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님' 체면 때문에 걸그룹도 못 보고...

[새내기 구의원의 지방정치 도전기③] 내빈으로 갔다 '얼굴도장'만 찍고 온 보령머드축제

등록 2011.07.22 12:18수정 2011.07.22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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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우호도시 교류사업의 일환으로 그 도시에서 열리는 축제에 초청받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대구 동구의회에서는 의원 2명이 함께 가기로 했는데 마침 제가 갈 수 있게 되었답니다. 다녀와야 할 축제는 다름 아닌 '보령머드축제'! 평소 축제장을 찾아다니는 성격도 아니고, 내빈으로 이렇게 큰 축제 행사에 가는 것도 처음이다 보니 이래저래 '기대'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아래 일정표와 같았답니다.

방문일자 : 7월 16일(토) ~ 17일(일) / 1박 2일
1일차 14:00 구청 출발 - 17:30 보령 도착 - 18:00 만찬 - 20:00 개막식 - 22:30 숙소(한화콘도)
2일차 08:00 조찬 - 09:00 대구로 출발
기념품 및 특산물 : 방짜수저세트 1세트, 왕자두 5kg 7상자
2011대구세계육상대회 홍보물 준비 : 수건 200개, 링타이 200개, 기타 홍보물

솔직히 방문일정을 안내해주는 보고서는 제대로 보지도 않았습니다. '보령머드축제면 유명한 축제인데 이것저것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겠다'는 생각에만 들떠 있었죠. 특히 대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라는 세계적인 행사를 코앞에 앞두고 있어서, 우리나라 축제 가운데 특히 외국인 손님들이 많기로 손꼽힌다는 보령머드축제의 현장을 보고 '노하우'를 좀 배워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공식 '보고서'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트위터에서 행사를 검색해보니 개막식 공연에 연예인들도 많이 오더군요. "16일에 펼쳐지는 보령머드축제 개막공연은 김병만, 류담, 노우진 등 KBS 개그콘서트 달인팀의 진행으로 태진아, 쥬얼리, 김그림, 파이브돌스, 마야, 사랑과평화, 달샤벳, 강승모 등이 참여해 축제 분위기를 한껏 뜨겁게 달군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이쯤 되니 '내빈으로 참석하면 앞쪽에 앉게 될건데, 연예인 구경도 제대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더군요. 그러나 이런 생각들도 현장에 도착해서 움직이기 시작하니 그저 혼자만의 상상일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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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머드축제 모습 ⓒ 보령시청


외국인 만나 더듬더듬...구청장님 보기 창피하네


구청장, 부의장과 함께 5시께 한화콘도에 도착했습니다. 보령시장님 및 간부공무원들과 로비에서 간단히 인사를 나누곤 머드축제 홍보 티셔츠로 갈아입었습니다. 간부공무원들이 아닌 동구청 직원들은 8월에 있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홍보 티셔츠를 입었습니다. 자매우호도시 축제를 빛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구에서 열릴 큰 행사를 홍보하는 것도 빠뜨릴 순 없는 것이니 말입니다.

숙소에서 옷을 갈아입고, 목에는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링타이와 수건을 걸치곤 다시 로비로 내려왔습니다. 어디 둘러볼 틈도 없이 곧장 만찬장으로 향할 시간이더군요. 해외교류도시, 국내교류도시들 소개하고 국회의원, 단체장들의 환영사가 이어지고는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다른 지역 공무원, 의원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반주 삼아 소주도 한잔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젠 개막식 행사 시간이 다 되어가더군요.

주최 측에선 "차량이 준비되어 있으니 차량으로 이동하시죠"라고 했는데, 이 순간마저 차를 타고 이동하면 정말 아무것도 못 보겠다는 생각에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행사장까지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제일 많이 든 생각은 '외국인 진짜 많네!' 하는 것이더군요.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영어 공부를 한 적도 없으며, 해외에 다녀온 적도 없는 저로서는 이런 분위기에 살짝 '소심'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막 행사장에 도착할 때쯤 한 외국인이 길을 물어오더군요. "○○모텔로 가는 길 좀 알려주세요"라고 하는 것 같았는데(아직 '듣기'는 됩니다), 몇 초 간의 침묵 후 "Uh…, I…, I don't know(음…, 난…, 난 잘 몰라요)"라는 대답 밖에 할 말이 없더군요.

