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리지'는 소들이 좋아하는 '김밥'?

소에게는 발효식품 청국장과 같은 사일리지

등록 2009.11.04 10:15수정 2009.11.0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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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리지'는 소들이 좋아하는 '김밥'?
"소에게는 발효식품 청국장과 같은 사일리지"  


기습적으로 밀려온 추위가 길을 잃었는지 떠날 줄을 모른다. 한파주의보에 강원도에는 폭설이 내렸다고 한다. 호남지방에도 눈이 내릴 것이라는데 '입동 체면' 세워주는 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날씨가 무리하는 것 같다. 

필자가 사는 마을은 강을 끼고 있어 바람이 차갑기는 하지만, 폭설이나 한파와는 거리가 먼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아직 남은 누런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콤바인을 기다리는 모습과 일찍 찾아온 철새들이 공중을 배회하며 먹이를 찾는 모습은 추위 속에서도 마음을 한가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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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이 끝난 들녘 풍경. 편안하고 고즈넉한 느낌을 줍니다. 김밥을 썰어놓은 것 같은 사일리지가 소 먹이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더군요. ⓒ 조종안


추수가 끝난 들녘에는 퇴비로 쓰려고 볏짚을 깔아 놓기도 하고, 철새들 먹이로 보리를 심어놓은 곳도 있고(시에서 비용 제공), 지름이 1m가 넘는 대형 김밥을 썰어 놓은 것 같은 하얀 비닐 덩어리들이 논에 널려 있어 눈길을 끄는데 소들이 즐겨 먹는 '곤포 사일리지'이다.

옛날에는 볏짚을 작두로 잘라 방앗간에서 나온 쌀겨를 섞어 소에게 먹였다. 그런데 지금은 콤바인에서 나오는 짚을 곧바로 묶어 공기가 통하지 않게 압축, 비닐로 싸서 약품을 첨가해 두 달 정도 발효시키면 소들이 좋아하는 사일리지(담근 먹이)가 된다고.  

그렇게 만든 사일리지는 집에서 기르는 소가 먹기도 하고, 중간 업자들이 사다가 축산농가에 팔기도 한다는데, 소 먹이 얘기를 하다 보니까 어렸을 때 눈여겨봤던 모습들이 눈앞에 아스라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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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전 경상도 합천 산골짝 농가에서 촬영한 사진. 외양간 소도 당시 바깥세상이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 조종안


필자가 어렸을 때는 시내에서도 구정물을 서로 가져가려고 이웃 사이에 눈치싸움이 일어날 정도로 소나 돼지를 키우는 집이 흔했다. 특히 사촌처럼 지내던 병우네 집에는 항상 볏짚이 쌓여 있는 큰 외양간이 있었는데, 병우네 할아버지가 여물통에 작두로 자른 볏짚을 쏟으며 손자에게 과자를 건네주듯 소에게 뭐라고 하던 모습을 지켜보던 기억이 새롭다.

적당한 크기로 자른 볏짚에 쌀겨를 섞어 가마솥에 넣고 물을 적당히 붓고 장작불을 지펴 쇠죽을 끓이기도 했는데, 배고픈 줄 모르고 뛰어놀다 갑자기 쇠여물 쑤는 냄새가 풍기면 먹고 싶도록 구수했다. 산다는 집 아이들도 밥 외에는 먹을 게 없던 시절이었으니, 짚이 익는 냄새도 그럴 듯했으리라.

학창시절을 떠오르게 했던 사일리지

작년 가을이었다. 추수가 끝난 들녘에 하얀 사일리지가 2개~10개씩 놓여 있는 걸 처음 봤을 때는 떡볶이집에서 봤던 김밥이 떠오르고, 모양도 재미있게 생겨서 웃음이 나왔는데,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몰라서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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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 이곳저곳에 널린 사일리지 모음. 추수가 끝나면 볏짚은 논에 깔아 거름도 하고. 사일리지도 만들고, 버섯농장에 팔기도 한다더군요. ⓒ 조종안


처음 보는 거라서 신기하기도 했는데, 이사해서 사귄 포도농장 주인에게 들녘 여기저기에 하얀 비닐 덩어리가 있던데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소 먹이라고만 할 뿐 더는 설명을 들을 수 없어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른다.

소 먹이인 것만 알았지, 언제부터 사일리지를 만들기 시작했는지, 재료는 무엇이 들어갔고, 왜 하얀 비닐로 싸놓았는지 등은 모른 채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었다. 그런데 올가을에도 어김없이 사일리지가 들녘에 등장, 궁금하고 답답했던 1년 전 마음으로 되돌려 놓았다.

