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왜 목욕탕에서 삭발을 했을까

[서평] 수행자가 출가한 의미를 되새김하는 현진 스님의 <삭발하는 날>

등록 2013.03.25 10:57수정 2013.03.2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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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기만 했던 스님들 세상을 <삭발하는 날>에서 들여다 봤다. ⓒ 임윤수


제 일이지만 제 손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일컬을 때 쓰는 말, '중이 제 머리 깎는 거 봤어?'도 이젠 옛말이 됐다. 전동 바리캉(bariquant)이 대중화되고 안전면도기가 흔하게 판매되면서 제 머리를 혼자서 박박 깎는 삭발도 얼마든지 가능해졌다.

스님들과 일반인들이 모습에서 눈에 띄게 다른 점은 머리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일반인들의 머리 모양이 제각각이라면 스님들의 머리는 공통적으로 삭발을 한 박박 머리다. 일반인 중에도 삭발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일반인들이 하는 삭발은 스스로의 선택일 뿐이다. 하지만 스님들이 하는 삭발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삭발이야말로 출가수행자, 스님을 상징하는 표상이기 때문이다. 


스님들은 왜 머리를 깎고, 머리를 깎을 때마다 어떤 마음일까? 스님들이 공동으로 생활하고 있는 승가에서는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스님들의 일상은 어떨까? 날마다 염불이나 외고 기도만 할까? 쉽게 들여다 볼 수 없는 스님들의 세계는 궁금하기만한 미지의 세상이다.

스님들 사는 모습을 소소하게 들려주는 <삭발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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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하는 날> 표지 사진 ⓒ 담앤북스

현진 지음, 담앤북스 출판의 <삭발하는 날>이 스님들이 살아가는 세상, 스님들의 일상에 대한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 준다. 한마디 한마디에 의미를 두기 시작하면 점점 더 궁금해질 수도 있겠지만 '사람 사는 모습'이라는 눈높이로 보면 정말 소소한 이야기, 읽을거리가 두둑하게 들어 있는 이야기보따리다.

책에는 스님들이 공동으로 생활하는 대찰이나 선방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일들, 스님들이 머리를 깎는 일에서부터 빨래하고 풀을 먹이는 일, 스님들끼리 주고받는 우스갯소리, 출가한 수행자들이 생활하는 이야기 등이 잘 정리된 일기장처럼 차곡하다.    

종종 삭발한 머리에서 내 수행을 본다. 그래서 출가 본분사를 잊고 지낼 때면 소리 없이 자괴감이 일기도 한다. 수행자로서 머리를 깎는 일은 바로 자기를 챙기는 일이다. 그러므로 수행자의 머리가 까맣게 자라 있다는 건 그리 마음 개운한 일이 아니다. - <삭발하는 날> 112쪽


처음으로 혼자서 삭발을 시도한 장소는 공중목욕탕, 만행길에 들어간 대중탕에서 머리가 자란 내 모습이 구질구질하게 느껴져 용기를 내었던 게다. 목욕탕 수증기가 머리 밑을 눅눅하게 해 주기 때문에 비교적 삭발하기가 수월한 이점도 있다. - <삭발하는 날> 173쪽

비록 구도의 삶을 살고 있지만 스님들도 사람이고 생활인이다. 절제하고 또 절제하며 살지만 스님들 역시 먹고, 입고, 자고, 싸야만 산다. 먹기 위해서 김장을 담그고, 감자도 심는다. 좀 더 폼나게 입기 위해 손빨래를 해 빳빳하게 풀도 먹인다.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코도 곤다. 생로병사에 따른 고뇌도 하고 뒷이야기를 하듯 구전되는 스님들 이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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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의 삭발은 선택이 아니라 표상적 필수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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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 바리캉(bariquant)이 대중화되고 안전면도기가 흔하게 판매되면서 제 머리를 혼자서 박박 깎는 삭발도 얼마든지 가능해졌다. ⓒ 임윤수


직접 연애를 하는 것 보다 남의 연애담을 듣는 게 훨씬 더 실감나고 재미있을 때가 있다. <삭발하는 날>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들여다보는 스님들 세계가 그렇다. 속세에나 있을 법한 장난기 가득한 이야기, 재미있는 사건(?),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하는 섬뜩한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이어진다.

스님들 세계에서 사용되는 은어들

'샘'이나 '멘붕', '안습'이나 '행쇼'와 같은 시쳇말 뜻을 잘 모르면 가족끼리의 대화도 더듬거리거나 잘 통하지 않게 된다. 10대들을 좀 더 빠르고 폭 넓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바탕은 10대들끼리 사용하는 은어를 잘 알고 이해하는 것이 될 것이다.

