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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즈 입고 부끄러웠던 발레리노, '호두왕자' 되다

[인터뷰] 국립발레단 '호두까기인형' 주연 허서명 "발레는 두부를 집는 것과 같아요"

13.12.13 16:33최종업데이트13.12.1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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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서명 발레리노 지방공연데뷔 사진, 김리회 발레리나와 파트너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 국립발레단


2013 연말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국립발레단 <호두까기 인형>(18일~25일, 예술의전당)에는 새로운 신성 발레리노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12월 20일, <호두까기 인형> 호두왕자 역에 발탁된 허서명(23)이 바로 그 주인공. 이동훈, 이영철, 정영재 등 유명 남자 무용수들 사이에서 허서명이란 이름에는 '깜짝 발탁'이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유년시절 누나와 함께 한국무용을 배웠던 허서명은 "발레를 하지 않으면 아깝다"는 발레 선생님의 조언으로 꿈의 진로를 바꿨다. 하지만 선화예고를 거쳐 세종대에서 착실히 무용수의 꿈을 키워가던 허서명은 사고로 아버지를 여의는 인생의 큰 슬픔을 맞기도 했다.

갑작스레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허서명은 발레리노의 꿈을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주변의 위로와 격려 속, 다시 무용에 대한 여정을 시작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데미안>(헤르만 헤세)의 구절처럼, 허서명의 발레 세계는 그렇게 다시 태어났다.

숱한 연습 끝에 국립발레단에서의 첫 주연이라는 기회가 찾아왔다. 허서명은 "다른 왕자와 다른 신선함과 처음 임하는 사람의 패기"로 연기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꿈을 향한 발레리노의 목표가 다부졌다. 지난 9일 국립발레단 발레리노 허서명을 서면 인터뷰했다.

올해 입단해 호두왕자 캐스팅...팬이었던 김리회와 호흡

국립발레단 허서명 발레리노 ⓒ 국립발레단


"올해 입단한 신단원이기 때문에 이렇게 큰 배역이 나올지 몰랐습니다. 처음 캐스팅이 확정됐을 때에는 마냥 좋았지만 공연에 임박해 가면 갈수록 심리적인 부담감이 커져갑니다."

2013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신입 발레리노 허서명은 올해 국립발레단의 마지막 공연에서 주연인 호두왕자 역에 캐스팅됐다. 허서명 본인조차 전혀 예상치 못한 깜짝 발탁이었다. 그렇기에 '부담감'도 있지만, 허서명은 "다른 왕자와 다른 신선함과 처음 임하는 사람의 패기를 갖고 연기에 임하겠다"고 신입 발레리노다운 당찬 포부를 밝혔다.

허서명 발레리노는 국립발레단에서 맡은 첫 주역 공연을 잘 소화하기 위해 온 정성을 작품에 쏟고 있다. 식단과 휴식에 신경쓰며, 첫 공연을 소화할 체력을 기르고 있다. 밤 늦은 시간까지 연습은 기본이다.

"먼저 식단과 휴식에 가장 신중을 기울입니다. 기본 체력이 받쳐줘야 전막공연을 소화해 낼 수 있기 때문에 놀러 다니는 것은 꿈에도 꿀 수 없고 잠자는 시간만 빼면 호두왕자 생각뿐입니다. 예전에는 리허설이 끝나면 곧장 집에 가곤 했는데 요즘은 리허설이 끝나도 그날 받은 지적에 대한 연습과 간단한 운동을 하고 귀가를 합니다."

"학생 때 팬이었던 리회누나와 같이 춤 춘다는 게 너무 행복합니다. 외모와 신체가 아름다워서 같이 춤추면서도 보고 있으면 흐뭇해집니다." ⓒ 국립발레단


첫 공연의 긴장감 속, 든든한 것은 공연 파트너인 김리회의 존재다. 학창 시절 허서명 발레리노는 김리회 발레리나의 팬이기도 했기에, 인연은 더욱 값지다. 허서명에게 있어 김리회는 '안심하고 연기할 수 있는 파트너'이다.

"학생 때 팬이었던 리회누나와 같이 춤 춘다는 게 너무 행복합니다. 외모와 신체가 아름다워서 같이 춤추면서도 보고 있으면 흐뭇해집니다. 특히 큰 리프트 동작에서, 리회누나가 겁이 없어서 믿고 들 수 있고, 제가 실수를 해도 커버해 주는 누나의 노련함 덕분에 안심이 됩니다.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호두까기 인형> 첫 주역 무대의 긴장감, 하지만 그가 자신 인생의 슬로건으로 건 한 구절 속에는 당당함이 엿보였다. <데미안>(헤르만 헤세)의 문장이었다. 그것은 새 무대에 임하는를 준비하는 허서명의 마음이기도 하리라.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한다.' <데미안>(헤르만 헤세).

인생의 아픔...'격려와 용기' 속에 성장했다

"제가 처음 접한 발레는 '남성적이지 못하고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타이즈를 입는다는 것에 괴리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발레를 처음 접하는 남자 아이들은 모두 저와 같은 생각 아닐까요?" ⓒ 국립발레단


허서명에게 춤과의 첫 인연은 '한국무용'이다. 유년시절 누나를 따라 한국무용을 배운 그는 예술중학교까지 입학했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허서명 발레리노에게 '발레'라는 낯선 세계가 찾아왔다. 그 낯설음 때문일까. 처음에는 괴리감도 있었다.

