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재들이 이끌어가는 세상

아이들에게는 자율과 자유가 필요하다

등록 2009.08.07 10:41수정 2009.08.0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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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교육 정상화'라는 꿈을 가지고, 뜻있는 보건 선생님들이 모여 작은 교육시민단체를 만든 것이 2003년. 학교 근무가 끝나면 그 때부터 일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맨 땅에 헤딩하듯이 자료를 모으고, 공부를 하고, 회의를 하고, 토론회를 하고, 실태조사를 하는 통에 여유롭게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나마 미혼인 나는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지만,  기혼이신 선생님들의 고충은 말로 다 옮기기가 힘들 정도다. 

 

   가장 선생님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단연 아이들 문제. 종종 선생님들의 푸념 아닌 푸념이 쏟아진다.

"방학이라고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도 없고, 오늘도 급하게 나오느라 냉장고에서 반찬 꺼내 동생까지 챙겨 같이 밥 먹으라고 말하고 나왔어요."

"세상에! 나는 우리 아이가 수련회 가는 데 그걸 모르고 있었던 것 있지. 아침에서야 알았는데, 준비물도 못 챙겨줬죠."

"내가 급하게 약속이 생겨 우리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하는데, 그냥 혼자 보냈어요. 병원 가서 할 일만 알려주고. 난 나쁜 엄마야."

 

    선생님들의 아이들은 엄마가 보건교육운동에 열심인 까닭에,  일찍이 대부분의 일을 스스로 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선생님들은 가슴 아프시겠지만, 나는 종종 선생님들께 뼈있는 농을 건넨다.

 

"선생님, 제가 고등학교에서 보니,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 일 알아서 하는 훈련을 해봐야한다는 생각을 매번 하게 돼요. 그래야 고등학교 때 지치지 않고 자기 인생 어떻게 살지 잘 알겠더라구요.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부모님을 존경하는 아이들은 절대로 곁길로 가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존경심이 결국 아이들 자존감이 되더라구요. 엉터리로 살라고 해도 오뚜기처럼 다시 되돌아오는 느낌이 들 정도예요. 지금은 힘들어도 아이들이, 엄마가 교사로서 열심히 살려고 했다는 것, 분명히 자랑스러워할 거예요. 그리고 엄마의 간섭이 최소화되고 있는 지금이 아이들에게 축복이 될 거예요."

 

    연수나 워크숍이 있어 종종 선생님들의 아이들을 만나면,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인데, 음식에 따라 가스 오븐 렌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줄줄 알려준다. 엄마가 전화로 알려준 대로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는 귀띔. 농담 반 진담 반 주요 과목 과외라도 받아야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자기 수준에서는 학원만 다녀도 충분하다고 호언장담했다는 중학생 아이도 기특하다. 총의 종류와 쓰임새를 알려주는 아이도 있다. 너무 재미 있어서 몇 번이고 읽었다며, 자랑스럽게 너덜거리는 책을 보여준다.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일제고사 이후 초등학교에도 보충수업이 부활했다고 한다. 물론 뒤처지는 아이들이 있다면 당연히 지적 향상을 위해 공부를 시켜야겠지만, 아이들 지력 향상이 아니라, 학교 얼굴 세우기를 앞장세우느라 그런 것은 아닌가, 괜스레 씁쓸해진다.

 

    전체 학생의 성적과 석차를 신문에 공개하고, 철저하게 능력주의, 업적주의를 내세우는 싱가포르 교육이 한 때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세계 명문 대학으로 싱가포르의 주요 대학들이 수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은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싱가포르 교육의 가장 큰 약점이 창조력이 떨어진다는 보고서가 있었다.

     성적이 곧바로 사회 성공과 직결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시험에만 몰두하고, 그 결과 교수는 자유로운 강의를 하는 대신 철저하게 시험에 나올 문제만을 가르쳐야 교수평가를 잘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지식만 전달하고 끝나는 수업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창재를 만들지 못하는 싱가포르 교육 시스템으로 과연 다음 세대에서 싱가포르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겠느냐가 보고서의 핵심이었다.

 

     요즘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인재가 창재다. 좌뇌를 주로 활용하여 기존의 지식을 암기하고, 그 지식을 다시 인출하는 천재들로써는 불확실성의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력과 창조성을 견인할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진단. 우뇌를 활용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감성으로 반응하면서, 강한 호기심과 열정을 뿜어낼 줄 아는 창재들이 필요한 데, 우리 교육이 여전히 좌뇌 훈련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 폴 사르트르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일찍 죽는 것이다'라며,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기회를 많이 줘야한다고 역설했다. 창재로 거듭날 기회를 주라는 것이다. 축 처진 어깨를 하고서, 천재로 길러지고 있는 아이들의 여름이 안타깝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8.07 10:41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보건교육 #학교보건 #보건교사 #보건교육포럼 #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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