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니라도 잘 돌아가는 세상

등록 2009.06.18 16:26수정 2009.06.1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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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2009년까지 인터넷 방송을 한 신부님이 계셨다.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셨다. 선곡과 멘트도 미리 해야 했고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많은 시간이 필요해서 가뜩이나 바쁜데 더 바빴고 그래도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방송을 멈출 수 없어 계속하셨다.

 

최근 신부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서 방송을 하지 않게 되셨다.  대다수 사람들의 반응이 은근히 걱정되었지만 단지 몇 분만 서운하다는 말씀을 하셨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터넷 방송을 하든 말든 상관이 없어 참 뜻밖이었다면서 큰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졌던 것을 겸허하게 반성하신다고 하셨다.

 

나도 요새 그런 생각이 든다. 살아오면서 목표로 했던 일이든 우연한 일이든 한 몫을 제대로 했고 지금도 내가 없이는 잘 안 될 것이라는 착각을 했던 것 같은 것이다. 어떤 문화예술분야는 30년을 넘게 해오고 있고, 어떤 분야는 10년이 넘게 열심히 활동하고 중심역할을 하는 대표도 오래 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물러나니 자연히 자문이나 고문이라는 명예직이 주어졌다. 

 

한창 일할 때 중간리더에게서 "나중에 퇴임하시면 뒤에 사람이 어떻게 일을 감당해야 할 지 그 어려움을 미리 감안하면서 일을 줄이면 좋겠다"는 충고까지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물러난 뒤에도 행여나 내가 벌인 일이기에 지속적으로 관여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컨설팅을 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불화의 원인이 되어 간섭으로 받아들여져 날마다 같이 밥을 먹고 허물없이 웃고 목욕하던 관계가 어긋났다. 얼굴조차 보기 힘들 정도로 소원한 관계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최근 10주년 기념문화제를 준비하는 곳에서 회의에 참석하여야 한다고 연락이 왔다. 그러나 부득불 피치못할 사정으로 회의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 참석을 못하게 되었지만 내내 신경이 쓰였고 혹시 문화제 기획 자체에 지장이 생겼으면 어떡하는가 하는 우려도 들기도 했지만 잠잠했다.

 

문화예술 전문인 나 없이는 잘 안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며 착각이었고 나 없이도 모자라면 모자란 맛으로, 새로우면 새로운 에너지로 세상돌아가는 바퀴는 어김어없이 잘 돌아간다는 것이 입증이 된 것이다.

 

가끔 출장을 갈 때 미리 새벽부터 일어나 밥과 국과 반찬 등을 넉넉하게 해놓고 간다. 그리고 내심 '아이들이 인스탄트로 끼니를 때우지 않고 알아서 잘 찾아먹겠지!' 하고 혼자 안심을 했다. 그러나 웬걸? 출장을 다녀와 밥솥을 열어보면 밥은 보온이 오래되어 눌어버렸고 국과 반찬은 반 이상 남아 상하거나 계속 끓이기만 해서 맛이 가버렸던 적이 참 많았던 것 같다.

 

그 때는 엄마의 정성을 몰라준다고 내심 서운해 했거나, 쓸데없이 돈을 낭비하여 몸에 좋지 않은 인스턴트 식품을 먹는다고 속이 불편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 출장을 기회로 자기들의 세상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의 입맛으로 찾아 밀가루 음식을 해먹기도 하고 시켜먹기도 하는 것이 즐거웠던 것이다.

 

내가 없으면 무언가 잘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은 이제 그만 안녕해야 하겠다. 함께 일하시던 관장님께서는 매일 직원회의에 참석하셔서 좋은 업무지침을 나누어 주시고 수십 명이나 되는 직원업무일지와 주간업무계획까지 일일이 보셨다. 관장님이 안 계시면 뭔가 난리가 날 것 같을 정도로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를 하셨다.

 

그런데 최근 갑자기 몸에 신병이 생기셔서 장기간 나오지 못하셨고 결재서류는 차곡차곡 쌓여지고 있다. 그러나 기관의 전체운영흐름은 별로 변화가 없다. 모두들 제 자리에서 맡은 업무를 열심히 하고 관장님이 좀 아프신지 아니면 출장을 가셧는지  모르고 전보다 더 바쁘신가 보다 하고 나름대로 혼자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이렇게 장기간 인터넷방송을 한 신부님이나 단체운영에 깊이 관여하며 대단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 나도 착각속에 빠져살지만, 이 보다 더 대단한 착각의 압권은 현 정부의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방송을 너무 입바르게 하는 누군가와 촛불을 들고 눈에 잘 띄는 모습과 사람들 가슴을 파고드는 목소리들을 대중들에게서  멀어지게 하면 뭔가 우선은 시국이 안정된다고 안심하며 착각하는 것 같다. 또한  진실한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서 소중한 하루를 세상에 바치는 길거리에 나선 일인시위의 사람에게는 어쩌다가 세뇌를 당했는냐고 안쓰러운 듯이 말하는 그 사람도 아마 대단한 착각의 주인공일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누구나 살면서 착각은 겪을 수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나 없어도 잘 돌아가는 세상의 순리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신이 올바른 사람들은 착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정말 불쌍한 착각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착각한 적도 없고 잘못 말한 적도 없다면서, 올바른 준법정신 속에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면서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내고 다닌다. 올바르지 않다는 물적증거가 드러나면 그것은 착각의 산물이 아닌 말단하부인력의 실수나 행정착오라고 둘러대면서...

2009.06.18 16:26 ⓒ 2009 OhmyNews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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