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나는 '공룡알'... 보기만 해도 흐뭇

[나만의 명품④] 20년간 함께 해온 '가보', 검증은 사양할래요

등록 2012.03.25 14:57수정 2012.03.2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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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별난 물건을 애장품으로 애지중지 여기는 사람이 많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세계 각국의 주화와 우표 수집에 열을 올린 적도 있고, 성냥갑 수집에 잠시 미쳤던 적도 있다. 만년필 수집 열병을 앓았을 때는 기어코 중고 파카 만년필을 손에 넣고야 말았고 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몇날 며칠을 굶고 그것만 들여다 봐도 절로 웃음이 나왔으니 말이다.


나만의 명품? '명품'이란 애장품 수준을 넘은 최고의 품질로 창의적이면서도 특별한 디자인을 갖춘 아무나 갖기 어려운 소중한 물건을 일컫는다. 그 명품이 무엇이건데 그토록 사람의 마음을 현혹시키고 너도나도 갖지 못해 안달을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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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이상 나와 생사고락을 함께 한 011로 시작하는 휴대폰 번호와 중국 상해 기념품 가게에서 산 구슬조형품, 경매로 구입한 조선은행권 1원 지폐, S사의 1999년산 마이마이 카세트(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 김학용



하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내게는 품에 끼고 살 만큼 사랑하는 '명품'은 없는 것 같다. 그저 있어도 그만, 없어지면 조금 허전할 만한 것 몇 가지가 전부다. 이를 테면 17년 이상 나와 생사고락을 함께 한 휴대폰 번호 011-6O△-6OO△이 그렇다. 최후의 1인, 마지막 011 이용자가 되리라 다짐했건만 단말기가 낡아가니 큰소리치던 내가 한없이 작아 보인다.

또, 초등학교 때부터 30여 년간 모은 우표 책 몇 권, 중국 상해 기념품 가게에서 손에 넣은 중국산 구슬조형품, 우연한 기회에 경매로 구입한 조선은행권 1원 지폐 몇 장, 아직도 최고의 음질을 자랑하는 S사의 1999년산 마이마이 카세트 등이 내 애장품의 범주에 들 수 있겠다.

어떤 인연들로 인해 이것들은 내게 와서 내 소유물이 되었다. 고가인 것도 있고, 그다지 돈이 되지 않는 것도 있다. 하지만 명품은 아닐지라도 내가 가장 귀하게 여겨 고이 간직하고 있는 것을 굳이 꼽으라면 하나가 있긴 하다. 그것은 바로 진열장에 모셔진 공룡알(?)이다.


이십여 년 전 이른 봄날이었다. 당시 다니던 회사의 대청소를 하는데 창고 한 구석에 방치된 진열장 속 뽀얗게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큰 돌멩이(?) 하나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작은 수석 받침대에 올려진 기이한 원형의 이 돌멩이는 값비싼 수석도 아닌 것이 표면에서는 생명체의 껍데기로 추정되는 흔적들이 여기저기에 보였다.

'헉! 그렇다면 이것은 말로만 듣던 공룡알?'

눈이 번쩍 뜨이고도 남는다. 언제부터 어떤 경로로 왜 이곳에 방치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이렇게 아름답게 다가오긴 처음이었다.

20년 전 내품에 들어온 '공룡알'... 보고만 있어도 흐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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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동안 공룡알 화석이 아닐 것이라고 결코 상상해 본적이 없다. ⓒ 김학용



크기는 타조알 정도지만 납작한 대포알 모양으로 계란 흰자 벗겨지는 듯 신비의 '아우라'로 흔들면 노른자(?)가 움직이는 듯 '꾸르륵' 하는 소리까지 내니…. 어떤 공룡보다도 더 멋진 녀석이 들어 앉아 있을 듯한 신비로움은 그저 나를 혼미하게 만들었다. 당시 현재처럼 인터넷 같은 빠르고 간편한 실시간 검증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또 익룡이나 티라노사우루스가 아니면 또 어떠랴?

주인도 없고 출처도 없는 이 공룡알과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리라. 나름대로 의미를 담아 집으로 모셔다가 거실 한편에 놓아둔 지 어언 20여 년.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동안 알 내부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궁금하여 깨트려보고 싶다는 엉뚱한 충동도 일었다. 하지만 어디 될 법한 소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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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공룡알 화석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경기도 화성 공룡알 화석(출처-MBC TV 2006년09월15일 9시뉴스 화면캡쳐)과 전남보성 비봉리의 공룡알 화석 산출지(출처-문화재청) ⓒ 화면캡쳐

공룡의 종류가 티라노사우루스에서 트리케라톱스로 바뀔지라도 공룡알 화석이 아닐 것이라는 사실은 결코 상상해 본적이 없다. 그저 햇살 가득한 창가에 놓고 그 옆에 학위패나 표창장 트로피와 함께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드는 데 일조해준 너 공룡알 정말 고맙다. 나와 함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하다. 역시 검증되지 않고 불완전하니 더 아름다운 것 아니겠는가.

가슴이 답답하거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한 번씩 흔들면 신비한 소리를 선사하니 이 공룡알의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명필의 손에 꼭 맞는 붓이 있는 것처럼 많은 일을 벌이며 정신없이 열정만 앞선 내게 일상을 돌아볼 여유를 담아 주는 공룡알. 어쩌면 남들에게는 그저 휴지통에 버려질 쓰레기에 지나지 않을 수 있지만 이제는 어떤 명품보다 가치를 발하는 가보가 되었다.

오늘도 소리 없이 한쪽 벽면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공룡알을 바라보며 알 속에서 꿈틀거리는 공룡의 정체가 밝혀지는 그날이 기다려진다. 틈날 때마다 다시 들춰보고 태곳적 신비를 일깨우는 이 공룡알을 나만의 명품 1호로 감히 공개한다. 금방이라도 포효하며 달려 나올 우람한 공룡의 소리가 들릴 듯하다.
#명품 #공룡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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