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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직장인의 부동산 몰락기... 입주폭탄에 이자폭탄까지 사면초가

등록 2010.08.16 12:15수정 2010.08.1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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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운정신도시 조감도 ⓒ LH공사


먼저 이 글이 집 없는 사람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24년차 공기업에 다니는 50대의 평범한 직장인이다. 한우물만 파서인지 이젠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의 연봉도 받는다. 그러나 가난한 장남에 딸린 식구들이 많아 내 삶은 늘 고전의 연속이었다.

십수 년을 넘게 셋방살이를 전전하다가 그래도 가족들에게 비빌 언덕 하나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다소 무리를 해서 지금의 아파트를 장만했다. 네 개의 방을 아버지, 아이들, 동생들에게 쪼개어 주고 생전 처음 아내와 안방에 눕던 때가 그래도 내 생애에서 제일 행복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가랑잎처럼 바스락 거리던 아버지도 산으로 떠나고, 동생들도 각자의 둥지를 찾아 결혼을 하고 큰 아이마저 입대를 했다. 갑자기 썰렁해진 빈 방들을 보며 "이 집 팔아서 33평으로 조금 줄여 가면 관리비도 적게 나오고, 또 새 아파트에 살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니겠느냐"며 아내는 나에게 새아파트 분양을 은근히 부추겼다. 그렇게 분양받은 것이 파주 운정신도시 아파트다. 이것이 욕심이라면 욕심이었다. 

신도시 입주 통지서, 하나도 안 기쁩니다

오늘 입주통지서를 받았지만 기쁘기는커녕 마치 채무독촉장을 받은 것처럼 가슴이 철렁했다. 이사를 갈 수도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산 파주 쪽은 한집 건너 한집씩이 이런 한숨이다. 수없이 머리를 짜내 보아도 뾰족한 답은 없다. '입주 폭탄' 때문에 살던 집이 팔리지 않아 이사를 갈 수도 없고, 그냥 이대로 눌러앉자니 새 아파트의 '이자 폭탄'에 눈앞이 캄캄하다.

부동산 실물시세는 언론에 보도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한때는 4억 5천까지 거래되었지만 지금은 2억 7천에도 거래가 전무하다. 반 토막이 된 셈이다. 입주할 아파트 역시 33평형을 기준으로 마이너스 수천만 원은 떨어졌다는 것이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이것은 실제 상황이다. 더욱이 파주 운정신도시는 정권이 바뀌면서 남북관계의 초경색으로 접경도시라는 후폭풍까지 덤으로 입은 지역이다.


나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선납금 수천만 원을 손해 보고 새아파트 입주를 포기하든지, 아니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두 채의 아파트를 붙들고 매월 수백만 원의 이자폭탄을 떠안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새아파트로 줄여서 이사 가자는 것" 이것도 일종의 투기라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어떻게 할 것인가? 누옥이나마 지금 집 한 채의 무풍지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없이 부럽다.

장밋빛 노후의 꿈, 이젠 접었습니다

정부가 4·23 미분양 대책을 내놓았지만 하락하고 있는 건설시장을 회생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 뉴시스


마침 정부에서도 부동산 거래 활성화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한다. 반갑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들린다. 백약 중에 한 가지라도 유효한 것이 없는 것 같다.

DTI(총부채상환비율) 완화가 약간의 숨통은 트일 수 있겠지만, 근본적 처방책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수요공급의 산술적 불균형, 금리오름세, 거품론 등으로 매수심리가 실종되었는데 빚 왕창 끌어다가 집 살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정부는 허황된 말잔치로 "집 있는 거지"의 갈림 길에 서있는 절박한 입주예정자들을 두 번 울려서는 안 된다. 더 늦기 전에 바닥민심을 제대로 읽고 한 가지라도 실제로 필요한 대책을 내 놓아야 한다. 전월세자들이 집을 구입할 수 있는 장기예측이 가능한 금리인하, 취, 등록세 한시적 감면, 입주 잔금 유예, 집을 팔고 싶어도 못 파는 사람들을 위해 1가구 1주택 요건 완화, 등이 그나마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는 생각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지금 애물단지가 된 아파트를 바라보며 부동산 쓰나미에 한숨 짓는 사람들이 어찌 나뿐이겠는가? 이 불편하고 희망 없는 시간이 언제 끝날지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막막하다. 부동산 부조리에 분별없이 편승한 잘못을 자책해 본들 지금와서 무슨 소용일까? 아이들이 크고 나면 아내와 가온호수나 거닐며 여가생활이나 즐기자고 했던 장밋빛 꿈도 이젠 묻어야 한다.

아니 어쩌면 일체의 문화, 소비생활을 줄이고 불 꺼진 아파트에 쭈그리고 앉아 죽는 날까지 별이나 세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입주폭탄 이자폭탄에 잠 못 드는 신도시 입주민들의 열대야의 밤은 더 길고 어둡다.
#하우스푸어 #이자폭탄 #입주폭탄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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