"누나가 먼저 한국무용 전공을 해서 같이 한국무용 학원을 다니게 됐습니다. 한국무용으로 예중을 다니다가 발레선생님께서 발레를 하지 않으면 아깝다고 계속 설득하셔서 중3때 발레로 전과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접한 발레는 '남성적이지 못하고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타이즈를 입는다는 것에 괴리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발레를 처음 접하는 남자 아이들은 모두 저와 같은 생각 아닐까요?

하지만 발레를 통해 그는 좋은 스승, 좋은 친구를 만났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허서명이 최고의 발레리노를 꿈꾸며 달려나가는 원동력이 됐다. 그는 좋은 스승 밑에서 발레 기술을 배우며 성장했고, 단짝 친구와 함께 연습을 통해 꿈을 키웠다.

"좋은 제자는 좋은 선생이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중학교 시절 저에게 매일 발레를 하라며 손편지와 발레 비디오 테이프를 전해준 성하라 선생님 덕분에 발레를 시작하게 되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다듬어지지 않았던 제 춤을 많이 발전시켜주신 김준범 선생님 덕분에 춤이 많이 성숙해졌습니다. 당시 제 친구 김하림양(현 국립발레단 단원)과 같이 무용실에서 자고 먹고 연습하며 꿈을 키우게 됐습니다. 그 덕분에 동아무용콩쿠르 학생부 은상을 수상하게 됐습니다."

허서명 발레리노 & 김리회 발레리나 ⓒ 국립발레단


이후 허서명 발레리노는 세종대에 입학했다. 그에게는 대학시절, 특별히 기억되는 공연 하나가 있다. 루마니아에서 했던 <몽유도원도>라는 공연이었다.

"대학시절 학교에서 1년에 한 번씩 해외공연을 갔는데, 루마니아에서 했던 야외무대 공연이 기억에 남습니다. <몽유도원도>라는 작품에 주역급인 '휘'라는 캐릭터로 공연을 했었는데 분장을 하고 나오니 셀 수 없이 많은 관객들이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제 생에 가장 많은 관객 앞에서 춤을 췄던 것 같아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대학교 졸업 시기, 허서명에게는 인생의 큰 아픔이 찾아온다. 그 일은 단 하나의 꿈이었던 발레리노의 꿈을 흔들리게 했다.

"한국에서 발레리노의 삶은 고달픕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가야하는 군대가 문제인데, 콩쿠르에 입상을 해야만 병역특례가 인정됩니다. 대학교 4학년때, 특례를 받기 위해 대회를 준비하던 도중 아버지께서 사고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힘든 일에 힘든 일이 겹치고 겹치면서 가장으로서 집안일을 하기 위해 발레를 그만 둘 마음을 먹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운명, 갑작스레 가장이 된 허서명은 생계를 위해 발레리노를 그만 둘 마음을 먹는다. 하지만 스승(서차영 교수)의 위로와 격려 속 용기를 얻고 다시금 발레리노의 꿈을 향해 나아갔다. 슬픔과 시련을 견딘 발레리노, 허서명의 춤은 인생의 아픔을 극복하고 그렇게 다시 태어났다.

"발레를 한다는 것은 젓가락으로 두부를 집는 것과 같다"

허서명 발레리노, 김리회 발레리나 지방공연. ⓒ 국립발레단


인생의 어둠같던 순간이 빛나면, 빛나는 순간도 찾아온다. 허서명 발레리노는 발레를 하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선화예술고등학교 교생 실습을 나갔던 추억을 꼽았다.

저의 모교인 선화예술고등학교에 교생 실습을 나갔을 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한때 형, 오빠라 부르던 후배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저를 따랐을때 큰 보람을 느끼고 행복했습니다. 제가 열심히 해서 잘 돼야 저의 후배들도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이 크게 들었습니다."

허서명 발레리노는 발레계에 자신의 롤 모델로 삼은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장운규(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안무가다. 그는 라이벌로는 이동훈 발레리노(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를 꼽았다. 이유가 궁금했다.

"저의 발레계의 롤모델은 장운규 선생님입니다. 저는 발레단 내의 단원들이 인정하는 무용수가 되고 싶습니다. 그런 무용수 중 한 분이 장운규 선생님 이신데요. 춤 뿐만 아니라 무용실 안에서의 매너와 선생님의 예술가적인 스타일을 닮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의 라이벌은 같은 학교 출신 선배님이신 이동훈씨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다음 질문을 이었다. 허서명 발레리노에게 춤이란 어떤 의미일까? 난해한 질문에 그는 "저에게 발레를 한다는 것은 젓가락으로 두부를 집는 것과 같다"며 "잠시라도 다른 생각을 하면 부서져 버리는 것과 그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 닮았다"고 답했다.

부서지지 않기 위해, 신중하고 소중하게 만들어가는 꿈 발레, 허서명 발레리노는 2013년 12월 20일 <호두까기 인형>에서 평생 잊지 못할 국립발레단 주역 무대에 선다. 그가 20대의 목표로 잡은 "해외의 큰 발레단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꿈의 첫 시작인 셈이다. 그는 자신의 국립발레단 첫 주연 무대를 찾아올 관객들에게 기분 좋은 인사를 건넸다.

"(연인들이 많이 무대를 찾아올 텐데) 우선 부럽네요... 공연을 보면서 추운 겨울날을 따뜻하고, 로멘틱하게 보내셨으면 합니다."

백조의호수 허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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