반면 함께 걸어가고 있던 구청장은 어느새 목에 두르고 있었던 수건을 외국인들에게 보여주며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소개하고 있더군요. 성격의 차이인지 경륜의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부러운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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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머드축제, 대구 동구 방문단. 구청장을 비롯한 참가단이 보령머드축제 홍보티셔츠를 입고 대구세계육상선구권대회를 알리는 수건을 두른 채 개막식 행사장으로 향하는 모습. ⓒ 황순규


걸그룹은 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일정 끝?

개막식장에 도착하니 무대 앞 4번째 줄로 안내해주시더군요. 내빈소개, 축사, 개막선언까지 매끄럽게 진행된 뒤, 드디어 가수들의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수 진주의 공연이 끝나고 <개그콘서트> '달인'팀의 공연이 시작될 즈음 주최단체의 주요 간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시더군요. 그 덕분에 조금이라도 앞쪽에서 공연을 보겠노라 의자도 없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관광객들은 '땡 잡았'습니다. 제일 목 좋은 곳에 빈자리가 났으니 말이죠.

하지만 '이때 아니면 연예인 구경 언제 하겠냐'며 꿋꿋이 자리를 지키려던 저도 덩달아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최단체에서 다른 일들로 자리를 비우는데 손님들이 남아 있는 것도 좀 그렇다"고 하시더군요. 아쉬운 마음이 컸습니다만 그 자리에서 "저는 연예인 다 보고 가겠습니다!"라고 얘기하고 버티는 것도 어색한 상황인지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행사장에서 나와서는 함께 갔던 공무원들과 조개구이에 소주를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 것이 '끝'이었습니다. 함께 갔던 공무원들이야 준비해간 선물을 보령시에 전해드리고,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홍보물도 나눠드리고 했지만, 제가 할 일은 없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맛나게 밥을 먹곤 돌아오는 게 전부였죠.

보령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으니 다른 분들은 벌써 몇 번 다녀오신 경험도 있겠지만, 저로써는 처음이라 더욱 아쉬울 수밖에요. 오히려 조금 더 일찍, 혹은 조금 더 늦게 움직였더라면 축제의 구석구석을 좀 돌아보고 진면목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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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머드축제 무대 및 주변 모습 ⓒ 보령시청


출장비 받고 왔는데 밥만 먹고 가니 너무하네

게다가 공식적인 출장이었기에 출장여비까지 받아서 다녀온 것인데 과연 그만큼 '값'을 하고 돌아왔는지에 대해서는 떳떳하지 못하더군요. 그간 두 차례 정도 여비를 받아서 '출장'을 다녀와본 경험이 있었습니다만 그때는 이번과는 달랐습니다.

처음에는 작은도서관과 영유아플라자를 둘러보기 위해서 서울 관악구에 다녀왔고, 두 번째는 작은도서관과 지역아동센터를 둘러보기 위해 경기도 성남시를 다녀왔습니다. 다녀와서는 둘러본 내용들을 갈무리해서 보고서도 만들어 사무국에 제출하고, 사무실 한켠에 정리까지 해뒀으니 나름 뿌듯한 마음이라도 가질 수가 있었는데….

물론 출장의 성격 자체도 달랐고, 자매도시의 큰 행사에 내빈으로 참석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출장의 목적은 달성된 거라고 위안을 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1박 2일 다녀오면서 2박 3일 여비를 지급받기 위해서 같은 날 옷만 갈아입고 '증거' 사진을 남기거나 하는 식의 '편법'을 쓴 것도 아니죠. 또 내빈으로 참석한다 해놓고선 행사장에는 가지도 않는 '꼼수'를 쓴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그냥 편하게 마음먹을 수도 있겠지만, 기왕 멀리까지 걸음하게 된 마당에 그 축제의 내용을 잘 겪어보지도 못하고 온 게 아무래도 아쉽습니다. 여비로 지급받은 10만 원 남짓한 돈의 무게가 더욱 묵직하게 느껴질 따름입니다.

덧붙이는 글 | * 황순규 기자는 대구 동구의회 의원입니다.
*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 황순규 기자는 대구 동구의회 의원입니다.
*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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