스님들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스님들 세계를 좀 더 살갑게 이해하려면 스님들끼리 사용하는 은어를 아는 게 한 방법일 수도 있다. 어떤 집단에서 사용하는 용어나 은어야 말로 그들의 가치이자 소통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지대방 용어도 여러 가지다. 우리끼리 통하는 은어라고 할까. 화엄법회라 하면 꽤 거창한 듯하지만 사실은 화투 놀이를 일컫는 말이고, 와선법회臥禪法會라 하면 잠자는 일을 말한다. 갖가지 변수가 많은 '고스톱' 놀이를 화엄법회라 하여 무궁무진한 화엄세계에 비유한 게 익살스럽다. 계란을 삶은 감자라 하고 오징어를 오천사, 극장을 안과라고 표현하는 것도 재미있다. 고기를 질긴 나물, 술을 곡차라고 하는 말은 이미 세간에 널리 알려진 은어다. 단청 불사라는 말도 있다. 술을 마시는 일을 이르는데, 경허 스님의 일화에서 따온 말이다. - <삭발하는 날> 225쪽

채 1년이 되지 않은 지난해 5월, 스님들 도박사건이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을 때 조계종단에서 소임을 맡고 있는 스님이 '스님들의 화투는 놀이문화 중 일부'라는 표현을 써 사회적 반감을 야기시킨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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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고무신 또한 스님들 상징이 되기도 한다. ⓒ 임윤수


<삭발하는 날>은 현진 스님이 20년 전에 낸 수필집을 다시 갈무리해 낸 개정판이다. 이미 20년 전에도 스님들 세계에서는 화투 놀이가 화엄법회라고 불릴 만큼 보편화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거액의 돈이 오가는 도박이냐 아니냐는 분명하게 가름되어야 한다. 하지만 도박(화투 놀이)을 '놀이'로 표현한 것이 사회적 논란거리로 부상된 이면에는 스님들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은어가 갖는 소통의 한계, 승속 간에 놓인 언어적 단절이나 장벽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승가에서는 화투 놀이가 '화엄법회'라는 은어로 통용될 정도의 놀이라는 게 '샘'이나 '멘붕'이라는 시쳇말처럼 통용되는 표현이었다면 그 정도까지의 비난이나 반감은 없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스님'과 '중' 두 호칭 중 하나를 결정하는 건 결국 스님들 자신

머리 깎고 사는 우리를 부르는 호칭도 여러 가지다. 이제 '스님'이라는 말이 일반화되었지만 아직도 원색적인 감정이 담긴 경우에는 '중'이라는 말이 쉽게 튀어나온다. 스님은 높임말이고 중은 낮춤말로 아주 멸시하는 뜻이 담겨있다. '중'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귀에 거슬린다. 들으면 저도 모르게 발끈하게 될 때가 많다. 상대를 하찮게 보는 뉘앙스가 강해서이다. - <삭발하는 날> 227쪽

아주 이따금 왜 승려(스님)들 호칭에만 '님'자를 붙이느냐며 논쟁을 부추기는 사람이 없지 않다. 저자는 '스님'과 '중'이라는 호칭 사이의 차는 높이고 낮춤의 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두 호칭, '스님'과 '중' 중에서 어떤 호칭을 쓸지 결정하는 판결자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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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호칭 '스님'과 '중' 중 하나를 결정하는 건 결국 스님들 자신이다 ⓒ 임윤수


어떤 의도를 갖고 승가를 폄하하려는 특정 집단이나 불교에 배타적인 사람들이 아니라면 스님들 호칭을 결정하게 하는 건 결국 스님들 자신이다. 뭇사람들이 우러러보게끔 생활하는 구도자, 출가수행자 다운 삶을 살아가는 이라면 저절로 우러르며 '스님'이라 칭할 것이다. 하지만 겉모양은 출가수행자이지만 일거수일투족이 시중잡배와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이, 제 이익과 욕심을 채위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이라면 제 아무리 스님소리 좀 듣게 해달라고 10년 염불을 해도 '중' 또는 더 나아가 '땡중'으로만 불릴 것이다.  

<삭발하는 날>을 읽으면서 느끼는 재미는 아직은 쌀쌀한 요즘 같은 때, 햇볕이 잘 드는 담벼락 밑에서 쬐는 햇살만큼이나 풋풋한 따사로움이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주고받는 첫사랑이야기처럼 짜릿하고, 할머니가 화롯불 뒤적이며 도란도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처럼 마음을 집중시킨다.

<삭발하는 날>을 통해서 잠시 거닐며 들여다 본 선방 풍경, 미지의 세계처럼 궁금하기만 했던 스님들의 일상을 상상으로나마 경험해 본 소감은 등고랑을 타고 줄줄 흐르는 땀을 훑으며 지나가는 솔바람만큼이나 시원하면서도 상쾌함이다.   
덧붙이는 글 <삭발하는 날>┃지은이 현진┃펴낸곳 담앤북스┃2013.2.24┃값 1만 3800원

삭발하는 날

현진 지음,
담앤북스, 2013


#삭발하는 날 #현진 #담앤북스 #용맹정진 #바리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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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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