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뼈 깎는 노력했는데 경영평가 꼴찌라니

철도공사 직원이 바라본 정부의 공기업 경영평가

등록 2006.06.28 15:26수정 2006.06.28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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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공사 직원들이 술렁이고 있다. '정부 경영평가, 철도공사 꼴찌' 라는 기사를 보고 일말의 비애감을 곱씹으며 퇴근 후 삼삼오오 모여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분노와 자책, 짙은 패배의식들이 겹쳐져 마치 태풍전야처럼 음산한 기운마저 감돈다. 깨끗이 인정하고 또 다음을 기약하자며 툭 털고 일어섰으면 좋으련만, 이 상태로라면 사실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왜 직원들이 정부의 경영평가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그냥 막연한 추측성 불만으로 꼴찌를 부인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뿌리 깊은 불신의식이 배어 있다.

철도공사에 와서 꼴찌인생 됐다!

"내년에도 꼴찌를 할 것 같으면 어려운 구조조정이나 임금동결, 등은 할 필요가 없다."
"내년부터는 정부의 공기업 평가를 받지 말자. 받아도 꼴등, 안 받아도 꼴등."
"이젠 혁신 같은 거 하지 말자. 혁신 해봤자 만년 꼴찌, 혁신하다가 애꿎은 직원들만 다 죽인다."
"14개 공기업 중에 임금 꼴찌, 성과급 꼴찌에 2관왕이다. 철도에 와서 꼴찌인생 됐다!"

이상의 글들이 게시판에 올라온 직원들의 원성이다. 10조원이 넘는 고속철 건설부채, 선로사용료, 이자 등 고속철도 관련 상환액이 년 1조원을 넘는다. 한 해 뼈 빠지게 벌어서 이자 갚고 나면 밥 빌어먹기 딱 맞다. 정부는 갓 출범한 공사에게 이처럼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하고 '경영관리 시스템 미흡'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어 꼴찌라는 낙인을 찍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고속철 건설 등, 각종 철도관련 정책실패 책임을 철도공사에 떠넘겨 놓고 시치미 떼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철도공사, 경영평가 꼴찌는 따 놓은 당상!

"철도는 적자이니 성과급도 없다" 경영평가가 한창이던 지난 5월, 기획예산처(이하 기예처)에서 공공연하게 나온 말이다. 더욱이 작년 하위권 기업들이 '이젠 철도 공사가 있으니 향후 10년은 꼴찌 걱정은 없다"라는 소문을 들었을 때, 그래도 정부에서 하는 일인데 설마 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설마 했던 예측이 딱 들어맞았다. 나를 포함한 3만2천 직원들이 꼴찌라는 불명예를 고스란히 덮어 썼다. 지난 1년간 변화와 혁신을 선도해 오던 CEO 역시 꼴찌 사장이라는 달갑지 않는 수식어를 달았다. 우리 철도의 경영혁신 노력이 진실로 미흡했다면, 이처럼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타 공사의 말처럼 애초부터 "만년 꼴찌는 따 놓은 당상"이라면 과연 우리 직원들이 해마다 경영평가라는 가혹한 몽둥이에 휘둘릴 이유가 어디 있는가!

평가의 성적표를 보면 공정성에 대한 의혹이 금방 드러난다. 직원들이 할 수 있는 부분, 즉 노동생산성, 인적사고, 운송원가관리, 차량고장율, 정시운행율, 인건비 인상율 관리 등의 계량지표는 거의 만점을 받았다. 문제는 충분히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비계량지표이다. 간단히 말해서 경영관리를 잘못했다는 것이다.

이제 막 출범한 철도공사를 타 공사와 대등하게 비교해서 경영관리 책임을 묻는 자체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중요한 것은 철도가 경영관리를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사 출범 당시 기예처에 보고한 철도의 예상 적자폭이 9천억이라는 이야기를 들은바 있다. 얼마 전 신문기사에 의하면 6천억 정도의 적자를 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1년 동안 3천억의 적자를 줄인 것인데, 이것은 경영성과가 아니고 무엇인지 묻고 싶다.

경영정상화 노력에 찬물 끼얹는 기예처

기예처는 지금까지 철도에 총액임금제라는 족쇄를 채워 놓고, 임금동결을 하지 않으면 성과급도 없다며 줄곧 공사를 압박해 왔다. 그 결과 임금을 타 공사의 78% 수준으로 동결시켰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철도공사는 지난 1년 동안 철도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가히 몸부림에 가까운 자구노력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변화와 혁신의 기치를 내걸고 전 부문 전 방위에 걸쳐 강도 높은 조직개편을 단행했고, 이 과정에서 직원들은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왔다. 앉아서 탁상공론만 하지 말고 의심나면 직접 와서 점검해 보라.

뼈를 깎는 자구노력에 표창은 주지는 못할망정, 적자기업이라는 멍에를 씌우며 미리 정해진 칼날로 힘겹게 일어서려는 철도 경영정상화의 싹을 이처럼 매몰차게 자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적어도 열심히 노력하면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은 주어야 하지 않은가. '적자기업 상위권 평가'가 정히 부담스럽다면 차라리 평가를 유예하고, 기예처는 철도에 더 이상 경영간섭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년에도 '꼴찌는 따 놓은 당상'이라는 절망적인 논리를 직원들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면, 모처럼 시작한 철도의 경영정상화의 꿈은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만년 기자는 20년 동안 현장기관사로 근무하다가 지난 4월부터 철도공사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김만년 기자는 20년 동안 현장기관사로 근무하다가 지난 4월부터 철도공사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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