齋)로 간다. 산길을 올라서 만나는 문산재는 왕인박사가 동료들과 함께 공부하고 담론을 나누던 곳이다. 문산재 뒤편에 석굴인 책굴(冊窟)도 있다. 박사가 혼자서 조용히 공부했다는 곳이다.

 

길은 문산재에서 산길을 따라 왕인박사유적지로 이어진다. 학의정을 지나니 금세 성천(聖泉)이다. 왕인박사가 마셨던 샘물이다. 왕인박사가 마신 물이라 생각하니 물맛이 별나다. 역사가 묻어나는 것 같다.

 


 


왕인박사의 숨결은 유적지 내 왕인사당과 영월관에도 배어있다. 잔디밭 한쪽에 서있는 천인천자문(千人千字文)도 의미가 깊다. 김대중 대통령 등 한국과 중국, 일본의 명사 1000명이 육필로 한 자씩 쓴 것을 석공이 돌에 새겼다. 월출산의 기암괴석을 배경으로 왕인박사 동상도 서 있다.

 

왕인박사유적지 앞 도로 건너편에 구림도기 가마터도 있다. 경사면을 이용해 아래에서 굴을 파고 들어간 반지하식 가마다. 황토로 그릇을 빚고 유약을 칠하는 시유도기(施釉陶器)를 굽던 통일신라 때의 가마터다. 이 일대가 한국도기문화의 중심지였다는 증표다. 그 흔적을 영암도기박물관에서 만난다.

 


가마터에서 가까운 상대포(上臺浦)도 역사적인 현장이다. 왕인박사가 일본으로 갈 때 배를 탔던 곳이다. 요즘 말로 국제항구였다. 하지만 오래 전 이뤄진 간척으로 옛 흔적을 찾긴 힘들다.

 

상대포가 자리하고 있는 구림마을의 역사도 깊다.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온 마을의 역사가 무려 2200년이나 된다. 늙은 느티나무와 청태 낀 기왓장의 정자, 돌담으로 둘러싸인 고택이 즐비하다. 400년 넘게 보존된 창녕 조씨 종택도 있다. 전통사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국도 목포요금소를 지나 죽림나들목에서 순천방면 남해고속국도를 탄다. 서영암나들목으로 나가 순천방면 2번국도를 타고 가다가 독천에서 819번지방도로 바꿔 타고 영암읍으로 간다. 영암읍내 월출산 기찬랜드가 왕인문화체험길의 출발지점이다.

2014.01.09 21:45 ⓒ 2014 OhmyNews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국도 목포요금소를 지나 죽림나들목에서 순천방면 남해고속국도를 탄다. 서영암나들목으로 나가 순천방면 2번국도를 타고 가다가 독천에서 819번지방도로 바꿔 타고 영암읍으로 간다. 영암읍내 월출산 기찬랜드가 왕인문화체험길의 출발지점이다.
#왕인문화체험길 #녹색길 #대동제 #파라칸스키 #영암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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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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