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비 사고로 죽었는데 산재 제외라니

싸늘한 주검만 남은 산재 사망자, 캄티닷

등록 2010.01.12 17:09수정 2010.01.1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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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다라고요, 축사에 돼지들을 한쪽으로 몰아 놓고, 사료도 나르고, 똥도 치우는 기계가 있어요. 눈이 오는데 페루다를 운전하고 내리다가 그만 미끄러져서 페루다 바가지에 몸통이 눌렸는데 그렇게 된 거예요."

'그렇게 됐다'며 눈물을 글썽인 이는 페루다에 압사한 캄티닷의 사촌 형, 캄반틴이었다.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지 만 2년이 되었던 캄티닷은 근무처를 변경한 지 3주째 되던 작년 12월 말일, 손에 익지도 않은 페루다라는 중장비를 다루다 사고를 당했다. 페루다는 지게차와 비슷한 장비로, 물건을 담아 옮길 수 있는 바가지가 달려 있는데, 사료를 실어 나르면서 사람이 올라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사고가 나던 날, 캄티닷은 작업 도중 페루다에서 내리다 바가지 아래로 미끄러졌는데 기계가 작동이 멈추지 않아 변을 당한 것이었다.

사고가 나자, 캄티닷의 고용주 K씨는 고인의 유해 송환을 위해 곧바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다. 사실 캄티닷이 일하던 곳은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산재는 상시근로자 1인 이상 전 사업장을 대상으로 상용, 일용 등 고용형태를 불문하고 적용이 되기 때문에, 캄티닷의 고용주 K씨는 사고 후에 산재 신청을 하더라도 산재를 적용받을 수 있을 것으로 알고 사고 당일 산재 신고를 하였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에서는 K씨의 고용산재보험 성립신고에 대해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농업(축산업)은 상시 근로자 수가 5명 미만일 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적용 제외 사업에 해당하며, 법의 적용 제외 사업의 경우에도 신청에 의하여 가입할 수 있으나, 보험관계 성립일은 접수일의 다음날인 2010년 1월 1일이 되기 때문에 캄티닷의 산재를 승인할 수 없다'고 지난 9일 처리결과를 알려왔다.

산재승인을 받지 못하자, K씨는 캄티닷이 가입한 상해보험을 통해 보상이 가능한 지를 확인해 봤다. 그러나 이 역시 업무 시간에 업무와 관련된 일을 하다 사망한 사건이기 때문에, 상해보험 보상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다.

결국 중장비 사고로 죽었지만, 산재 가입이 돼 있지 않은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었다. K씨는 이 사실을 캄반틴에게 전달하며 얼마간의 보상을 약속했다.

그러나 캄티닷 사망 이후, 산재 처리가 될 것으로 믿고 유해 송환을 기다리던 캄반틴은 병원 영안실에 놓인 싸늘한 주검만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 동생의 유해 송환을 위한 절차가 쉽게 마무리될 것으로 알고 있던 캄반틴은,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에 동생 사건을 말해 놨었다. 그런데 사건 처리가 길어지면서 회사에서 업무에 복귀하라고 매일 연락이 오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베트남에 있는 유가족에게는 시신도 보내지 못하고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 지 답답하기만 하다고 한다.


이 사건에 대해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이영 사무처장은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입국 당시부터 고용주의 4대 보험 가입이 의무사항이라고 알고 오는데, 이와 같은 사각지대가 생긴다는 것은 고용허가제 운영의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농축, 어업 등의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경우 산재 가입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농업인들의 산재와 관련하여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지난 12월 17일 '농업인의 사고와 농업상재해 보상 등을 위한 농업노동재해 보장 및 보험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산재 #농업노동재해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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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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