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경비일이나? 이런 거 알면 절대 못한다

'감시·단속적 근로자에 관한 법률'로 고통 받는 학교 야간 경비 노동자 노인들

등록 2013.07.18 15:01수정 2013.07.1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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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학교 야간 경비로 일하는 어르신 두 분이 지난 5월 노년유니온 사무실로 찾아와 부당한 노동 현실에 대해 토로했습니다. 시간은 2개월여가 지났지만 별반 달라지지 않는 현실을 노년유니온 고현종 사무국장이 글로 보내왔습니다. 대구 지역의 한 사례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열악한 현실을 알리는 것도 의미가 있어 싣습니다. [편집자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22살의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하면서 절규했다. 1970년 당시 평화시장 노동자들은 오전 8시 30부터 오후 10시 30분까지 14시간을 일했다. 휴일은 매달 첫째, 셋째 일요일 이틀 쉬었다. 이런 근로환경을 개선시켜줄 것을, 그리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노동부에 여러 차례 냈지만,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매번 무시만 당했던 것이 그 당시 노동자들의 현실이었다.

그로부터 43년이 지난 오늘 1970년 당시보다도 더 장시간 노동에 연중 무휴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전태일이 살아있다면 비슷한 또래나 형 뻘이 되는 사람들이다. 올해 4월 노인노동조합 노년유니온이 설립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 지난 5월 대구에서 한 걸음에 두 분이 달려오셨다. 배아무개(75) 어르신과 오아무개(66) 어르신은 인사가 끝나자마자 자신들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학교 안에는 비정규직 직종이 많아요. 직종별로 사람 수도 꽤 됩니다. 그러나 우리 야간경비들은 학교 당 1명 밖에 없어요. 나이도 대부분 70대입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들 문제가 잘 이슈화되질 않아요. 때 마침 노인노동조합(노년유니온)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노인의 노동과 관련한 문제를 대변할 조직이 없었어요.  대한노인회는 노동 문제에 관심이 없고 어버이연합은 정치 집단이잖아요. 노년유니온은 말 그대로 노인노동조합이니 우리 노인들 노동문제를 잘 대변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KTX를 타고 올라왔습니다."

자신들의 열악한 노동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 가닥 희망이 생겼다고 해서일까? 얼굴이 밝다.

"(학교 야간 경비는) 하루에 16시간 근무해요. 하지만 임금은 6시간에서 8시간 분 밖에 지급 받지 못해요. 나머지는 휴게시간이래요."

근무시간을 묻는 질문에 긴 한숨과 함께 배 어르신 말이 이어진다. 16시간을 근무하지만 임금은 8시간분만 받는다니 무슨말일까? 학교 야간경비원들은 오후 5시경에 출근해 다음날 오전 9시경에 퇴근한다. 출퇴근 시간만 계산하면 16시간이지만 중간에 끼는 밤 시간은 근무시간에서 빠진다. 일터에 있기는 하지만 일은 하지 않는 '휴게시간'이라는 것이다.


"일할 노인들 많으니 근무조건이 싫으면 그만두라는 말을 들을까 겁이나 노동조건에 대해서 건의할 엄두가 나지 않아요. 휴게시간을 마음대로 사용하기도 어려워요. 휴게시간 이용 자술서라는 것 때문에 그래요. 모든 학교 야간경비에 이런 제도가 있어요"라며 장탄식을 하신다.

"근로계약서에 따라서 휴게시간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음을 설명 및 권유를 받았으며, 휴게시간을 이용해 외출 및 자택으로 이동하기에 비용 및 교통에 대한 번거로움이 발생하여 본인 자의에 의하여 근무지에 설치되어 있는 휴게시설을 이용하여 휴식을 취하고 있음을 자술합니다…라고 씌여있고 여기에 도장을 찍어야 해요. 말이 자술서지 강제조항이지요. 동의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거든요."

너무도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오 어르신이 본인의 휴게시간 자술서 내용을 들려주셨다.

주 5일 수업에 늘어난 노동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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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권리 청소, 경비노동자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5월 21일 오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제4회 청소노동자 행진 선포 및 실천단 발족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조건 개선과 행복할 권리를 찾기 위해 각자의 요구사항을 적은 상자를 쌓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날 이들은 "그동안 청소노동자들이 유령처럼 취급되어 저임금과 고용불안,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며 일했다며 행복할 권리를 찾아 행진하겠다"고 선포했다. ⓒ 유성호



"학교에서 주 5일 수업이 시작되면서 근무시간은 주당 48시간이 늘어났어요. 평상시 근무시간은 오후 4시 30분에 근무에 들어가서 다음날 오전 8시 30분에 퇴근을 해요. 16시간을 근무하는 거죠. 근데, 주 5일수업으로 금요일 오후 4시 30분에 근무에 들어가면 토, 일요일을 꼬박 근무하고 월요일 아침 8시30분에 퇴근을 하게 됐어요.