이제나저제나 미뤄오다 오늘은 누구를 만나더라도 밝혀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하고 허물없이 지내는 정육점 주인을 찾아갔다. 마침 따뜻한 볕에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에 고기를 사러 온 게 아니고, 사일리지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며 궁금했던 점들을 하나씩 들려주었다.  

그런데 정육점 주인도, 볏짚에 발효제를 뿌려 둥그렇게 말아 하얀 비닐로 감싸두었다가 소에게 먹인다는 것 외에는 잘 몰랐다. 그래도 정육점 주인답게 사일리지 속에는 단백질과 섬유질이 많아 소가 먹으면 육질이 좋아진다는 부연설명을 빼놓지 않았다. 

소에게 먹이려고 수입하는 건초보다 값이 훨씬 저렴하다는 것도 알려주었는데 대화는 짧게 끝났고, 마땅히 물어볼 사람이 생각나지 않아 어쩔거나? 하고 있는데 전문가에 버금가는 사람을 소개해주었다.  

"소가 먹는 거 허고 관계되는 문제는 저짝 농협서 운영허는 주유소에 가믄 아는 사람이 있을꺼유. 그런 일허는 사람들이 많이 놀러오거든유. 가만있자, 빨간 차가 있는 거 봉게 '김성만'(44세)이가 와있는 개빈디 갸한티 물어보믄 자세히 알려줄꺼유··."

이름과 나이까지 알려주는 친절에,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정육점을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는 말과 어려운 방정식 문제를 가지고 수학을 잘하는 급우에게 물어보러 다니던 학창시절이 생각나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사일리지에 대한 궁금증, 1년 만에 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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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리지 만드는 과정과 용도, 볏짚 사용에 대해 설명하는 김성만(44세) 씨 ⓒ 조종안

주유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까 정육점 주인 말대로 시끌시끌했다. 직원 둘이 일하는 사무실은 조용한데 뒤쪽 응접실에서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살짝 귀를 기울이니까 사람들이 약간 흥분된 상태에서 무엇인가 상의를 하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등동길 두 칸 건너 11호 집에 사는 사람입니다. 정육점 주인이 가보라고 해서 왔는데요. 김성만 씨가 어느 분인가요?"
"예, 제가 김성만인데요.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주유소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김씨는 눈빛이 예리하면서도 편한 인상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하며 만나려는 이유를 묻기에 사일리지에 대해 알아보러 왔다면서 궁금했던 점을 물었더니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저는 볏짚을 작두로 썰어 쌀겨를 섞어 먹이는 것으로 아는데, 언제부터 소에게 사일리지를 만들어 먹이기 시작했나요?"
"불과 10여 년밖에 안 되고, 군산 지역에서는 5-6년 전부터 만들기 시작했어요. 원형은 떡처럼 사각 모양이었는데 지금은 70%-80% 이상 둥글게 만들어요. 볏짚을 사각으로 만들기 전에는 일일이 손으로 묶어두었다가 썰어서 먹였지요."

소 한 마리가 일 년에 사일리지를 여덟 개에서 아홉 개 정도 먹는다고 해서 왜 조금밖에 먹지 못하느냐고 했더니, 보기에는 별것 아니지만, 꾹꾹 눌러서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에 300kg-400kg 정도 나간다며 풀어놓으면 놀랍도록 많다고 했다.

80kg 쌀 다섯 가마 무게와 같은 400kg 넘는 것도 있다고 해서 놀랐는데, 사일리지 하나에 값은 얼마인지, 아무나 만들어 팔아도 되는지, 논 한 필지(1200평)에서 나오는 볏짚으로 사일리지를 몇 개나 만들 수 있는지 등을 물었더니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하나에 300-400kg씩 나가니까 무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상 차비 포함해서 하나에 5만 원정도 나가지요. 만드는 건 중간 업자들이 타작할 때 와서 볏짚을 사가기 때문에 팔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계약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볏짚이 잘 마르면 논 한 필지에서 10개 정도 나오는데 일반 사료보다 소에게 좋고 가격도 훨씬 경제적이지요." 

김씨가 설명을 마치며 "사일리지는 소에게 발효식품인 청국장이나 같지요!"라고 하기에 "저는 소들이 좋아하는 김밥으로 생각했어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진짜 김밥 같네요!"라며 활짝 웃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사일리지 #김밥 #발효 #볏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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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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