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별력있다고 뭐가 달라졌겠는가

수능시험 출제자들을 변호하며

등록 2009.12.08 19:13수정 2009.12.08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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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수능시험 난이도 조절을 통해 변별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교과부에서 심혈을 기울이지만, 작년에는 너무 어려워서 사교육비를 부채질했다는 평가가 나왔고, 올해는 너무 쉬워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해마다 반복되는 수능시험 난이도, 과연 수험생들의 수학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험문제를 낸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필자는 의심한다. 어떤 지혜를 가진 신이라도 우리나라의 수능시험 체제에 들어오면 그 난이도를 적절하게 갖춘 문제를 낼 수도 없을 것이고, 수험생으로서는 자기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받았다고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너무 쉬워도, 너무 어려워도 해법은 없다

 

이런 문제는 오늘 한국사회가 가진 제도교육의 근본적인 문제에 기인한다. 백년대계니 인성교육 운운하지만, 교육에 백 년이 아닌 단 십 년을 위한 대계도 없으며, 오로지 성적순으로 줄세우기에만 급급할 뿐 인성교육은 없는 것이 현재의 제도교육이다. 매년 바뀌는 입시제도는 그 업종이 종사하는 전문가들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하며, 시험성적에서 밀리면 곧바로 실패자로 낙인찍히는 무시무시한 현실을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가는 것이다.


여기에 사교육이 가담하면서 제도교육이 가진 문제들을 더욱 심화시켰고, 제도교육은 무책임하게도 아이들의 교육을 사교육에 전가했다. 안타깝게도 수능시험을 잘 보는 아이들을 양산하는 것이 목표가 된 제도교육은 자신들의 무능력을 사교육시장의 전문강사들에게 맡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으며, 사교육시장에서 선행교육을 받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교육적인 조처는 물론 없었다.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학부모는 교사를 믿지 못했고, 유명 사설학원은 수능시험점수를 잘 받을 수 있도록 훈련하는 전문가들을 확보함으로써 자신들의 사교육시장을 확대해 나갔고, 그것은 학부모의 이기적인 자녀사랑(?)과 맞물리면서 거대시장을 형성하게 되었다.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커리큘럼화 된 교육과정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아이들은 사교육시장에서 이미 자신의 연령층이 익히고 배워야 할 것을 훨씬 넘어선 선행학습으로, 유치원에서는 초등학교에 배워야 할 것을 배우고, 초등학교에서는 중학생에서 배워야 할 것을, 중학교에서는 고등학교에 배워야 할 것을 이미 다 배워버린다. 그런데 고등학교에서는 대학교에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가르치지 않는다. 선행학습이라는 것이 오로지 대학입시에만 초점이 맞춰진 까닭에 고등학교 이후는 없다.


수능시험이 끝나고 대부분 학교가 단지 수업 일수를 맞추려고 고3 학생들을 등교시키고 있다. 수능 시험 전 이른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아이들을 닦달하던 그 열기가 단 하루 만에 사그라질 뿐 아니라, 시험이 끝나면 학교에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이런 풍토에서 자란 아이들은 대학에 들어가면 일종의 해방감에 공부하고는 담을 쌓는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기는 어렵지만 일단 들어가면 졸업하기는 쉬운 구조로 되어 있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자기 전공분야에 대해 전문가로 자리 매김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대학이 단지 좋은 직장을 얻는 수단으로 전락한 데에도 그 원인이 있겠지만, 그 원인의 근저에는 우리나라의 제도교육 자체의 획일성과 시험위주의 평가방식이 자리하는 것이다.

 

거의 시험 보는 기계 수준으로 전락한 아이들, 그들은 누가 구원해 줄 것인가? 불행하게도 아무도 없다. 용기있는 학부모와 용기있는 학생의 자발성 외에는 불행하게도 탈출구가 보이질 않는다. 그렇게 용기를 내서 제도권에서 뛰쳐나가도 경쟁구도에서 이탈함으로 인해 감당해야 할 수많은 난관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다. 이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격이다.

 

부모의 경제력에 비례하는 아이들 성적


그러나 인지하다시피 지금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가 아니다. 학부모의 경제적인 능력 여하에 따라 아이들의 성적은 비례한다. 제도교육 혹은 공교육이 실패했다는 증거는 바로 여기에 있다. 모두 하향평준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각기 가진 개성들을 발굴하고 살리는 역할을 제도교육이 담당해 주어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학교가 수능성적을 잘 받는 기계로 학생들을 만드는 일 외에 무슨 관심이 있는가? 물론 학교만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공동의 잘못이다. 좋은 학교, 나쁜 학교의 기준을 삼는 것이 소위 SKY 대학에 몇 명을 보내느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 나라 전체가 불치병에 걸린 것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지만 그것은 영화 속의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리는 사회, 아무리 그래도 성적이 행복의 여러 가지 조건들을 좌우할 수 있는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들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어릴 적에는 부모의 강요에 의해서, 조금 크면서 스스로 요구에 의해서 제도교육에서 순위 매기기에 기꺼이 동참한다.

 

그 외의 다른 삶을 보이지 않고, 성적순으로 줄지어지는 것 외에는 본 적이 없기에 성적순으로 줄 서기를 거부하는 것 자체가 터부시 되고, 그것은 곧 실패자라고 인정하는 것처럼 되어버린 사회구조에서 과연 우리는 건강한 아이들을 기대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줄 세울 수밖에 없는 우리 교육 현실

 

너무 쉬워도 어려워도 해법이 보이지 않는 수능시험, 지금의 구조에서는 어떤 용빼는 사람이라도 모두를 만족하는 시험문제를 낼 수 없을 것이다. 올해 수능시험이 쉬웠다, 어려웠다 말들이 많다. 아마도 올해는 수리부문이 너무 쉬워 문제가 된 모양이다. 어려웠다면 또 어찌 되었을까? 사교육시장을 부채질한다는 비판이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지금의 구조에서는 쉬우나 어려우나 해법이 보이질 않는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국민이 교과부에서 일하시는 분들 세금으로 먹여 살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잘 모르겠으니 전문가들이 이 문제에 매진하여 해법을 마련하라고 자리를 깔아준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해법을 내지도 못하고, 혼란스러운 상황들만 만들어낸다면 어찌 직무유기가 아니라고 할 것인가?


이래저래 해법이 보이질 않으니 이런 상상도 해본다. 모든 수험생이 0점을 맞으면 어찌 될까? 그래도 여전히 대학은 어떻게든 줄을 세워 선발인원만큼 학생들을 충당할 것이다. 모든 학생이 만점을 맞아도 불합격의 잔을 기울어야 하는 이들은 있을 터이니,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공부 다 때려치워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이런 상상 말이다.

2009.12.08 19:13 ⓒ 2009 OhmyNews
#수능시험 #제도교육 #사교육 #교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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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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