한 번은 손주들이 그러는 거야. 할아버지 주 5일 수업 하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 하면서 안기는 거야. 근데 손주를 안은 손에 힘이 들어 가더라고. 근무시간이 늘어나 죽겠는데 좋아라 하니 나도 모르게 손아귀에 불끈 힘이 들어간 거지. '할아버지 아퍼'하는 소리에 내가 지금 뭔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왜 죄없는 손주가 미워지지 하고 생각하니 씁쓸해지더라고."

배 어르신은 손주들의 기쁨이 자기에게는 고통이 된다면서 쓴 웃음을 짓는다. 옆에 있던 오 어르신이 이어서 말을 건넨다.

"그렇다고 휴일근무수당, 연장근로수당이 지급되지도 않아요. 그냥 무급이에요. 총액으로 월 90만 원만 받아요. 토, 일요일에 명절연휴 3일이 끼는 날에는 한번 근무에 들어가면 명절연휴가 끝나는 6일 후에 퇴근하게 돼요. 연중 하루도 쉬지 못해요. 이때도 역시 수당은 없어요. 하루 쉬려고 하면 대체인력에 대한 인건비를 물어줘야 합니다. 평일에는 3만5000원, 주말과 휴일에는 6만5000원을 부담해야 해요. 우리 일당이 3만3000원 꼴인데 더 많은 금액을 공제한다는 것 말이 안 되잖아요. 나이가 많아 일을 구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자식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쉽지 않은 우리 노인네들 사정을 악용하는 거죠."

"명절에도 집에 갈 수 없으니 자식, 손주들이 세배하러 학교로 찾아왔어요. 3평 남짓한 공간이니 다 앉을 수 없어요. 한 명씩 세배를 받고 싸온 음식을 같이 먹자고 펼쳤는데, 공간이 부족하니 다들 서서 음식을 먹는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손주들만 빼고 자식들도 나도 울컥했지! 이렇게 학교에서 손주들에게 세배를 받은 것이 삼 년째입니다. 집에서 손주들에게 세배 받는 게 새해 소망입니다."

배 어르신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반쪽인간'을 생산하는 법률

"우리는 반쪽인간이야! 노동자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근로기준법이 있잖아. 근데 우리 학교 경비들은 감시, 속적 노동자라서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대상자래?"

눈가에 고였던 눈물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 자리에 한맺힌 듯한 눈빛으로 배 어르신 이야기가 계속됐다. 노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직종이 무엇이든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허나, 감시, 단속적 노동자는 예외이다. 최저임금의 90%만 줘도 합법이다. 휴일, 초과수당을 주지 않아도 합법이다. 주1회 휴일을 주지 않아도 합법이다. 16시간씩 노동을 시켜도 합법이다. 노동을 하고 보호받아야 할 법이 있으나, 부분적으로만 보호받고, 존재는 하되 온전하게 존재하지 않는 반쪽인간인 셈이다.

"감시, 단속적 근로자에 관한 법률 이게 디게 나쁜 법이야. 감시적 근로자라는 건 감시 업무를 하며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적은 업무에 종사하는 자래. 경비원, 물품감시원, 수위 등을 말해요. 단속적 근로자는 근로가 간헐적, 단속적으로 이루어져 휴게시간 또는 대기시간이 많은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래. 기계수리공, 보일러공, 학교당직대체요원 같은 사람을 말해요.

이 사람들에게 근로기준법 적용을 법 제63조 3호의 규정에 의한 감시 또는 단속적으로 근로에 종사하는 자로서 사용자가 노동부장관의 승인을 얻은 자에 대하여는 최저임금법을 일반근로자에 비하여 감액하여 적용할 수 있고, 근로기준법 63조에 따라 주휴일 부여, 연장근로가산수당, 휴일근로가산수당 지급 등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근로기준법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 한다고 되어 있어요."

오 어르신은 왜 감시, 단속적 근로자에 한해서 근로기준법이 적용 제외가 되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하신다.

"노동을 하면 다 노동자 아니야! 노동자면 근로기준법에 다 적용 대상이 되어야지. 법이 이렇게 사람을 차별해도 되는 거야.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했는데…."

적용제외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복지부에서 하는 노인일자리 중 시장형 사업이란 게 있다. 시장형 사업이란 '어르신에게 적합한 업종 중 소규모 창업 등을 통해 창출되는 일자리로서 사업비 또는 참여자 인건비를 일부 보충 지원하고 추가 사업소득으로 연중 운영하는 일자리'라고 정의한다. 소규모 창업을 하려면 사업자 등록을 해야 하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해야 한다.

이게 어렵다. 노인일자리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은 사회복지시설들이다. 비영리 사회복지시설에서 영리를 추구하는 사업자 등록증을 내기가 쉽지 않다. 어렵사리 냈더라도 사업소득이 충분치 않아서 최저임금을 위반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이래서 어떤 시설들은 아예 사업자 등록을 안 내고 시장형 사업을 하기도 한다. 빈번한 위법 사례를 막기 위해 사회복지사들이 복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에 건의했다. 복지 차원에서 하는 어르신 일자리 사업의 경우엔 노동법 적용 예외로 두자고.

그때마다 노동부는 "노동법,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를 둘 경우엔 너도 나도 법을 악용해 애초 법의 탄생 취지가 무색해집니다. 특히나 노동법, 근로기준법은 약자들을 위한 법이니 더 적용 제외 규정을 둬서는 안됩니다"라고 말한다. 복지차원에서 하는 어르신 일자리 사업도 노동법, 근로기준법에 반드시 적용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럼, 감시·단속적 근로자에 대해서 부분적인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노동자를 위해서? 용역업체 사장을 위해서?

나도 모르는 연차휴가

적용제외에 관한 사항 말고는 근로기준법을 적용해야 한다. 연차휴가는 당연히 적용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배 어르신과 오 어르신 모두 연차휴가를 받거나 써 본 적이 없다.

"어르신 연차휴가를 달라고 해 보셨어요?"

얘기를 듣다보니 답답해서 은근히 질책하듯 물었다. 놀란 눈으로 두손과 머리를 흔드신다.

"얼핏 연차휴가 이야길 비췄는데, 그러는 거야. 애초에 월급 총액을 정할 때 연차휴가 발생분까지 돈으로 계산해서 넣었다는 거야. 그러면서 싫으시면 그만 두세요. 일할 분 많아요! 하지 않겠어. 나한테 동의도 안 구하고 이러는 법이 어딨어."

다소 흥분하셨는지 격앙된 어조다.

"이웃 학교에 근무하는 김씨는 학교비정규직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잘렸어. 안 잘리려면 참는 수밖에 없지. 나이 먹은게 죄지. 젊어서 노후준비를 못한 게 죄지."

답답한 마음에 오 어르신은 지난해 혼자서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단다.

"연중 하루도 쉬지 못하는 건 인권침해다 생각하고 한 달에 2번만 쉬게 해 달라고 진정서를 냈는데 권익위원회는 교과부로 이첩시켜. 교육과학기술부는 딱한 사정은 알겠으나, 예산이 없어서 어렵다, 이러구 말어. 그리고 말미에 이러더라구, 그 나이에 일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속으로 그랬지. 니 부모한테도 그 따위 소릴 하나 보자!"

맨 마지막 말은 오 어르신에게 상처로 다가왔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큰 기대를 했지. 소득에 관계없이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 원씩 준다고 해서 찍었어. 왜냐고? 1년 내내 하루도 못 쉬는 학교 야간경비보다, 시간 나는 대로 폐지 줍고, 복지부에서 하는 노인일자리 사업에도 참여하면서 기초연금 20만원 받으면 일요일 날 쉬면서도 수입은 비슷할 것 같더라고."

오 어르신의 얼굴엔 실망한 기색이 만연하다.

"박근혜 대통령 덕에 일주일에 한 번은 쉴 줄 알았는데, 연중 무휴로 일하게 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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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유니온 등 복지·노인단체 회원들이 지난 2월 7일 오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공약 등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복지공약 성실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아직도 1970년대에 멈춰선 노동 현실

옆에 있던 배 어르신의 푸념이 이어졌다.

"자식들에게 올인하다보니 노후 준비할 겨를이 어딨어. 정년 퇴직 후에도 일을 해야 하는데 경비자리 얻으면 그게 최고의 노후대책이지 뭐."

정년퇴직을 앞둔 친구, 선배들과 노후대책 이야기할 때 마다 열에 아홉은 이런다. 그만큼 남자들에게 경비일은 어느새 전 국민적 노후 일자리가 되었다. 배 어르신, 오 어르신 이야길 듣고선 정년퇴직 후에 경비일을 하겠다는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감시, 단속적 근로자의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를 만든 사람들은 누구일까? 분명한 건 경비노동을 통해서 노후를 준비해야만 하는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배 어르신과 동료들의 요구사항은 이렇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유급휴가를 받고 싶어!"
"학교에 16시간 근무할 수 있어. 그러면 최소한 8시간만이라도 최저임금을 적용해 줬으면 해!"
"간접고용하지 말고 학교에서 직접 고용했으면 해!"

예산 문제로 요구를 다 들어주기 어렵다면, 우선 일주일에 '딱 하루'만 유급휴가를 달라고 간청하신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지 43년이 지난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친구, 형들이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라고 부르짖고, 일주일에 '딱 하루'만 쉬게 해달라고 애원할 줄이야. 1인당 국민소득이 2만5000달러에 달하는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노동 현실은 1970년에 멈춰 서 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고현종 기자는 노인노동조합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입니다.
#노년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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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세대에게 존경받는 노인이 되는게 꿈. 꿈을 실천하기 위해 노인들과 다양한 실험을 진행중인 남자. 세대간 연대를 위해 청년세대의 주거 안정, 생활지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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